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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억지로 웃기려 말고 잘 웃어주세요

중앙일보 2016.06.15 00:01 강남통신 10면 지면보기
유머 감각 갖고 싶다는 30대 진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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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심수휘 기자

01 Q. (너무 진지해서 인기가 없나봐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30대 초반 남자입니다. 시험 준비를 하다 보니 친구를 거의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최근 친구가 생겨 자주 만나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제가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제가 유머가 없어서 친구들이 저를 모임에 잘 부르지 않았던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재미가 없으니까요. 좋은 이야기, 웃기는 이야기를 하려고 모이는 거지 슬프고 진지한 이야기 들으려고 모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설령 친구들이 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진 않더라도 저 스스로 제가 그런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계속 진지한 캐릭터로 끝까지 밀고 가야 할지, 아니면 공부를 해서라도 유머 코드를 장착해야 하는지 말이죠. 적절한 유머가 있는 사람이 인기가 많을 텐데 고민입니다.

A. (지금 모습으로도 인기 얻을 수 있어요) 누굴 웃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머 감각 있는 사람을 ‘위트 있다’고 하죠. 위트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나 글을 즐겁고 재치 있고 능란하게 구사하는 능력’입니다. 위트가 뛰어난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는 데가 방송입니다. 유재석·이경규 같은 분이죠. 그런데 그렇게 위트가 뛰어난 분들도 남을 웃기기가 쉽지 않다고 고백하곤 합니다. 잘 웃기고 잘 나가는 타고난 연예인들의 마음속에도 더 이상 웃기지 못해 내 인기가 시들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그만큼 남을 웃기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누군가를 공감하는 것에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유머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웃기려고 하면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파악해야 하고 스토리와 감정이 들어있는 창조적인 콘텐트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죠. 오늘 사연은 유머 감각이 적어서 고민이라는 건데 본인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실제 다른 사람들도 유머 감각이 없어서 불편해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사람은 유머 감각이 없어 말을 항상 진중하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유머 감각은 없으면서 자신은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끝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함께하기 피곤하죠.

세상 사람들이 다 유머를 잘 구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웃어주는 사람도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누구를 웃기는 건 인기를 얻는 일일 수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자신에게 피곤한 일이기도 합니다. 진지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시면 어떨까 싶네요. 잘 웃어 주시면서요. 잘 웃기는 사람 이상으로 잘 웃어 주는 사람이 인기입니다.

02 Q. (친구 한숨소리에 괜히 화가 나요) 답변 감사합니다. 고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 문제가 유머 감각이 없는 것이라면 제 친구는 한숨 쉬는 게 문제입니다. 이 친구는 계속해서 한숨을 내쉽니다. 뭐가 그렇게 문제가 많은지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보기에는 버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아니랍니다. 다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미래도 그렇고 회사나 취업, 자격증 등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서 한숨밖에 안 나온다고 하네요. 땅이 꺼질 정도로 한숨 쉬는 친구를 보면 답답합니다. 그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친구에게 한숨 쉬지 말고 생각을 달리 해보라고 충고하면 친구는 고개를 흔듭니다. 아무래도 해결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요. 그런 소리를 듣다 보면 저까지 마음이 지치고 힘이 듭니다.

A. (공감 능력이 좋으면 그럴 수 있죠) 한숨 쉬는 친구가 밉다는 내용만 보면 친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친구 한숨 쉬는 것 하나 좀 못 들어주나 하고 말이죠. 그러나 거꾸로 친구의 문제를 너무 공감하다 보니 이렇게 사연을 보낼 정도로 마음이 힘든 것일 수 있습니다.

평소에 ‘나는 공감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사실은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큽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좋은 분들은 보통 ‘너를 더 이해해 주지 못해 미안해’ 라고 이야기합니다.

공감의 스위치는 내가 이성적으로 켜고 끄기 어렵습니다. 마치 심장이 내 지시와 상관 없이 그냥 뛰는 것처럼요. 우리 뇌는 내가 논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그냥 자동으로 작동되는 영역이 있습니다. 공감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능입니다. 물론 공감 소통의 기술이 더해지면 더 효율적으로 상대방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지만, 사실 공감이란 타인의 고통을 나누는 자연스러운 마음의 반응입니다.

공감 능력은 사람마다 차이가 많은데요. 오늘 사연의 주인공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면 친구가 한숨을 쉬든 말든 이렇게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감은 상대방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기에 상대방의 마음 상태에 더 영향을 받게 됩니다. 친구의 깊은 한숨을 듣다 보면 긍정적인 내 마음까지 회색빛처럼 뿌옇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밖에선 천사, 집에선 폭군

공감 능력이 좋을수록 더 뇌를 따뜻하게 충전해야 합니다. 공감 능력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뇌의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피로 증상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분노조절이 잘 되지 않아 고민이라는 사연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 다니는 기혼 여성이 회사에서는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는데 집에만 오면 아이들한테 너무 심하게 화를 내 자신이 분노조절장애에 걸린 것 같다면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또 평소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에게서 갑자기 분노 행동이 나와 자신도 놀라고 주변도 당황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라는 것은 타인에 대해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타인에게 배려를 잘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공감이라는 것이 그냥 쉽게 되는 일이 아니라 내 감정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공감 능력이 좋은 사람이 회사를 다니게 되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많아 인정도 받지만 그만큼 에너지 소모도 많게 되죠. 그래서 집에 귀가했을 때면 공감 에너지가 바닥이 날 가능성도 커집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에게 큰 소리가 나가기 쉬워집니다.

공감 에너지가 떨어지게 되면 사소한 일에도 심한 분노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쉽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는 성격을 반사회적 성격이라고 합니다. 반사회적 성격의 핵심 문제가 공감 능력의 결여입니다. 공감은 남의 통증이 나의 통증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남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기에 자신에게만 이익이 되면 타인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따뜻한 공감 능력이 좋은 사람도 공감 에너지를 충전하지 않고 쓰기만 하면 공감 능력이 심하게 떨어지면서 일시적으로 심한 분노 반응이 나올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공감 능력이 좋은 분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도 깊이 빠져들기에 부정적인 사람들과 있으면 그 부정적인 감정에도 더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친절한 행동을 하면 다시 친절로 응대하는 분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쓴 에너지보다 받는 에너지가 부족하게 됩니다. 특히 공감 능력이 좋은 분들은 마음이 지치기 더 쉽습니다. 그래서 내가 공감 에너지 소비하는 만큼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는 것에도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야 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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