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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선도 거꾸로 하면 도선국, 그렇게 간첩으로 몰렸다

중앙일보 2016.06.16 02:30 종합 14면 지면보기
1980년 4월 서울 종로구 묘동 국선도 본원에서 제사가 있던 날이었다. 제사를 기다리다 밤 10시가 넘었을 무렵 “취소됐다”는 한 사범의 말에 나는 기거하던 은평 수련원으로 향했다. 창덕궁을 막 지났을 때 남성 서넛이 나를 에워쌌다. “혁대 풀어. 신발 벗어. 소지품 다 꺼내.”

[사건 : 텔링] 수련원 가다 서빙고 분실 끌려가
국가 전복 꾀했다며 몽둥이 찜질
율도국 세운 홍길동도 아니고 ?
누명 벗었지만 36년 한 어찌 푸나

끌려간 곳은 종로3가 파출소였다. ‘뭐가 잘못됐지…’. 의아함과 두려움이 채 걷히기도 전 버스에 실렸다. 버스는 본원으로 가 청산선사(본명 고경민)와 몇 명을 더 태웠다. 고한영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 청산선사는 현대 국선도의 창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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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의 건물에서 밤새 진술서를 썼다. 17세에 출가한 일이며 승가대학에 입학한 뒤 국선도를 수련해 온 과정 전부에 대해 적었다. ‘죄가 없으면 풀려나겠지’라고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다음 날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개별 사진 촬영이 시작됐다. ‘어, 이거 죄수들이나 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발과 주먹이 몸 구석구석에 박혔다.

맞고 또 맞기를 계속한 지 3~4일 만에 한 수사관의 윽박지르는 소리에서 알게 된 체포 사유는 청천벽력이었다. “너는 지금부터 간첩이다. 국가 전복을 꾀한 놈이다. 여기서 죽이든지 아니면 휴전선에 세워놓고 총살하고 사진 찍어 신문에 낼 거다. 월북하려 했다고.” 몽둥이찜질과 자술서 작성이 일주일간 계속됐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임상수 나와”라는 호통에 ‘이제 죽는구나’하는 직감이 스쳤다. 군용 지프에 태워진 뒤 어느 한적한 거리에서 “이번 일을 발설하면 그땐 진짜 죽는다”는 말과 함께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돌아가 보니 은평 수련원도 쑥대밭이었다. 군인들이 들이닥쳤다고 했다. 얼마 뒤 청산선사에게 실형이 선고됐고, 그 뒤로 그가 어떻게 됐는지 아는 이는 없다. 내가 뒤집어쓴 누명의 실체는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비로소 알게 됐다. 이른바 ‘도선국 개국 선언’ 사건 또는 ‘고한영 내란 음모사건 연루’였다. ‘도선국을 세우려는 청산선사의 음모에 가담했다’는 것이었다. 국선도를 거꾸로 읽으면 ‘도선국’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했다. 율도국을 세웠다는 홍길동이 된 기분이었다.

고문 후유증은 길었다. 혀가 말리고 몸이 굳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증상이 반복됐다. 전국 각지의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다량의 스테로이드 처방 외에 답이 없었다. ‘용서하자. 용서하자’고 되뇌었지만 쉽지 않았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능하다는 스님·신부님·목사님·심리치료 전문가를 찾아가고 인도에도 다녀왔다.

과거사위의 진상규명 결정문을 받아 든 뒤 2011년 6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국가가 처음 돌려준 답은 “소멸시효가 끝났다”였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거쳐 지난달 말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받기까지 꼬박 5년이 흘렀다. 나는 15억원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5422만원만 인정했다. ‘5년간의 한시 장해’라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36년째 고통을 겪고 있는데 법원은 그렇지가 않다고 했다.

임장혁·정혁준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임상수(61) 국선도 법사를 인터뷰한 내용과 지난달 31일 서울고법 판결을 토대로 그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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