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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골 터지면 유니폼 훌렁…왜 그럴까요

중앙일보 2016.06.11 00:15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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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종족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발은 되고, 손은 쓰면 안 되는 이유
팀 상징색으로 머리 염색하는 팬들

이주만 옮김, 한스미디어
356쪽, 2만5000원

오래전 축구광들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이야 넘쳐나는 게 유럽 축구 매니어들이지만, 십 수 년 전에는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그들이 모일 수 있었던 공간은 하이텔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혼거했다. 밤마다 모였다. 서로가 알고 있는 한 줌의 지식을 나누고 서푼어치 관점으로 논쟁을 벌였다.

동영상은커녕 자료 사진 하나 찾아서 올리기도 어려웠으므로, 그들은 문자에 집중했다. 지단처럼 우아하게 쓰는 사람도 있었고 루니처럼 몰아붙이는 사람도 있었고 무리뉴 감독처럼 거의 모든 지략을 꿰뚫고 있는 자도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글을 올렸다. 2001년 1월, 겨울의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

그때 그들은, ‘태극전사 국위선양’ 일변도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경기장 안팎의 문화적 스펙터클을 두루 통찰하고자 했으며 드리블의 원시적 열망과 패스의 집합적 열정과 골의 공격적 힘을 이해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축구란 무엇인가, 왜 스스로 돈을 내고 시간을 들여서 엄청난 광휘의 경기장으로 운집하는가, 왜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는가. 요컨대 그때 그들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피 말리는 열병을 치유하고 끓어오르는 열정을 완벽하게 연소하기 위해 읽고 토론했다.

그때 그들이 읽었던 여러 소중한 글들 중에서 모리스의 글은 라커룸의 작전판 역할을 했다. 그 무렵 그 글을 올린 사람은 현재 대한축구협회 홍보실장을 맡고 있는 송기룡씨다. 2001년 1월에 올리면서 송씨는 “원래 1980년대 ‘월간 축구’에 시리즈로 실렸던 내용으로 번역상의 문제를 조금 삭제 또는 쉽게 표현”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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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행동학자인 데즈먼드 모리스는 축구를 전쟁이나 종교, 한 편의 공연예술에 빗댔다. 사진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당시 서울의 거리 응원 모습. [중앙포토]


이제 우리는 그 글의 원형을 읽게 되었다. 『축구 종족』이 그 책이다. 원래 1981년에 출간된 것으로 이번에 번역된 것은 그 초판을 바탕으로 하되 부분적으로 보완함은 물론 방대하면서도 자료적 가치가 뛰어난 자료 사진이 풍부하게 추가된 정본이다. 모리스는 왜 인간은 둥근 물체를 피하지 않고 발로 차는지, 왜 손을 쓰면 안 되는지, 왜 오프사이드라는 미묘한 규칙이 있는지, 왜 골을 터트리면 유니폼을 벗어던지는지 등 저자의 표현대로 ‘외계인의 입장에서 보면’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축구장 안팎의 거의 모든 행위에 대해 절묘한 표현으로 해석한다. 축구에서 원시시대 사냥 과정과 유사한 모습을 찾아내고, 머리카락 색을 팀 상징색으로 염색한 팬들의 모습을 두고 “원시 부족들이 의도적으로 피부에 영구적인 상흔을 내는 행위를 연상시킨다”고 풀어내는 식이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이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점이다. 뒤늦은 번역 출간으로 인해 이 책의 어떤 관점은 반세기 가까이 뒤처지고 말았다. 그 사이 축구라는 광기 어린 집합 행동에 대한 국내외의 여러 연구와 저서가 적지 않게 소개됐다. 클리포드 기어츠가 ‘발리의 닭싸움과 스포츠’,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폭력의 현대적 관리와 축구’, 에릭 홉스봄이 ‘사회적 불만과 훌리건’ 등과 같은 매력적인 주제에 대한 탁월한 사회과학적 연구 성과를 이미 제출한 이후라서, 이런 대가들의 관점을 취한 축구광들에게 모리스의 대중 저서 『축구 종족』은 너무 늦게 도착한 택배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잘못 배달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의 스포츠 담론은 허기로 지쳐있다. 스포츠를, 특히 축구를 문명적 관점에서, 거시적으로는 집합 행동의 차원을, 미시적으로는 세부 사실의 해석학적 차원을 두루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책은 여전히 부족하다. 풍부한 도판과 날카로운 직관이 어우러진 『축구 종족』은, 늦게 도착한 택배이긴 해도, 서둘러 그 박스를 풀어볼 만한 통찰로 가득 차 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축구는 현대판 집단 사냥

축구의 소실점은 골! 그 순간을 위해 90분이 존재한다. 모든 선수들은 골을 갈망하고 골이 터졌을 때 지구의 자전축이 흔들릴 정도로 격렬하게 반응한다. 축구는 모순이라는 운명의 힘으로 작동한다. 다른 종목과 달리 진영이 엄격하게 분리되지 않으며 공격과 수비 또한 혼돈 속에서 뒤엉킨다. 이를 데즈먼드 모리스는 이 책의 128쪽 ‘의식의 절정’에서 열렬히 묘사한다.

동물행동학자인 저자가 이 책에서 견지하는 태도는 축구 안에 원시적인 본능들, 예컨대 사냥의 힘이 건재하다는 것이다. 골! 그것은 사냥이 그렇듯 쉽지 않은 작전이며 90분 동안 겨우 한두 번 터질 뿐이다. 따라서 골은 희귀한 전리품이며, 그 순간은 제의의 카니발이 된다. 이 관점에서 모리스는 드리블과 패스와 세리머니와 거친 함성들의 원시적 열정을 해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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