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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2016으로 본 축구와 정치] 레알 공격수 벤제마, 프랑스 대표 탈락…그라운드 인종차별 논란

중앙일보 2016.06.11 00:40 종합 1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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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FIFA) 가입국은 211개로 유엔 가입국(193개)보다 많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는 “축구는 국제관계의 훌륭한 바로미터”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10일(현지시간) 개막한 ‘유로2016’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테러가 발생했던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하는 유로2016은 유럽 국제정치의 바로미터다.

IS, 유럽국가 겨냥 연쇄테러 위협
극우 세력 부상, 인종주의 자극
영국, 대회 중인 23일 브렉시트 투표


유로2016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협으로 최근까지 취소 논쟁이 있었다. IS는 테러와의 전쟁에 가담한 유럽 국가의 대도시를 겨냥해 연쇄 테러를 벌였다. 지난해 10월 파리 테러로 130명, 3월 벨기에 브뤼셀 테러로 35명이 사망했다. 유엔은 2일 “6개월간 IS가 전 세계 11개국에서 테러를 자행해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이 중 유럽 국가는 벨기에·프랑스·독일·러시아·터키로 모두 이번 유로2016 본선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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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파리 테러와 올해 3월 브뤼셀 테러는 유럽의 대도시도 테러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공포감을 심었다. 유로2016도 테러에서 안전하지 않다. [사진 AP=뉴시스]


스포츠 경기는 테러 타깃 중 하나다. 지난해 파리 테러 당시 IS는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을 테러 목표로 삼았다가 보안 검색을 받자 경기장 입구에서 자폭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A매치가 열리던 중이었다. 이후 독일 하노버에서 예정됐던 독일·네덜란드 간 친선 경기는 테러 위협으로 취소됐다.

실제로 지난 6일 우크라이나에선 기관총과 폭탄으로 유로2016이 열리는 경기장 15곳을 노린 테러범이 검거됐다. 프랑스는 테러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 비상사태를 2개월간 연장하고 9만 명이 넘는 군경을 파견해 치안을 강화했지만 테러 공포는 여전하다. 미국·영국·독일 등은 유로2016 기간 중 유럽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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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제롬 보아텡, 메수트 외질, 카림 벤제마. 유럽 국가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 된 국가 대표팀을 통해 통합의 메시지를 줘왔다. 하지만 이번 유로2016은 시작 전부터 인종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 AP=뉴시스]


유로2016의 또 다른 국제정치 코드는 난민과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우경화다. 최근 독일과 프랑스에선 대표팀 관련 인종주의 논란이 있었다. 독일에선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알렉산더 가울란트 부대표가 대표팀 수비수 제롬 보아텡을 겨냥한 인종차별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사람들은 보아텡을 축구선수로선 좋아하지만 이웃으로는 맞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아텡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가나 태생이다.

AfD 관계자는 터키 이민 3세인 미드필더 메수트 외질이 트위터에 메카 순례 사진을 올리자 “반애국적 신호”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무슬림과 난민을 반대하는 극우단체 페기다는 킨더 초콜릿 포장지 모델로 나온 보아텡과 일카이 권도간(터키 출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미래의 테러범”이라고 비난해 역풍을 맞았다.

프랑스에서도 인종차별 논란이 있다. 전설적 선수 에리크 캉토나가 대표팀 선발과 관련해 “카림 벤제마(공격수)와 아템 벤 아르파(공격수)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유로대회에 차출되지 못했다. 그들이 북아프리카계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다. 디디에 데샹 프랑스 감독은 벤제마의 섹스 테이프 스캔들과 벤 아르파의 실력 부진을 선발 제외 이유로 들었지만 ‘톨레랑스(인종과 혈통, 피부색과 종교를 초월한 통합)’를 강조하는 프랑스로선 논란 자체가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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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유로2016 기간 중인 23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두고 국민투표를 한다. 브렉시트를 두고 영국 내부가 찬반으로 갈려 있다. [사진 AP=뉴시스]


인종주의 논란은 서부아시아와 북아프리카(WANA)에서 유럽으로 난민이 밀려드는 것과 관계가 있다. 극우 정당이 반이민자 정책을 내세우며 비유럽 출신 국가 대표에 대한 논란이 생긴 거다. 그동안 유럽 국가가 보여준 다인종 국가대표팀을 통한 통합의 정신에 금이 갈 수 있는 위기다.

이번 유로2016에 참가하는 선수 552명 중에도 비유럽 출신은 20% 내외다. 프랑스의 경우 국가대표 23명 중 13명이 비유럽 출신이다. 프랑스 미드필더 폴 포그바는 부모가 기니 출신이고 수비수 파트리스 에브라도 세네갈 출신이다. 잉글랜드 라힘 스털링은 자메이카 출신, 벨기에 공격수 크리스티앙 벤테케는 콩고 태생, 스위스 수비수 요한 주루는 코트디부아르 출신이다.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네덜란드·프랑스·독일·영국 등 EU의 중추 국가에서도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다. 유럽 통합이 도전을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에는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극우 자유당(FPOe) 소속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대선에서 패배했다. 극우 자유당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34%의 지지를 받고 있다. 독일 AfD도 반이민 정서에 편승해 15%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제3당까지 올라섰다. 마린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 국민전선(FN), 폴란드의 법과 정의당 등은 내셔널리즘과 반이민 정서를 자극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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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FN의 장마리 르펜이 결선투표까지 올라오자 세계적 축구스타 지네딘 지단(알제리계)은 “프랑스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며 “ 프랑스의 가치에 위배되는 정당 투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로2016은 다시금 ‘톨레랑스’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폴리티코는 “가장 분열됐을 때 유럽이 공통의 토대를 마련한 곳은 항상 축구였다”고 썼다. 영국은 유로2016 기간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투표(23일)를 한다. 2017년 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의 정치적 긴장도도 높다. 유럽이 분열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축구는 다시 유럽을 묶을 수도, 분열시킬 수도 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영국이 패배한 지 나흘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 노동당이 패배한 것도 한 사례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유로2016을 영국의 EU 잔류 마지막 기회로 여기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영국은 ‘마이 잉글랜드, 우리 잉글랜드’라는 구호로 유로2016을 통합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웨일스와 북아일랜드가 각각 58년, 34년 만에 본선에 진출했다는 점은 EU 탈퇴를 우려하는 정치인들 입장에선 호재다. 최근 여론조사가 EU 탈퇴로 기우는 가운데 영연방국가가 좋은 성적을 내면 국민 통합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독일·프랑스 축구연맹은 영국의 EU 탈퇴 시 영연방국가의 유로 참가를 제한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축구 중심은 클럽으로 넘어갔다.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팀은 다국적 선수들로 구성됐고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린다. 유럽 챔피언스리그는 월드컵의 인기와 맞먹는다. 그럼에도 유로2016이 의미 있는 건 국가와 국민, 통합과 분열의 드라마를 담고 있어서다. 유럽은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분쟁을 딛고 EU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유로2016에 눈이 가는 이유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독일-폴란드, 잉글랜드-웨일스전은 ‘유럽판 한·일전’

올해부터 참가국이 24개국으로 확대되며 참가국 간 얽힌 정치·역사적 배경도 주목받고 있다. D조에 속한 터키는 독일(C조)과의 만남을 벼르고 있다. 최근 독일 연방의회가 과거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을 인정하는 결의를 하면서 감정이 쌓였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독일이 먼저 홀로코스트와 나미비아 학살을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20세기 초반 독일이 나미비아를 식민지화하며 토착민을 살해한 것까지 들춰내고 있다. 독일은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터키의 협력이 필요하고, 터키는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해 독일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축구라면 다르다. 양국이 16강 이상에서 만난다면 불을 뿜는 경기가 될 것이다.

1958년 이후 처음으로 유로 본선에 오른 웨일스는 잉글랜드와 같은 B조에 편성돼 정복-피정복국 간 ‘영국 더비’가 성사됐다. 영연방인 북아일랜드(C조)도 정복국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벼르고 있다. C조의 폴란드-독일전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악연으로 늘 치열한 경기다. 폴란드는 유로2016 예선에서 처음으로 독일을 꺾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F조의 헝가리는 17~19세기 자국을 지배했던 오스트리아에 복수를 꿈꾼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벌인 러시아(B조)도 8강 이상에서 우크라이나(C조)와 만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는 유로2012 공동개최국이지만 이번엔 C조에서 적으로 만났다. 국제정치적으로 얽히고설킨 국가들 간의 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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