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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의 직격 인터뷰] 한반도포럼 백영철 이사장 “평화와 통일의 초당적 마스터플랜을 만들자”

중앙일보 2016.06.15 00:48 종합 27면 지면보기
“제1의 자연법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한 평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 정치철학의 기초가 된 『리바이어던』 저자인 토머스 홉스(1588~1679)가 평화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던진 말이다.

북핵·남북 문제 분리 대응해야
한반도는 지금 평화에 집중할 때
제재와 협상 투 트랙으로 가면서
압박·유인 병행해야 압박 성공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중국마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으르렁대고 있다. 한반도가 안팎으로 갈등이 겹치면서 동북아의 화약고가 돼 가고 있다. 이대로 방치해 두면 큰일 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남북관계는 북한 군부의 강경 노선과 한국의 강경 노선이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반도는 지금 평화에 집중해야 할 시기다.

올해로 창립 5주년을 맞은 한반도포럼 백영철(73) 이사장의 지론은 ‘평화 First’다. 백 이사장은 1995년 중국 베이징을 시작으로 여섯 차례 남북 해외학자 학술회의를 여는 등 한반도 평화의 비전과 대책을 제시하는 평화의 담론을 선도해 왔다. 그에게 답답한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해법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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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 한반도포럼 이사장은 정권마다 바뀌는 단절적 대북정책이 남북관계의 불신과 혼란을 가중시켰다며 정부와 국회가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해 지속 가능한 대북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재차 강조했는데.
“현 정부는 핵 문제에 집중하면서 결국 통일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런 일방적 접근은 무력 도발과 충돌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우리는 국지전의 참사나 전면전의 재앙을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 평화가 통일에 우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북핵과 남북 문제를 일정 수준 분리 대응해야 한다.”
북핵과 남북 문제를 어떻게 분리 대응하자는 얘기인가.
“북핵은 6자회담, 북·미 회담, 남·북·미·중 간의 협상과 대화, 그리고 유엔 제재 등 국제적 수준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핵화에 응하면 평화협정과 불가침 조약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 추진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미·중은 제재와 협상 투 트랙의 운영 계획을 열어놓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협상 대책이 없고 제재만을 고수하고 있다. 하루빨리 제재와 협상의 투 트랙에 올라타야 한다. 한편 남북 문제는 한반도 내부의 문제다. 북핵과 달리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북핵은 북핵대로 국제 공조를 통해 적극적 해법을 찾고 남북 문제는 남북끼리 대화와 협력, 평화의 실마리를 찾자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제재만을 고집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을 텐데 …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제재를 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제재가 그들을 비핵화의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추동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견인하기 위해선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평화의 대책과 비전을 담은 유인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압박과 유인을 병행해야 압박이 성공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이 연이어 남북 군사회담 등을 제의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남북 회담은 우리가 북한에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선언, 6자회담 복귀 등을 적극적인 자세로 유도할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한국이 평화체제 건설과 북한 비핵화의 교환 제의를 주도적으로 해볼 수도 있다. 마이클 매든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방문연구원은 북한의 제의를 활용해 대화의 실마리를 찾을 것을 권고했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대북제재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다.”
남북 문제를 더 좁혀서 얘기해 보자. 한국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대화 채널을 복원해야 한다. 특히 물밑 접촉은 갈등을 최소화하고 분쟁 극복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둘째, 대북 인도적 지원을 재개해야 한다.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인도적 지원을 상시화하고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추진하면 된다. 셋째, 민간 교류를 허용해야 한다. 당면 현안에 대한 민간 전문가 수준의 탐색적·예비적 성격으로 회의를 열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은 한반도의 안정적이고 평화적 분단 관리에 도움을 줘 궁극적으로 비핵-평화체제 건설에 이바지할 것으로 본다.”
20대 국회가 지난달 30일 출범했다. 20대 국회가 남북관계 개선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20대 총선의 결과로 여소야대가 형성됐다. 정당 간에 협치를 하라는 것이 국민과 시대의 요구다. 지금까지의 정권마다 바뀌는 단절적 대북정책은 남북관계의 불신과 혼란을 가중시켰다. 앞으로 정부와 국회는 이른 시일 내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해 초당적이고 일관성 있는 지속 가능한 대북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한반도포럼은 지난해 6월 공동 학술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국회와 합의한 바 있다. 통독 이전에 기민당과 사민당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서독은 일관성 있는 동방정책을 20년 가까이 추진해 결국 통일을 일궈냈다. 이런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되새겨야 한다.”
한반도포럼은 남북 해외학자 학술회의의 개최로 남북관계사에서 한 획을 그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첫 학술회의는 95년 7월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됐다. 당시 한반도포럼의 전신인 한국통일포럼이 행사를 준비했다. 그 이후 99년까지 매년 열렸고 다시 2003년 평양에서 개최했다.”
북한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나왔나.
“노동당에서 대남정책을 담당하는 통일전선부와 사회과학원의 정책 실세들이 나왔다.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원동연 통전부 부부장(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 조성발 조선철학협회 회장, 박영수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2003년 사망), 최성익 김일성대 교수(현 조선적십자회 부위원장), 김구식 사회과학원 연구위원, 박영철 조국통일연구원 부원장 등이다. 박영수는 94년 ‘서울 불바다’를 발언한 장본인이다. 그는 98년 제4차 회의에 북측 단장으로 참석해 4년 전 불바다 발언에 대해 한국 대표단에 해명·사과하기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회의는.
“2003년 3월 평양의 중심부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제6차 회의였다. 이라크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저녁에는 공습 사이렌이 울릴 정도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회의에서 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제목으로 기조발제 할 기회를 가졌다. 자랑 같지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틀을 최초로 발표했다. 이에 앞서 예비회의(3월 19일)에서 제시했다. 북한 참석자는 “윗선(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해 5월 당시 왕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북한을 방문해 6자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해 8월에 제1차 6자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렸다.”
추가로 어떤 제안을 했나.
“요즘 논의되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평화체제-경제협력의 동시적·단계적인 병행추진 방안도 그때 제시했다. 이를 위한 세부적인 로드맵도 함께 언급했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제안이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 지원을 담은 2005년 9·19 합의의 기본 골격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보다 포괄적·체계적·세부적이다. 지금도 보람을 느낀다.”
그러면 당시 기조발제는 어떻게 준비했나.
“발표는 제가 했지만 세부적 내용은 당시 한국 최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이뤄진 집단적 지혜(Colletive Wisdom)의 결과였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박영호 강원대 교수,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문정인·박명림 연세대 교수 등 15명의 전문가가 도와주었다. 저보다 훌륭한 사람들의 지혜를 빌려 큰 성과물을 낼 수 있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 평화협력프로세스’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는데 어떤 내용이었나.
“한반도 평화협력프로세스는 김영삼 정부가 제시한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보완해 한반도포럼이 만든 ‘남북공동체 통일 방안(평화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의 1단계인 평화협력 과정을 완성하기 위한 정책 구상이다. 한반도포럼 회원 30~40명이 30여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만들었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과 연계해 평화협정 체결, 북·미 관계 정상화를 포함한 한반도 비핵-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내용이다. 아울러 대북 경제적 지원사업으로 민족경제공동체를 구축해 통일의 기반을 만들어 가자는 로드맵이 담겨 있었다.”
이 프로세스에 대한 반향이 있었나.
“2012년 각 대선 캠프가 이를 공약으로 대폭 수용했다. 하지만 지금 남북관계를 보면 한반도포럼의 제안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 평화협력프로세스’ 개정판을 준비하려고 한다. 유엔 제재 부분을 심도 있게 논의해 보완할 것이며 2012년보다 더 세부적으로 접근할 예정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 정부에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나.
“한반도 문제는 북핵 문제, 남북 문제, 통일 관리 등 세 가지 수준에서 접근하고 풀어나가야 한다. 지금은 세 가지 수준이 서로 뒤엉켜 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한반도의 비핵화가 실현되면 남북 문제도 안정화되고 장기적으로 평화통일의 기반이 구축될 수 있다. 비록 비핵화 문제가 해결되기 이전이라도 한반도에 최소한의 안정과 무력충돌이 없는 소극적 평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초당적 마스터플랜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조언한다면.
“북한은 미국의 잠재적 위험에 대비해 자신의 생존권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서 핵 보유국의 지위를 추구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은 북·미 관계 정상화, 세계은행(World Bank)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국제적이고 보편적으로 부합할 수 있는 자기 변화와 발전을 스스로 도모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경제 병진노선보다는 안보 우려를 해소하는 평화체제 건설과 경제 병진 정책을 추구하여 남북 공동 번영,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역사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백영철 이사장은 …

1943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하와이주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백 이사장은 의회정치를 전공한 것이 민간 차원의 남북 접촉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는 의회의 중요한 기능인 갈등을 관리하고 해결하는 방법(토론의 예절)을 남북 해외학자 학술회의 개최 및 정례화에 적용했다. 그리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자문교수, 6·15공동위 남측 학술위원회 상임대표,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자문위원 등을 거치면서 10여 차례 이상 북한을 방문했다. 98년에는 제27대 한국정치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싱크탱크인 한반도포럼의 이사장이자 건국대 명예교수이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평화협력프로세스』(2012),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2004), 『21세기 남북관계론』(1999), 『분단을 넘어 통일을 향해』(2000) 등이 있다.

글=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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