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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텔링] 남편 기도원 보낸 뒤 거짓 실종신고…보험금 15억 챙기고 연락 끊은 아내

중앙일보 2016.06.17 01:47 종합 14면 지면보기
수사를 하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복잡하고 기묘하다고까지 여겨지는 사건이었어요. 지난달 P보험사로부터 한 통의 진정서가 접수됐어요. 최근 사망보험금을 15억여원 수령한 고객이 있는데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는 내용이었죠. 그렇게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름까지 바꾸고 사라졌던 아내
보험사 신고로 사기 혐의 구속
“자녀 유학비 부담돼 범행” 눈물

결론부터 말하면 보험사의 의심이 맞았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경찰에 허위로 실종 신고를 한 뒤 거액의 보험금을 가로챈 거였죠. 이후 저는 아내 전모(57)씨와 남편 이모(45)씨를 모두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씨와 전씨는 2000년 천주교 기도회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습니다. 서울의 명문대 의대를 졸업한 이씨는 신학대 지원을 희망했는데 그 과정에서 목회 상담 일을 하던 전씨와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다 둘은 연인 관계가 됐고 띠동갑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2005년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이씨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경제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잠시 정신과 병원을 개원하기도 했지만 한 달도 안 돼 폐업했죠. 이후 이씨가 ‘인격장애성정서불안’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씨의 병원 치료비가 계속 불어났죠. 캐나다 유학 중인 전씨의 세 자녀에게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죠. 경제적 부담이 갈수록 커졌고 둘 사이의 다툼도 늘었습니다.

전씨 진술에 따르면 하루는 두 사람이 지방으로 성지순례를 갔는데 거기서 만난 신부가 “남자는 곧 높은 곳에 오를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합니다. 둘은 그 예언을 ‘이씨의 죽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2006년 3월 P사의 생명보험에 가입했습니다. 당시 이씨는 전씨에게 “이제 난 곧 죽으니 이런 거라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보험사 심사 과정에서 부동산 임대수익과 금융수익 등을 부풀려 보험금을 15억여원까지 올렸죠. 아내에게 보험을 ‘선물’한 뒤 이씨는 “조용히 죽고 싶다”며 경기도 파주의 한 금식기도원으로 떠났습니다.

예언(?)과 달리 이씨는 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씨는 2007년 2월을 끝으로 기도원에 보내던 생활비를 끊었습니다. 이씨는 그때부터 이별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기사 이미지

우리가 조사해 보니 이후 전씨의 행보는 ‘속전속결’이었습니다. 전씨는 그해 2월 이름 개명했습니다. 7월에는 “여섯 달 전 남편이 집을 나가 아직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며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습니다. 11월에는 전화번호를 바꿨죠. 2012년에는 서울가정법원에 실종 선고 심판을 청구했고 2년 뒤 실종 선고를 받아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4년 7월 거액의 보험금을 탔습니다. 보험금 대부분은 서울 중심가의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구입하는 데 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같은 기간 생활비가 떨어진 남편 이씨는 노숙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공중화장실에서 잠을 자고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구했대요. 그러다 2012년에 만난 노숙인 전담 경찰관을 통해 자신이 실종 신고돼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씨는 즉시 실종 신고를 해제했고 전씨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전씨는 이미 연락처와 이름을 바꾸고 사라진 지 오래였죠.

이씨의 실종 신고 해제는 2012년, 법원의 실종 선고는 2014년에 내려졌습니다. 어떻게 법원은 실종 선고의 기초 사실인 실종 신고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선고를 내린 걸까요? 경찰에선 실종자가 나타나도 법원에서 실종 선고가 진행 중인지 알 수 없었고 법원이 실종 선고를 내리기 전 실시하는 각종 조회 항목에도 실종 신고 유지 여부가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에 허점이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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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며 전씨는 모든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자녀 유학비가 부담돼 범행을 저질렀다면서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이씨는 놀라면서도 “아내를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전씨를 더 이상 보고 싶진 않다고 하더군요. 사기 혐의로 구속된 전씨는 “제발 내 자식들은 살려 달라”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종교와 사랑, 욕심 등이 복잡하게 뒤얽힌 10여 년 세월의 말로(末路)였습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서울 서대문경찰서 지능팀 등을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당시 사건을 맡았던 수사관 시점에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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