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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다이어리] 정말 다 엄마 때문일까

중앙일보 2016.06.11 00:01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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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문화부 차장

일본 학자 오자와 마키코의 신간 『아이들의 권리 부모의 권리』를 읽고 무릎을 쳤다. 한 초등학생이 문제를 일으켜 그 엄마가 상담을 했다고 한다. “엄마가 일을 하고 있나요?” “아니요, 아이와 늘 함께 지냈습니다만….” “아이를 다른 곳에 맡겼거나 오랫동안 떨어진 적이 있습니까?” “그러고 보니 두 살 때쯤 제가 아파서 2주 정도 할머니한테 맡긴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상담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거네요”라고 결론을 내렸단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엄마 탓’으로 몰아가는 세태의 한 장면이다.

이런 끼워 맞추기식 책임 추궁에서 자유로울 엄마는 없다. 아이에게 전적으로 매달리지 못한 워킹맘은 ‘트집’ 잡힐 일이 특히 많다. 아이의 편식도, 충치도, 비만도, 키 작은 것도 다 “일하는 엄마 탓”이 되곤 한다. 남들의 평가보다 더 큰 문제는 워킹맘 스스로를 괴롭히는 자아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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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죄책감을 갖지 말라’는 워킹맘의 생활수칙 1조 1항 같은 문구다. 육아책마다, 육아전문가마다 앞세워 강조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이 말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아이들에게 생기는 문제는 대부분 감기나 장염같이 1주일 정도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엄마 잘못을 곱씹어 자책할 필요까진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든 뒤로는 사정이 달라졌다. 제 자리로 굳어지는 아이들의 성적과 성격이 마음에 차지 않을 때마다 ‘엄마’란 이름이 원죄처럼 무겁게 다가왔다. 고3인 첫째는 매번 한발 늦게 입시 정보를 알아 오는 엄마 탓에 늘 남 뒤쫓아가느라 허덕이는 것 같았고, 중3 둘째가 밥 먹을 때조차 스마트폰에서 눈을 못 떼는 것은 늦은 퇴근으로 거의 매일 혼자 저녁식사를 하게 만든 엄마 탓인 것 같았다. 이런 죄책감은 우울하고 파괴적인 감정 소모로 이어졌다.

부질없는 죄책감의 실체는 남의 일일 때 더 분명히 보였다. 얼마 전 MBC 드라마 ‘워킹맘 워킹대디’에서 유치원생 딸이 소풍날 시판 김밥을 먹고 체하자 워킹맘인 엄마가 “미안해, 잘못했어”라며 우는 장면이 나왔다. 물론 엄마가 직접 싸준 김밥을 먹었다면 체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꼭 그랬으리라 장담할 일도 아닌 듯했다.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태교까지 거슬러올라가 엄마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불합리한 처사다. 엄마에게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풍토에서 누가 선뜻 아이 낳을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정말 다 엄마 때문이란 말인가. 거꾸로 아이의 성취를 무조건 엄마의 공(功)으로 내세우려는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다.

이지영 문화부 차장

◆ 워킹맘 칼럼 보낼 곳=e메일 opinionpag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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