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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정신못차린 음주족들, 일가족 3대 음주운전 참변 뒤에도 도로에 활개

중앙일보 2016.06.1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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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단조는 샛길로 빠지는 차량 주시하고, 화물차·택시 예외 없이 단속한다.”

14일 오후 9시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외곽 순환로. 이날 전국에서 시행된 음주운전 일제단속을 위해 청주 흥덕경찰서 교통관리계 단속반 25명이 길가에 진을 쳤다. 강대식 흥덕서 교통관리계장은 “2㎞ 반경에 나이트클럽과 술집이 몰려 있는 곳이라 음주 운전이 빈번한 곳”이라며 “두 명씩 짝을 이뤄 4개조가 음주감지를 하고 적발 여부는 음주측정기로 최종 판가름한다”고 설명했다. 단속을 회피하는 차량을 막기 위해 300m 앞 우회로를 막아선 ‘차단조’도 배치됐다.
 
 

삐~ 적발됐습니다.”


오후 9시36분 검은색 그랜저 승용차를 탄 정모(33)씨가 먼저 단속에 걸렸다. 머리를 긁적이던 정씨는 “2시간 전에 소주 2잔을 마셨을 뿐”이라고 말했다. 음주측정기에 숨을 불어 넣자 ‘0.027’이란 숫자가 보였다. 윤보현 흥덕서 교통외근팀장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처벌 대상인 0.05% 이하여서 훈방조치 하겠지만 운전은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 현행법상 혈중 알코올 농도 0.05%~0.1% 미만은 면허정지, 0.1%이상은 면허취소에 해당한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서도 일제 음주운전 단속이 이뤄졌다. 인계로 왕복 6차선 도로의 양방향 차선에서 검문에 나선 수원남부경찰서 교통안전계 직원 등은 음주감지기를 운전자의 입 앞에 가져다 대길 반복했다.

단속을 시작한지 40분쯤 되자 ‘삐~’ 소리와 함께 다소 긴장한 표정의 운전자가 나타났다. 차에서 내린 조모(46)씨는 맞은 편의 음주측정 장소로 이동했다. 조씨는 물로 입안을 한 차례 헹군 후 음주측정기에 숨을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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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지와 함께 나온 조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 수치는 0.02%였다. 조씨는 ‘훈방’이라는 설명을 듣자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이날 인계동 단속현장에선 관광버스 기사 김모(50)씨 등 훈방을 받은 운전자 2명이 더 나왔지만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대리운전을 부르거나 택시를 타는 게 좋지 않겠냐”는 경찰관의 권유는 한 귀로 흘렸다.

비슷한 시각 부산시 진구 가야시장 인근 주례 방향 편도 5차로. 오후 9시50분쯤 경찰관들이 “어? 저 운전자 차에서 내려서 도망간다. 잡아 잡아. 거기 서!” 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을 준비하려고 표시등을 설치하는 찰나 4차로를 주행하던 코란도 스포츠 차량 운전자가 1차로에 비상등을 켠 채 달아난 것이다. 이 운전자는 차량 열쇠를 뽑고는 현장에서 사라졌다. 경찰관 2명이 그를 20여분 가까이 쫓았지만 놓치고 말았다. 주인을 잃은 차량은 1시간30분 만에 견인조치됐다. 한 경찰관은 “운전자가 달아난 것으로 미뤄 음주 운전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차량을 길 한복판에 세우고 도망가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오후 10시20분이 되자 충북 청주 단속현장에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30대 여성이 차에서 내렸다. 회사원 김모(36ㆍ여)씨는 “3시간 전에 맥주 500㎖ 한 잔을 마셨다”고 변명했다. A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3%로 가까스로 처벌을 면했지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같은 시각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도청 정문 앞 도로에선 경찰과 음주 운전자와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혈중 알코올 농도 0.234%가 나온 A모(31·여)씨는 “기계가 맞긴 해요? 면허 취소가 나오는 게 말이 돼요?”라며 전주 완산경찰서 최연준(49) 경위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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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혀 꼬인 말투로 “맥주 1병만 먹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경찰이 “호흡 측정을 인정 못 하시면 혈액 채취를 할 수 있다”고 안내하자 A씨는 울먹이며 동정에 호소했다. “지금 해야 돼요? 아기가 기다린다고 했잖아요. (아기) 아빠가 없어요.” A씨는 손에 들고 있던 볼펜과 혈액 채취 동의서를 바닥에 내팽개 치기도 했다. “우리나라 법이 그래요? 이딴 식이에요?”라며 소리도 질렀다. 이런 승강이는 40분간 계속됐다.
 
이날 오후 11시15분쯤 수원 인계동 유흥가 도로에선 30대 남성이 음주감지기에 걸렸다. 그는 “가까운 곳에서 저녁 모임을 가졌고 술을 조금 밖에 마시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0.1%)를 넘긴 0.136%이었다.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로 일가족 3대(代)가 참변을 당한 이후에도 여전히 술 취한 상태서 운전대를 잡는 것이다. 이어 두 명의 운전자가 각각 혈중알코올농도 0.083%과 0.057%로 면허가 정지됐다. 이중 한 명(49)은 “점심 때 마신 술인데 결과가 잘못됐다”고 억지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한 경찰관은 “음주운전자와 단속 경찰관의 싸움은 마치 무엇이든 뚫는 창과 무엇이든 막을 수 있는 방패의 싸움같다”고 씁쓸해했다.

단속도중 술취한 40~50대 남성들은 순찰차를 보고 “택시 대신 빽차(순찰차를 부르는 은어)나 타고 가자” “우리를 태워달라”는 소리를 지르며 단속에 훼방을 놓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 강승호(36·용인)씨는 “술이 문제”라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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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에서도 오후 11시58분쯤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음주 운전자가 나왔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던 김모(34)씨는 측정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39%가 나왔다. 김씨는 “소주 딱 1병을 마시고 500m 운전했다”고 어리둥절해 했다. 그는 “대리운전 불렀는데 안왔다” “처음인데 선처해 달라” “벌금이 얼마냐”며 경찰관에게 따지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후 9시부터 2시간 동안 전국 1547곳에서 일제 음주운전을 벌인 단속 결과 534명이 적발됐다. 지난해 하루 평균 단속 인원 666명의 80%에 달하는 수치다. 면허취소는 197명·면허정지는 313명·채혈 19명·음주측정 거부 5명이다. 검문에 불응하고 도주한 5명은 현행범으로 검거됐다.

홍성화 부산진경찰서 교통센터팀장은 “일제 음주운전 단속을 예고했는데도 적발된 건수는 평소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음주운전 적발 기준 수치를 현재보다 더 낮춰 강화하던지 벌금형이 아닌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많이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청주·전주·수원·부산=최종권·김준희·김민욱·강승우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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