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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km 산길을 5시간에 달리는 사나이

중앙일보 2016.06.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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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이스 제공]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은 요즘 가장 핫한 레저 중 하나다. 50km·100km 산길을 쉬지 않고 달리는 익스트림 스포츠. 대략 12시간(50km), 30시간 안에 주파해야 한다. 산길 50km는 한라산(1950m)를 세 번 오르내리는 거리이며, 지리산 노고단(1509m)~천왕봉(1915m) 능선을 왕복하는 것과 맞먹는다. 100km의 경우 하룻밤을 넘기기 때문에 비상식량과 구급약품을 넣은 배낭을 메고 달려야 한다. 극한의 스포츠이자 어드벤처의 세계다. 사실 기본기 없이 아무나 도전하는 영역은 아니다. 등반가, 트라이애슬론(Triathlon), 울트라마라톤을 경험한 건각들이 도전한다.

'노스페이스 100 코리아' 참가 블라드 익셀
"전세계 트레일러닝 코스 중 대관령이 최고"
트레일 러닝 시작한 4년 전부터 채식주의자
하루 6000칼로리 섭취, 과일·샐러드 폭식

지난 11일 강원도 평창 일원에서 '노스페이스 100 코리아' 트레일 러닝 대회가 있었다. 1200여 명의 건각들이 강원도 산길 10·50·100km 구간을 달렸다.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비교적 낮았다는 점에서 이 극한의 스포츠가 국내에서 아직 시작단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외국인 선수도 약 50명 참가했다. 대부분 동호회 수준의 아마추어지만,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선수도 여럿 있었다.

우크라이나 오데사 태생의 세계적인 트레일 러너, 블라드 익셀(29·호주)은 산길 50km를 5시간대에 주파한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는 강원 평창의 선자령(1157m)·곤신봉(1127m)·동해전망대(1150m)를 오르내리는 산길을 5시간 20분 45초 만에 끊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175cm 61kg의 아담한 체구와 큰 코 덕분에 입체적인 얼굴, 깎지 않은 수염은 코파아메리카에 출전 중인 축구선수 메시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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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이스 제공]

사전 정보가 많지 않다. 자기 소개를 하자면
"노스페이스 글로벌 소속으로 현재 홍콩에 거주하며 트레이닝러닝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퍼스널트레이닝을 해주고 있다. 홍콩을 비롯해 싱가포르, 호주, 미국 등에 클라이언트(수강생) 35명이 있다. 이메일로 프로그램을 짜주기도 한다."
트레일 러닝을 배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나
"대개 특정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가르친다. 가령 싱가포르나 홍콩에 사는 클라이언트가 이탈리아 토르 데 지앙(Tor Des Geants)에 참가하고 싶다면 계단 등을 오르내리며 가파른 지형에 트레이닝시킨다. 또 트레일 러닝은 변수가 많기 때문에 대회 특성이나 날씨에 대비한 훈련을 많이 한다. 보통 1주일에 1시간짜리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어떻게 짰나
"스스로 연구해 개발했다. 트레일 러닝이 아직 대중적인 스포츠는 아니기 때문에 미식축구, 트라이애슬론, 축구 등을 참고해 프로그램을 짰다. 트레일 러닝은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린다. 그래서 측면 움직임이 중요하다. 미식축구 선수들은 아주 튼튼한 힙(Hip)을 이용해 장애물을 돌파하며 나아간다. 또 축구 선수들은 보폭을 줄이는 방법으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전진한다. 이런 훈련으로 50개 트레일 러닝 대회에서 35번 1등 했는데, 내 프로그램이 입증된 셈이라고 본다."
대회를 앞두고 식이조절은 어떻게
"트레일러닝은 4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 채식주의자가 됐다. 하드 트레이닝 기간에는 하루에 2~3회(총 5~6시간) 정도 운동을 하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침, 점심에 달리기를 하고 오후에는 요가, 밸런스 트레이닝 등 근력 운동을 한다. 하루 6000칼로리까지 섭취한다. 대회 1주 전부터 그냥 안 먹는다.(웃음) 먹기는 먹는데, 훨씬 적게 먹는다. 얼마 전에 홍콩에서 피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여태까지 본 피 중에 제일 깨끗하다'고 하더라.
채식으로 하루 6000칼로리 섭취가 가능하나
"바나나를 엄청나게 먹는다. 하루에 20개 정도? 바나나는 소화가 잘되고 마그네슘 등 영양소가 많다. 껍질만 벗기면 되니 먹기도 쉽고, 휴대하기도 좋다. 아침에 바나나 10개, 망고 5개, 혹은 바나나 10개, 견과류 등을 먹는데 이것만으로도 1500㎈ 가량 된다. 점심엔 정말 많은 양의 샐러드나 각종 과일, 야채, 버섯 등을 먹는다. 저녁은 더 많이 먹어야 한다."
산길 달리기에 타고났다고 생각하나
"나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젊은 시절 구 소련에서 개최한 마라톤에 자주 출전했었다. 하지만 소련에서 러시아로 바뀌고 나서는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누가 달리기 시작하면 소매치기범으로 오해를 하기도 해 그만두셨다고 하더라(웃음). 우리 부자는 2년 전에 파리마라톤에 같이 출전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주 근면한 분이시다. 성격은 어머니를 닮았다"
이번 평창에서 열린 '노스페이스100 코리아'는 어땠나
"정말 아름답고 특별한 코스였다. 사실 이렇게 경사가 가파를지 몰랐다. 난이도 있는 코스인 만큼 힘들었지만, 다양한 형태의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 달리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전반적으로 매우 잘 준비된 대회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트레일러닝 대회에 나갔지만 이렇게 멋진 곳에서 개최된 대회는 처음이다. 앞으로 5년 안에 노스페이스100 코리아가 아시아에서 저명한 대회가 될 것 같다. 진심으로."
한국에서도 트레일 러닝을 가르칠 계획이 있나
"영어로 진행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긴 한데, 언젠가 한국에서도 클래스를 열고 싶다. 한국에도 훌륭한 러너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적절한 훈련과 트레이닝을 받는다면 세계대회에 나가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대표적인 트레일러닝대회

국내에는 제주트레이닝러닝대회가 유명하다. 제주의 오름과 오솔길, 산길을 연결한 아름다운 레이스로 국내 트레일러닝 동호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동남아 최고봉인 보루네오 섬의 키나발루(4102m)를 오르내리는 키나발루 울트라 트레일 레이스(TMBT)도 유명하다. 55km·100km 등이 있으며, 고도차가 3000m에 달해 고소증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네팔에서도 히말라야 고산지대를 달리는 트레일러닝대회가 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아래 고락셉(5150m)에서 루클라공항(2850m)마을까지 66km를 달리는 대회다. 고산지대에서 남다른 폐활량을 자랑하는 현지 셰르파(Sherpa)들의 독무대다. 유럽 최고봉 몽블랑(4807m) 둘레길 160~170km를 달리는 울트라트레일마운틴몽블랑(UTMB)이 유명하다. 이밖에도 아마존정글마라톤(100K·200K) 등 독특하고 이색적인 트레일러닝대회가 전세계에서 열리고 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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