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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모른다” “기억 안 난다”…대우조선 국감 속기록은 ‘허무개그’

중앙일보 2016.06.15 00:01 경제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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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경제부문 기자

“산업은행이 파견한 최고재무책임자(CFO) 한 명을 통해 복잡한 해양플랜트의 생산원가를 파악하는 건 한계가 있었습니다.”

산은·대우 경영진 면피성 답변만
연 수억씩 받고도 능력 부족 변명
혈세 12조 낭비 경제 악영향 커
검찰 조사, 명예 지킬 마지막 기회


대우조선해양의 5조원대 해양플랜트 부실 책임에 대한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의 공식 답변이다. 지난해 9월 21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속기록에 있는 내용이다. 9개월이 지난 지금 국감 속기록을 살펴본 건 검찰이 수사중인 대우조선 분식회계·비자금조성 의혹에 대한 취재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121쪽에 달하는 국감 속기록은 실망스러웠다. 대우조선 부실 책임 당사자의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면피성 답변으로 채워져 있었다.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은 재임기간(2006~2012년) 중 기회 있을 때마다 “해양플랜트를 집중 수주해야 한다”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런데도 그는 국감장에서 대우조선 전체 해양플랜트 중 재임기간 수주한 플랜트 비중을 묻는 질문에 “오래돼서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2012~2015년 재임)은 2013~2014년에 발생한 해양플랜트 부실을 회계장부에 제때 반영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고 전 사장은 “계약구조가 복잡해 (손실을) 예단하기 어려웠다”며 홍기택 전 회장과 비슷한 말을 했다. 당시 산은 부행장 출신으로 대우조선에 간 김갑중 CFO는 ‘어떻게 그런 대규모 손실을 모를 수 있냐’는 지적에 급기야 “역량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는 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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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답변을 종합하면 ‘우리가 감당하기엔 해양플랜트가 너무 복잡했다’는 식의 허무개그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조선업과 재무분야 업무에 각각 30년간 이상 종사한 이들의 답변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고재호 전 사장은 2014년 상여금 3억6000만원을 포함해 연봉 9억원을 받았고, 남상태 전 사장은 퇴임 후 2년간 자문역으로 2억원의 자문료와 사무실·자가용을 제공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부족한 능력만을 탓하기엔 대우조선 부실이 한국 경제에 미친 악영향이 너무 크다. 부실을 떠안은 국책은행의 자본을 메워주기 위해 국민세금 12조원(자본확충펀드)이 투입됐고, 대우조선 도크가 있는 거제도는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실업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아무리 책임자들이 모른다고 잡아떼어도 대우조선의 부실 책임을 끝까지 밝혀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국감에서 제기된 의혹부터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김영환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5년 초 ‘고재호 전 사장이 연임을 위해 2조원대 부실을 은폐했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말했다. 강기정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남상태 전 사장 재임 시절 ‘건축가 이창하 씨의 회사에 서울 당산동 사옥 신축 시행을 맡겨 대우조선에 161억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진정서가 있다”고 말했다. 국감 당시 남 전 사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엔 대우조선의 부실이 지금처럼 드러나지 않아 흐지부지 됐지만 국민세금이 12조원이나 들어간 이상 그냥 넘어갈 순 없다. 당사자들도 이번 검찰 조사에선 ‘모르쇠’로 일관하지 말고 진실을 말해주길 바란다. 그게 산은과 대우조선 경영진으로서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최소한의 명예를 지킬 마지막 기회다.

이태경 경제부문 기자 unipen@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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