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9년부터 건설·자산개발 지원하라는 지침 내려와”

중앙일보 2016.06.15 03:00 종합 5면 지면보기
롯데그룹 사령탑인 정책본부가 계열사들을 동원해 롯데건설과 롯데자산개발(이하 자산개발)을 집중 지원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 두 회사가 롯데그룹의 비자금 조성 창구인지에 대해 수사 중이다.

롯데 고위관계자 “그룹 차원 결정”
공사 선급금 서너 배 주는 방식
검찰, 비자금 조성 창구인지 수사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14일 “신격호(95) 총괄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어려움에 빠진 계열사들을 지원한 2009년부터 그룹 차원에서 건설과 자산개발을 지원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신 총괄회장은 당시 금융위기와 영업부진 등으로 어려움에 빠진 롯데기공과 푸드스타, 케이피케미칼 등 3개 계열사를 돕기 위해 보유 중이던 계열사 주식 등 28만800주(950억원 상당)를 무상으로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들 세 회사는 결국 롯데알미늄과 롯데리아, 롯데케미칼에 각각 편입됐다.

이 관계자는 “그룹 총수가 사정이 최악인 세 회사에 사재까지 출연하는 마당이니 당시에는 그룹 차원에서 향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큰 롯데건설과 자산개발을 지원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롯데 계열사들은 롯데건설에 공사 선급금 등을 업계의 일반적인 관행보다 서너 배 이상 더 지급하고, 지급 시기도 가급적 앞당기는 식으로 지원했다. 또 공사대금을 깎지 않고 건설 쪽에서 원하는 수준으로 맞춰주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롯데건설의 실적은 빠른 속도로 나아졌다. 2010년 3조6646억원 매출에 869억원의 적자를 냈던 롯데건설은 이듬해 3조7955억원 매출에 27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반등했다. 롯데건설은 2010년 이후 전체 매출 중 그룹 관련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당시 롯데건설에 공사대금을 미리 지급했던 계열사들은 불만이 많았다. 계열사에서 당겨 받은 공사대금 등을 토대로 다시 낮은 가격에 하도급을 주면서 그 차익을 남기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롯데건설은 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있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공사도 맡고 있다.

롯데자산개발도 사정은 비슷하다. 자산개발은 지난해 1550억원 매출(연결 기준)에 1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 중 그룹 관련 매출은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다. 2007년 롯데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이 회사는 ‘종합 부동산 개발사’를 표방한다. 그룹이 보유 중인 토지를 개발해 대형 복합쇼핑몰 등을 세우고 운영하는 게 주요 업무다.

지금은 인천 송도와 서울 은평구 등지에서 대규모 복합몰 건립을 추진 중이다. 중국 청두에 1조원대 규모의 대형 복합쇼핑몰을 짓는 등 해외 사업도 한다. 회사 자체의 규모는 작지만 조 단위의 자금이 오가는 대형 개발사업을 주도하는 만큼 비자금을 마련하는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그룹 내부에선 출범 이후부터 자산개발의 효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롯데몰 김포공항점(이하 김포몰)처럼 자산개발이 시작해 적자를 보는 사업장이 많고, 백화점이나 마트 모두 기존 역량으로 충분히 점포를 출점하고 관리할 수 있는데 굳이 자산개발을 유지하는 건 그룹 수뇌부가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라며 “우리 입장에서 자산개발은 사실상 옥상옥”이라고 지적했다.

롯데몰 김포공항점에는 백화점과 몰, 대형마트와 영화관 등이 입점해 있다. 김포몰은 지난해 47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렸지만, 같은 기간 동안 190억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냈다.
 
▶관련 기사
① 검찰, 시작부터 총수 일가 조준…기존 기업 수사의 공식 뒤집어
② 케미칼, 원료 수입 때 일본 롯데 끼워넣어 비자금 의혹
[단독] 압수수색 보고받고 화낸 신격호 “나도 내 딸도 철저히 수사받을 것”


롯데그룹이 그룹 차원에서 의혹에 오른 계열사 지원을 주도한 것과 별도로 그룹 사령탑인 정책본부의 비용 처리 관행도 이번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게 그룹 내부의 우려다. 정책본부는 각 계열사가 일정 비율에 맞춰 내는 운영자금을 토대로 관련 비용을 조달해 왔다.

하지만 이것 외에는 별도 자금원이 없다 보니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은 롯데쇼핑 등 계열사에 넘겨 이를 각 계열사가 대납하는 일이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 이 때문에 지난 2013~2014년에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정책본부와 그룹 계열사 간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기도 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