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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아무도 안 듣는 ‘VIP 축사’는 없애자

중앙일보 2016.06.15 00:40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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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경제부문 기자

6월 초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벤처정책 관련 토론회장. “행사에 앞서 오늘 자리를 빛내주신 OOO 의원님의 축사를…”이라는 사회자의 말이 나오자 방청객의 시선이 스마트폰이나 나눠준 자료집으로 떨어졌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이 지루한 순서가 끝날 때까지 소일거리가 필요했을 뿐이다. 20여 분이 지나 두 번째 축사가 시작될 무렵 급기야 한 구석에서 푸념 소리가 들렸다. “저 양반들 하나 마나 한 소리 대신 질의응답 시간이나 더 주지”.

각종 정책 콘퍼런스·세미나·공청회가 열리면 시작부터 빠지지 않는 ‘의식’이 있다. VIP 축사다. 주최 측 대표나 국회의원, 정부부처·공공기관의 기관장이나 고위직 공무원 등이 한 말씀들 하신다. 보통 행사장의 맨 앞줄 또는 단상과 가장 가까운 원형 테이블에 그들끼리 모여 앉아 있다가 한 명씩 나와 얘기를 하는데, 규모가 큰 행사의 경우 3~4명의 축사를 다 듣고 나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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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참가자들은 대부분 축사를 들으나 마나 한 것으로 여긴다. 그 내용과 형식에 차이가 없어서다. 보통 ‘최근 바뀌는 환경 속에서 이런 문제가 나오고 있는데 많은 전문가를 모셔놓고 얘기하는 이 자리가 해결 방향을 찾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는 내용이 교과서처럼 쓰인다.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이나 의견 언급 없이 원론적으로 ‘별 탈 없는’ 내용만 전달한다. 여기에 간혹 자기 자랑을 덧붙이곤 하는데 방청객 입장에서 별 의미 없기는 마찬가지다.

알맹이 없는 내용 때문에 방청객 입장에서는 아무리 영향력 있는 정책 결정자가 오더라도 축사에 관심 가질 이유가 없다. 실제로 한 지인은 “일부러 축사 등이 끝난 뒤에 행사 장소에 도착하도록 스케줄을 조정한다”며 시간절약 비법(?)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에는 현장 목소리는 없이 이렇게 겉도는 축사 내용만 보도된다.

그러자 최근 벤처업계를 중심으로 축사를 아예 없애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 차라리 대담이나 문답을 하자는 의견도 제기된다. 여러 VIP가 돌아가면서 의미 없는 축사를 반복할 게 아니라 같이 둘러앉아 현안에 대한 입장과 의견을 편하게 대화 형식으로 주고받자는 것이다. 방청객의 몰입도를 높이고 VIP도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들을 수 있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런 형식이 보편적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VIP들의 훈련이 필요하다. 많은 축사가 겉도는 이유는 이들이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거나 확실하지 않은 내용이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걸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결국 VIP가 이슈에 대한 배경 지식과 식견을 갖춰야 해결될 문제다.

함 승 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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