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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백인의 검둥이’를 거부한 위대한 자유인 알리

중앙일보 2016.06.15 00:39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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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럴 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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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 이전에도 위대한 흑인 복서는 많았다.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는 세계 챔피언에 오른 뒤 무려 25차례나 왕위를 지켰다. ‘라이트 헤비급의 지존’ 아치 무어는 9년2개월간 세계 챔피언으로 군림했고 145차례나 KO승을 거뒀다. 숫자만 보면 56승(37KO) 5패인 알리의 전적을 압도한다.

하지만 이들은 ‘떠버리’ 알리와 달리 링에서 승승장구할수록 고개를 숙였다. 공개 석상에서 목소리 내는 것도 삼갔다. 왜 그랬을까. 흑인 남성이 주목을 받으면 백인 남성들이 반감을 숨기지 않던 시절에 살았기 때문이다. 백인들은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낸 흑인에게 “검둥이(Negro)들의 자랑거리가 돼라”고 충고하기 일쑤였다. 흑인이 스타가 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며, 어렵사리 스타가 된 흑인은 어리석고 열등한 흑인들을 교화하는 롤모델이 돼야 한다는 백인의 오만이 깔린 말이었다.

하지만 켄터키 출신의 젊은 복서 캐시어스 클레이는 이런 백인들의 올가미를 거부했다. 그는 “백인의 검둥이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를 실천했다. 22세에 당대의 핵주먹 소니 리스턴을 때려눕히고 세계 챔피언에 오른 뒤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클레이란 이름도 노예였던 조상들이 백인에게 받은 것이라며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다.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하며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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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의 반발은 엄청났다. 뉴욕타임스는 알리를 표기할 때 일부러 클레이란 그의 노예식 옛 이름을 썼다. 하지만 알리는 굽히지 않았다. 병역 거부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선수 생명이 끝날 위기에 몰렸지만 초연했다. 그가 벌금 1만 달러를 내고 징역형을 모면하자 전미권투협회는 선수 자격을 정지시켜 식물복서로 만들었다. 미 국무부도 가세했다. 알리가 해외 시합에 나가지 못하도록 여권을 압수했다. 치사하기 짝이 없는 조치였다. 알리는 3년 반 뒤에야 선수 자격을 되찾았다. 전성기가 지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날렵한 풋워크는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알리는 굴복하지 않았다.

알리가 스타덤에 오른 건 1960년대지만, 그의 위대함이 완성된 시기는 70년대다. 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진 알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술로 기적을 만들었다. 맷집을 키워 상대방의 펀치를 맞아 가며 버티다가 한 방에 때려눕히는 작전이었다. 74년 자이르 킨샤사에서 조지 포먼과 벌인 시합은 그 절정이었다. 알리는 링 로프에 기대 포먼의 핵주먹이 가하는 충격을 버텨내며 때를 기다렸다. 당시 40승 무패(37 KO승)를 기록 중이던 포먼의 펀치는 ‘투포환이 통째 내리꽂히는 수준’이란 말을 들을 만큼 강력했다. 보통 사람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아는 관중은 아연실색했다. 그러나 알리는 그런 핵주먹을 수십 개나 맞아 가며 맞섰다. 흥분한 관중은 알리를 일방적으로 응원했다. 마침내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결코 쓰러지지 않는 알리에게 공포를 느낀 포먼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킨샤사의 혈투’도 알리가 71·74·75년 조 프레지어와 치른 세 번의 명승부엔 비할 수 없다. 첫 시합에선 프레이저가 판정 끝에 이겼지만 알리는 두 번째·세 번째 시합에서 각각 판정승과 TKO 승을 거뒀다. 복싱 사상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알리의 투지를 입증한 시합이었다.

첫 시합에서 알리는 생애 최악이라 할 정도로 두들겨 맞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째·세 번째 시합에서 소나기 펀치를 날리다 지쳐버린 프레이저에게 일격을 가해 이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광을 위해 알리가 감수한 육체적 부담은 엄청났다. 프레이저와의 세 번째 시합 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고 고백한 알리의 말에서 그 고통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알리를 보호해줘야 할 매니저들은 파이트머니에 눈이 멀어 알리를 마구잡이로 링에 세웠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알리는 마침내 81년 자신보다 훨씬 어린 트레버 버빅에게 패배를 당한 끝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복싱 선수가 ‘마음’을 가졌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는 그가 권투에 탁월한 테크닉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비범한 체력과 투지를 가졌다는 의미도 아니다. ‘마음’을 가졌다는 건 특별하고 고귀한 정신을 가졌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 알리의 신비로움은 그의 정신적 위대함에 있다. 지극히 평범하고, 심지어는 미숙한 사람이 이뤄낸 위대함이라 더욱 값지다. 80년대 이후 베트남전의 환상이 깨지면서 미국인의 미움을 받던 알리는 미국의 영웅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병역기피자’ ‘변절자’란 비난을 받았던 흑인 청년은 인종을 뛰어넘는 평화와 인권의 아이콘이 됐다. 그러나 74세를 일기로 영면한 알리에게 이런 사실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는 세상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알리의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그의 말 한마디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복싱은 아무것도 아니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를 세상에 알리는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 작가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게이트 7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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