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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학대 시대…노인학대 가해자 40%가 60세 이상

중앙일보 2016.06.15 01:42 종합 14면 지면보기
A씨(86·여)의 장남 B씨(63)는 정년을 마치고 귀농했다. 농사를 짓겠다는 아들에게 A씨는 고향 집과 산을 증여했다. 이때부터 아들 B씨의 태도는 돌변했다. 걸핏하면 A씨에게 “죽지도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갖다 버릴 거다” 같은 폭언을 퍼부었다. 결국 A씨는 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A씨는 “아들이랑 살다간 맞아 죽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본인도 건사 힘든데 부양 스트레스
노인끼리 학대 작년 1762건 접수
배우자가 36% 차지, 자식도 13%

노인이 노인에게 학대를 당하는 노노(老老)학대는 고령화 시대의 단면이다. 그런데 지난해 노인학대 가해자 10명 중 4명이 60세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가 14일 발표한 ‘2015년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노노학대가 갈수록 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학대는 신체·정신·성적 폭력 등을 통해 상대방을 괴롭히거나 유기·방임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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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보건복지부


지난해 60세 이상인 가해자가 다른 노인에게 학대를 가한 건수는 1762건이었다. 전년에 비해 12.8% 늘었다. 2011년 전체 학대 건수의 30.2%가 가해자 연령이 60세 이상인 노노학대에 해당했는데 이 비율이 지난해 41.7%까지 올랐다. 이재용 복지부 노인정책과장은 “노인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배우자와의 삶의 기간이 연장되면서 노노학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학대를 가하는 노인 3명 중 1명(36.0%)은 배우자였다. 강원도의 한 학대 피해 노인 전용 쉼터에 있는 C씨(77·여)도 알코올중독과 의처증을 보이는 남편에게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팔목 뼈가 부서지고 이마가 찢어지는 등 폭행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왔다. 노인이 된 아들과 딸 등 자식이 가해자인 경우도 12.8%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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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보건복지부


이에 비해 가해자의 연령과 관계없이 60세 이상 노인이 피해자인 노인 학대 건수는 지난해 3818건(전년 대비 8.1% 증가)이었다. 학대 유형별(중복)로 모욕과 협박 등 정서적 학대(37.9%)가 주를 이뤘고, 신체적 학대(25.9%), 방임(14.9%) 등의 순이었다. 60세 이상 노인 피해자에게 가해를 가한 10명 중 3명 이상은 아들(36.1%)이었고, 배우자(15.4%), 딸(10.7%), 며느리(4.3%) 등이 뒤를 이었다. 친족에 의한 학대가 대다수(69.6%)를 차지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 연령에 접어들면서 노인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앞으로 노노학대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캐나다의 경우도 지난해 노인 학대 피해자가 한 해 75만 명에 달했는데 10년 전의 두 배였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식이든 배우자든 본인도 고령으로 돌봄이 필요한 상태에서 또 다른 노인을 돌봐야 하는데 신체·정신적으로 감당할 여력이 없다 보니 그 스트레스가 결국 노인학대로 이어진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노노가구의 특성도 학대를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독거 노인 중심의 대책에서 범위를 넓혀 노노가구의 부담을 덜어줄 돌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고령화로 노노학대는 꾸준히 늘 수밖에 없다”며 “특히 독거 노인이 본인을 방임하는 형태로 학대하는 경우 방치하면 자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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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올해 말부터 노인학대 관련 범죄자의 노인 관련 기관 취업을 제한하고, 노인학대 상습범과 노인복지시설 종사자는 해당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키로 했다. 또 노인학대 신고의무자 직군을 현행 8개에서 14개로 확대하고, 신고의무를 위반했을 때 물리는 과태료를 500만원으로 200만원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재용 과장은 "지난해 개정된 노인복지법이 올해 12월 30일부터 시행된다”며 "학대 피해 노인을 위한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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