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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삼척동자’ 남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

중앙일보 2016.06.11 00:01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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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서울 근교 신도시에 살던 시절, 산책 삼아 거리를 걷다 보면 드라마를 촬영하는 팀과 맞닥뜨리는 일이 잦았다. 작업에 집중해 있는 무리 가운데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두 직종의 인물이 있었다. 배우와 감독. 배우는 특별한 옷차림과 화장 때문에 눈길을 끌었고 감독은 정반대여서 눈에 띄었다. 일행 중 가장 허름한 옷차림에 함부로인 스타일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틀림없이 감독이었다. 집단 내 최고 권력자는 따로 자신을 치장할 필요가 없구나 생각되는 광경이었다.

예전에 ‘삼척동자’라는 은어가 사용된 적이 있었다. 삼척이란 ‘아는 척, 가진 척, 힘센 척’ 세 가지 거짓된 모습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하필이면 동자라는 단어와 조합된 점이 교묘했다. 남자들을 향해 그 말을 사용할 때 여자들은 얼마간 입꼬리를 비틀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따금 그 단어가 떠오르면 쓸쓸한 느낌이 일었다. 삼척동자가 콤플렉스의 집결체구나 싶었다. 내면에서 스스로 아는 게 없다고, 가진 게 적다고, 힘이 약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행동임에 틀림없었다. ‘마치 인양 인격(as-if personality)’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자신의 사고와 정서에 참여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격 장애”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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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 장애가 없더라도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남자들은 경쟁도구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삼척동자’를 사용하고 싶을 것이다. 그것이 가면이나 변장이라고 해도. 예전보다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해내야 하는 요즈음 남자들은 그 역할 중 몇 가지에 대해 척하는 인격이라도 동원하고 싶을 것이다. 받아본 적이 없는 인정 지지 공감의 언어들을 자식에게 하는 아버지들의 얼굴에서 척하는 인격이 읽히는 것은 눈감아줘야 할 것이다. 사실 척하는 인격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 ‘마치 인양 인격’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1930년대에는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으로 진단됐다. 이후 남성에게도 보이는 성격 특성임이 밝혀졌다. 모방과 동일시를 통해 자기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청소년기에 보이는 ‘마치 인양 인격’은 정상적인 상태로 분류된다.

‘삼척동자’는 가진 게 적은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안정된 자기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의 특성이다. 그들은 겉모습 꾸미기, 지식, 소유물 등을 동원해 자신을 정의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 감독의 함부로 스타일 배경에는 그의 권력이 아니라 견고한 자기정체성과 거기서 비롯되는 자존감이 있었던 셈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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