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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NIE] 구의역 사고, 안전 매뉴얼 어기게 만든 사회 구조가 원인

중앙일보 2016.06.15 00:02 Week& 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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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홀로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은성PSD 직원 김모씨가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제 갓 고교를 졸업한 김씨의 사고를 두고 사람들은 “그의 죽음은 ‘불의의 사고’가 아닙니다” “열아홉 살 비정규직 노동자.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아들” “문제는 매뉴얼이 아니라 시스템”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부족한 수리 인력, 출동 늦으면 벌금

19세 김씨는 7개월 전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간단한 교육을 받고 지하철 1~4호선의 승강장 안전문 수리를 맡았다. 매뉴얼은 ‘2인 1조’로 작업하도록 했지만 인력이 부족해 혼자 출동하는 일이 잦았다. 사고 당일 저녁 근무조는 김씨를 포함해 6명이었다. 4명은 현장에 나갔고, 그는 다른 한 명과 함께 사무실에 있다가 “구의역 승강장 안전문이 고장 났다”는 신고를 받고 서둘러 현장으로 혼자 나갔다. ‘신고 접수 후 1시간 내에 출동을 완료하지 못하면 지연배상금을 청구한다’는 계약이 있기 때문이다. 50분 만에 구의역에 도착한 그는 스크린도어를 열고 들어갔다가 달려오는 열차와 마주했다.

사고 직후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김씨 어머니에게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작업을 한 아이의 과실”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작업일지에 ‘2인 1조’로 작업을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놓았다. 왜 김씨는 혼자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중앙일보 2016년 6월 4일자 “너 잘못이 아니다”)

총 세 번의 사고 모두 용역업체 직원

김씨의 죽음 뒤에는 ‘서울메트로 마피아’(메피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메트로 퇴직자에게 월 400만원 이상의 월급을 챙겨주느라 현장 근무를 하는 김씨는 월 144만원의 박봉에 시달려야 했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5월 체결한 계약서에 따라 스크린도어 수리 인력 125명 중 30%를 서울메트로 출신으로 채워야 했다. 은성PSD는 용역비 월 6억5257만원의 30%인 1억9000만원을 38명의 메트로 퇴직자 인건비로 지출했다. 메트로 출신이 아닌 112명의 인건비·관리비·이윤 등은 나머지 금액에서 충당해야 했다.

다른 하청업체의 사정도 비슷하다. 2013년 4월 지하철 정비 용역업체인 ‘프로종합관리’ 소속 계약직 정비사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서울메트로 출신 직원과 같은 일을 하는데 임금·복지 차별이 크다”는 거였다. 인권위는 이에 대해 “서울시장은 용역업체로 옮긴 공기업 출신 근로자와 다른 근로자 사이에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바뀐 건 없다. (중앙일보 2016년 6월 3일자 ‘구의역 19세 죽음 뒤엔 ‘메피아 계약’ 있었다’)

이번 사건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2013년 1월 2호선 성수역 스크린도어에서 심모씨, 지난해 8월 2호선 강남역 스크린도어에서 조모씨, 그리고 지난달 28일 2호선 구의역에서 김모씨까지 세 번의 사고가 있었고 이들은 모두 용역업체 직원으로 혼자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희생됐다.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안전의 값어치

사건을 접한 시민들은 분노했다. 결국 지난 1일 정수영 서울메트로 사장 직무대행 겸 안전관리본부장은 원인 규명 및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정 본부장은 회견에서 “이번 사고의 원인은 고인의 잘못이 아닌 관리와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했다. 5일에는 서울메트로의 팀장급 이상 간부 170여 명 전원이 사표를 냈다.

우리는 이런 비극이 왜 일어났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매뉴얼은 현장에서 지켜질 수 없었다. 최저가 낙찰제로 용역업체를 선정했고, 비용 절감에만 수리 작업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근무조 6명이 서울 강북 49개 역의 장애 처리를 맡다 보니 2인 1조 출동은 불가능했다. 안전 업무의 저비용 외주화가 허울뿐인 매뉴얼을 삼켜버린 것이다.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는 한 하청업체 비정규직의 안타까운 죽음은 계속해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을 비용의 문제로 보는 물신주의의 망령은 청산돼야 한다. 그것이 숨 돌릴 틈 없는 정비 속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한 젊은이에 대한 예의다. (중앙일보 2016년 6월 1일자 ‘19세 청년의 죽음 … 안전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자문자답 내공쌓기

지금 이 기사를 보고 있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인가? 아니면 구조적 원인으로 인한 것인가. 만약 구조적 원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어떤 것인가.

자신의 삶을 가장 불합리하게 만드는 구조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선생님과 신문 속 교과서 읽기

구조는 매뉴얼보다 힘이 세다

어릴 때 이런 게임 해보셨나요? 모래 무덤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나무젓가락을 꽂아 놓습니다. 그리고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부터 모래를 긁어내는 게임말입니다. 모래 무덤에 꽂혀 있는 나무젓가락을 먼저 쓰러뜨리는 사람이 지는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합니다. 결국 나무젓가락은 쓰러질 수밖에 없는데, 그걸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은 나무젓가락을 쓰러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니까요.

자, 이 게임 안에는 매뉴얼과 구조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게임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순서에 맞춰 눈앞의 목표, 즉 나무젓가락을 쓰러뜨리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움직이는 행동은 경험으로 축적된 행동 규칙, 즉 매뉴얼에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나무젓가락을 쓰러뜨릴 수밖에 없게 되어 있으며, 이건 그 게임의 구조가 그러한 것이죠.

매뉴얼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이 따르는 행동의 절차’ 정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가전제품 작동법 설명 책자나 민방위 훈련을 할 때 각 교실의 학생들이 차례로 운동장으로 가도록 정한 순서도 등이 바로 이런 매뉴얼에 속합니다.

구조는 ‘어떤 것에서건 특정한 결과가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조직의 특성’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체에 속한 각 부분이 특정한 방향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원리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런 구조는 간단하게는 기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복잡하게는 사회 전체에서도 작동하고 있습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특정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음료를 얻을 수 있는 건 바로 이 기계의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아침에 눈을 뜨고 졸린 눈을 비벼 가며 기어이 학교로 가야 하는 것도 교육시스템, 즉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제 주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것도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요. 아무리 억울해도 검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법정에 세우지 못하는 것도 기소독점주의라는 법률시스템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구조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 감이 오나요? 그래서 매뉴얼에 비해 구조가 더 큰 힘과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랍니다. 구조적 압력은 매뉴얼을 무시하도록 만들 수도 있는 것이죠.

불평등 계약 뒤에 갑을 관계

그러면 구의역에서 벌어진 일에는 어떤 구조가 작동한 걸까요. 대응 매뉴얼이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왜일까요. 여기에는 다양한 사회 구조가 작동합니다. 우선 소위 ‘갑과 을’의 관계가 보입니다. 서울메트로와 하청업체가 맺은 불평등계약이 그러하며, 유명을 달리한 김모씨가 하청업체와 맺은 불평등 계약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최저가 낙찰제’라는 경제적 구조도 보이네요.

그런 계약과 낙찰 방법이 불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계약을 한 것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런 계약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문제를 분석하는 데 더 중요합니다.

여기서 돈을 벌게 해주는 수단을 쥐고 있는 사람(혹은 단체)을 갑, 그리고 그로부터 돈을 벌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혹은 단체)을 을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관계에서 갑은 을에게 특별한 권한을 행사할 힘을 갖게 됩니다. 또 을은 갑에게 권력이나 권리를 제공해야 자신의 생계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으니 나름의 계산으로 이익을 얻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저가 낙찰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죠. 안전을 위한 매뉴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가 그 배경에 있었던 겁니다.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는 고쳐야

모든 구조가 합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아니 완전한 구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구조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 속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살아야만 할까요? 그래선 안 됩니다. 사회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라면 사회 구조는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사람의 안전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가치입니다. 수단적 가치에 불과한 것이 목적을 압도해서는 안 됩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구조가 함축하고 있는 불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더 현실적인 방법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고민과 고민의 결과를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이 매우 중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합니다.

문우일 세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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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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