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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모기장으로의 회귀

중앙일보 2016.06.17 00:32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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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올여름은 더울 것 같다. 평년보다 더 덥다는 기상청 예보도 있거니와 매일 밤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 딸아이 잠자리에 거대한 모기장을 치는 일이다.

조심성 많은 아내의 결정이다. 아내는 전자모기향이 가습기 살균제와 다를 게 없다고 믿는다. 스프레이 모기약을 뿌릴 때는 절대로 숨을 쉬지 못하게 한다. 지카 바이러스 소식까지 전해진 올여름엔 모기와 1대 1로 겨룰 각오가 돼 있다. 스프레이 성분엔 분명 가습기 살균제와는 다른 성분명이 적혀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보도는 아내의 결심을 더 굳건하게 했다. 수년 전 마트에서 살균제를 장바구니에 넣을까 말까 고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왠지 미심쩍어 그냥 내려놓은 그 순간을 천우신조라고 해야 할까.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의심의 눈초리는 방취제를 거쳐 모기약에 도달했다. 어차피 곤충을 죽이는 약품인데 몸에 좋을 리가 있겠느냐는 합리적 의심이다.

대안은 모기장이었다. 약을 쓰지 못하니 딸아이를 모기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반대할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피부에 닿으면 약간 까슬하고 차갑기도 한 촉감은 은근히 기분 좋기도 했다. 어린 시절 모기장 속에서 맞던 선풍기 바람의 상쾌한 기억도 떠올랐다.

다만 매일 밤 가장 키가 큰 아빠로서(사실 아내와 거의 차이가 없다) 모기장을 걸고, 아침이면 걷어서 이불장에 넣는 간단치 않은 노동이 생겼다. 술자리나 야근이라도 있는 날이면 직무유기가 하나 더 늘게 됐다. 아내의 유난인 걸 알지만 참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최근 한 온라인쇼핑 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스프레이형과 액상형 모기약 모두 매출이 급격히 줄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판매 증가율에 비해 각각 6%, 18% 증가에 그쳤다고 한다. 반면 모기장·방충망 매출은 1년 전의 두 배로 뛰었다. ‘해충 퇴치 식물’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구문초, 밴쿠버, 야래향 등의 판매도 82% 늘었다. 다른 쇼핑몰에서도 원터치 모기장(3.3배), 모기채(2배), 일반 모기장(51%)의 판매가 증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TV 속 살충제 광고는 한가하기만 하다. 그 옛날의 북한 간첩처럼 생긴 모기 캐릭터가 약에 닿자마자 폭발하는 구태의연한 내용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물건 팔 욕심이 있다면 인체에 무해하다는 주장으로 도배를 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그런 언급은 없다. ‘촉’의 귀재들이 모인다는 광고쟁이들이 왜? 혹시 공공의 적이 된 옥시처럼 뭔가 숨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과도한 의심이길 바란다. 하지만 모기장 사는 시민들은 그렇게 앞서가고 노심초사한다. 청문회로 모든 것을 밝히겠다는 국회에도 그런 질문을 퍼붓고 싶을 것이다. 개원과 동시에 “국민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외치고 있는 20대 국회는 과연 그들의 눈높이로 회귀할 수 있을까.


김 승 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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