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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민 애환 서린 우암동, 세계인의 유산으로 만든다

중앙일보 2016.06.15 01:21 종합 2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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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전국의 피란민이 모여든 부산 남구 우암동 일대. [사진 강승우 기자]


“아이고 말도 마소. 사흘 밤낮을 얘기해도 모자랄낀데. 6·25전쟁 당시 부산 우암동은 다리 뻗고 누울 자리만 있으면 그게 다 잠자리였던 기라.”

부산시, 유네스코에 등재 추진
일제강점기 때 ‘소 막사’ 있던 곳
6·25 때 사람들 몰려 막사 생활
영도대교·보수동 등 25곳도 함께


1950년 6·25전쟁이 터진 직후 13살 무렵 경남 합천군에서 부모님을 따라 부산 남구 우암동에 왔다는 임경순(75) 할머니의 회고다.

임 할머니는 60년 전 일이지만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할머니는 “우암동은 전쟁을 피해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며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길바닥에 쌀 가마니를 깔고 덮으며 잠을 잤겠느냐”고 반문했다.

언덕에 소 형상을 한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우암동. 그래서인지 우암동 189번지 일대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소를 일본으로 수탈해가기 위해 검역하던 소 막사(축사)가 수십 개가 있었다.

전쟁 직후 이곳에 모여든 20만 명의 피란민은 소 막사를 개조해 생활했다. 그나마 운이 좋아야 소 막사 안에서 지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길바닥 생활이었다.

이 동네 복음한의원 이규동(91) 원장도 비슷했다. 황해도에서 농사를 짓던 이 원장은 전쟁이 발발하자 우암동에 내려왔다. 그는 소 막사에서 남녀 구분없이 수십 명과 같이 생활했다. 먹고 자는 문제부터 온갖 고생을 했다. 1년간 부두에서 군수 물자 옮기는 일을 해 모은 돈으로 어렵게 작은 방을 구해 소 막사를 벗어났다. 고학 끝에 한의사 시험에 합격한 이 원장은 당시 지냈던 소 막사 근처에 한의원을 차려 지금까지 50년 넘게 환자를 돌봤다.

소 막사는 전쟁 당시 국민의 애환이 담긴 역사물이다. 많을 때 40여 개나 되던 소 막사 일대는 이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다닥다닥 붙은 주택들로 채워져 있다. 지금은 소 막사 3곳 정도만 예전의 소 막사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이곳 우암동은 내가 한평생을 살아온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라며 “아직 남아 있는 소 막사를 보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침 부산시가 ‘대한민국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전쟁 당시의 건축물과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시는 세계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우암동 피란민 주거시설, 영도대교, 보수동 책방골목, 성지곡수원지 등 25건을 등재 대상으로 선정했다. 남구청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이 사업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우암동 일대는 주택 개·보수와 빈집 정비 등을 골자로 하는 도시 재생사업이 진행되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잠정목록에 등재하려면 소 막사 등을 보존해야 하는데 재생사업이나 재개발사업이 벌어지면 철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시가 지난 10일 서병수 부산시장 주재로 설명회를 열고 구청과 주민에게 협조를 당부하고 나선 이유다.

최유진 부산시 도시재생과 담당은 “시민의 주거환경과 직결된 문제여서 현재 거주하는 주민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시청과 남구청이 설명회를 여는 등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협조를 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강승우 기자 kang.seu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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