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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 아츠의 심연을 찾아서] ‘美의 여신’ 기리는 신전의 중심 터키 아프로디시아스

온라인 중앙일보 2016.06.11 00:01
1600여 년 동안 땅속에 잠들어 있던 미의 여신이 보여주는 어머니 이미지… 버려진 듯한 고대 유적지에서 느끼는 희열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감동을 초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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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아프로디시아스에 있는 아프로디테 제단 전경. 4세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아프로디테 신전은 철저히 파괴된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5년째다. 미국과 유럽의 신문, 방송을 대하면 거의 매일 잡스의 유산에 관한 얘기를 ‘아직도’ 다룬다. 인문학과 자연학의 벽을 넘어선, 21세기 다빈치로 통하는 인물이 잡스다. 세상을 대하는 판과 틀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물론, 글로벌 시대의 최대 미덕이자 가치로 자리 잡은 ‘돈’에도 밝은 곳이 잡스의 애플이다.

한국은 잡스의 움직임을 재빨리 따라잡은 나라다. 반짝했지만 ‘글로벌 IT강국’으로 빛나던 시기도 연출해냈다. 빈약한 한국적 학문 풍토에도 신선한 자극으로도 자리 잡는다. 교육계에 불어 닥친 잡스 열풍은 기억에도 새롭다. 이미 4~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잡스 스타일의 자식 키우기’ 같은 풍경이 곳곳에 등장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최근에는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같은 인물 닮기도 유행한다. IT라는 첨단 트렌드와 더불어 글로벌하고 거기다 돈도 엄청나게 번 사람들에 대한 ‘카피캣(Copy Cat)’ 행렬이 넘친다. 정치권으로도 발 빠르게 유입된다. 알 듯 모를 듯 애매한, ‘창조경제’란 키워드가 신문·방송의 1면을 차지한다. 뭘 선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수십 명에 달하는 창조경제 수상 리스트가 청와대발 뉴스로 제공된다.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라는 개념은 잡스의 유산 가운데 한국 지식인이 가장 주목한 부분이 아닐까? 한국은 직선형 종적(縱的) 흑백문화에 익숙하다. 유선형 횡적(橫的) 파스텔톤 문화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근 벌어지는 숟가락 논쟁 하나만 봐도 직선형 종적 흑백문화가 대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멀게는 신라시대의 골품제도에서부터 조선시대의 반상제도, 한말의 개화·비개화, 임시정부 때부터 시작된 무산·유산계급, 이어 친일·친미파, 반공·반미, 최근의 금수저·흙수저 논쟁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통해 직선형 종적 흑백문화가 득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중간하게 양다리를 걸치다가는 회색인간, 사쿠라, 공공의 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반대해도 결사 반대를 해야 하고, 보상도 필요 없고 ‘무조건 살려내라’라는 주장만이 먹힐 뿐이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잡스의 리버럴 아츠는 양자택일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 대한 경종인 동시에 새로운 모델로 등장하게 된다. 뭔가 종합적이고 극단을 지향하고, 서로가 함께 양보도 하면서 나누는, 그러면서도 제3의 길을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열린 사고다. 그런 식의 문화나 방식이 21세기 한국 지식 무대의 키워드로 등장한다. 리버벌 아츠라는 이름의 교육 방침이 한여름 죽순(竹筍)처럼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관련된 책과 여론도 출판·언론계를 지배한다. 리버럴 아츠를 한글로 인문학으로 풀이하면서 한국 인문학의 위기나 부흥 같은 얘기들도 들을 수 있게 된다.

형식은 리버럴 아츠, 내용은 흑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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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아프로디테의 입상. 아프로디시아스의 아프로디테의 모습은 미의 여신 이미지보다는 어머니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눈에 띄고 한때 반짝하는 이벤트성 타이틀에 있지 않다. 상식적이지만 무엇이 리버럴 아츠인가, 어떤 것이 인문학인가, 어떻게 해야 리버벌 아츠의 이상에 충실한 인간형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부분이 핵심일 듯하다. 잡스, 리버럴 아츠, 인문학을 앞세운 그럴 듯한 목소리는 많지만, 정작 인문학적 세계관에 근거한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논의는 허술하게 다뤄지고 있다. 민족주의에 근거한 한국 역사 속의 새로운 영웅 찾기나, 리버럴 아츠에 충실해 글로벌 비즈니스를 석권하는 제2의 억만장자 스티브 잡스 같은 모습이 필자에게 비친 한국형 인문학적 모델로 와 닿을 뿐이다.

학계 지식인 가운데 한국 사회에서 남발되는 인문학 물타기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국에서나 통하는, 인문학을 앞세운 포퓰러 탤런트 지식인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리버럴 아츠 얘기를 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현실정치로 들어가 흑백논리보다도 더한 일방통행형 싸구려 환담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등장한다. IT라는 말이 그러했듯이, 구멍가게 운영에서조차 사람들 눈에 확 띄는 리버럴 아츠라는 말이 필요하게 된다. ‘빨리빨리’ 문화 덕분에 리버럴 아츠와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은 재빨리 차용했지만, 내용은 직선형 종적 흑백문화로 가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이미지나 껍데기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한국 지식인 사회의 화두(話頭)로 등장했던 리버럴 아츠라는 말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필자는 학문의 세계에 평생을 거는 삶과 무관하다. 리버럴 아츠 즉 인문학의 정도(正道)에 대해 얘기를 할만한 수준도 못 된다. 단지 세상을 돌아다니는 동안 느낀 것이지만 리버럴 아츠가 지향하는 세계와 가치가 어떤 것인지 정도는 이해할 단계에 있다. 잡스의 세계관과 무관하지만 리버럴 아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의미, 나아가 생각하는 인간으로서의 지적 희열을 절실히 느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상식적이지만, 리버럴 아츠는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공장형, 계획형, 단기형, 순간형 세계관과 무관하다. 리버벌 아츠가 창조해낸 세계관을 절감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한국인의 머리와 집념을 고려해볼 때, 중학교에 입학해 6년 만에 열심히 공부해 하버드 대학에 들어갈 수는 있다. 한층 더 분발해서 하버드 대학 철학박사도 딸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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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공중목욕탕 상상도


그러나 잡스형의 리버럴 아츠에 기초한 세계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듯하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는 있지만, 스스로가 창조해나갈 세계관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결과는 있지만, 과정이 빈약한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나갈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Show me the Money(내게 돈을 보여줘봐)’와 같은 결과론에 입각한 한국적 DNA에 충실할 경우 리버럴 아츠 세계관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렵다. ‘과정이 좋으면 결과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러나 대세는 ‘Show me the Money’와 같은 결과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리버럴 아츠 세계관을 창출해낼 환경이 정비되지 않는 한 그 한계는 너무도 명확하다. 공간이나 평면으로 고사하고, 선(線)에 도달하지도 못하는 점(点)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두 가지 대표적 예로, 한류의 대명사라는 강남 스타일과 IT강국 대한민국의 브랜드인 모바일을 살펴보자.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잠시 반짝하다가 사라져간 케이스다. 후속타가 없다. 장타 한 발로 모두를 흥분시키기는 하는데 후속 안타가 없기에 열기가 급격히 식어간다. 무대에 나서는 모든 사람이 더 큰 장타를 노리는 이유기도 하지만, 안타나 번트를 인정하지 않는 글래디에이터 원형경기장 속의 관중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방팔방 피를 뿌리면서 포효하는 스펙터클 이벤트에 길들여져 있다. 후속타가 없는 과정에서 애국심에 호소하는 우려먹기 이벤트가 판을 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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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 그래픽으로 재현된 기원전 1세기 아프로디시아의 전경.

‘Show me the Money’가 아닌 현장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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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에 세워진 공중목욕탕 입구. 공중목욕탕에는 냉탕·온탕·사우나에 간단한 운동시설까지 갖추었다.

리버럴 아츠를 위한 환경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양에 있지 않을까 싶다. 사전적 의미로서의 교양은 학문이나 광범위한 지식, 정신의 수양을 통해 얻어낼 수 있다. 그 같은 터전을 발판으로 창조적 활력과 마음의 풍요함, 사물에 대한 이해력 정도를 높일 수 있다. 공부를 하고 뒤이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해와 관찰로 이어지는 두 가지 연결고리 전부가 교양이다. 하버드대학을 나왔다고 교양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대학과 무관하지만,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품과 격을 갖춘 교양인으로 탄생될 수 있다. 학문·종교·예술에 관한 폭넓은 공부를 통해, 윤택한 정신적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 전부가 바로 교양이다.

일제 식민지 교육의 유산이라 말할지 모르겠지만, 40대 말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교양 100선(選)’과 같은 책 리스트를 대학 입학과 동시에 접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해력 10% 수준에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은 경험이 있지만, 뭔지 모르지만 학문적 욕구 하나로 무작정 대했던 것이 교양시대 세대들의 아스라한 추억 중 하나다. 물론 교양 100선은 읽는다고 해서 교양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읽고 토론하고 비교하고 직접 체험하는 가운데 교양인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필자는 교양을 쌓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로, 다시 말해 리버럴 아츠 세계관의 인간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적의 방안으로 고대 유물 현장 답사를 권한다. 책 100권을 읽는 것보다 현장 답사를 통한 공부와 체험이 세계관을 넓고 깊게 만드는 최고의 방안이라 믿는다. 한국 신문·방송을 보면 박물관이나 현장에 직접 서서 예술품이나 문화 현장을 얘기하는 것이 극히 드물다. 신문 지면의 명화 해설란을 보면 화가나 그림에 대한 설명이나 배경이나 역사 같은 얘기가 대부분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직접 서서 모나리자를 논하거나, 루비콘 강가에 머물면서 카이사르의 결단을 분석하는 글이나 영상이 극히 드물다.

인터넷에 들어가 위키피디아에 실린 그림을 대략 훑어보거나, 로마 흥망사에 대한 지식으로 카이사르를 이해할 뿐이다. 먹어보지도 않고 미슐랭 프랑스 요리를 논하는 식의 책상물림 지식이 한국적 교양의 대세로 자리 잡은 듯하다. 방안에 앉아서도 천하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고 자랑한 유교시대 양반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다. 지적 태만인 동시에, 지적 오만으로 느껴진다.

굳이 드라마 수사반장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장은 답의 실마리 아니 답 그 자체라 볼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이 다빈치에 대한 답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인터넷 그림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지식과 지혜가 현장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소요학파(逍遙學派)로 불린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함께하면서 철학과 세계를 논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이 아닌, 오감을 통해 세계를 느끼면서 인간과 신을 연구하는 자세다. 고대 유물 현장 답사는 그 같은 소요학으로서의 대표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Show me the Money’와는 거리가 멀지만, 과정으로서의 리버럴 아츠를 체득하는 최고의 방법으로서의 현장 체험이다.

터키의 아시아쪽 에게해(Aegean)에서 서쪽으로 100㎞ 떨어진 아프로디시아스(Aphrodisias)는 리버럴 아츠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장 체험의 모법답안 중 하나일 듯하다. 20대 말 이후 필자가 축적해온 교양의 총결산에 해당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아프로디시아스에서 확인될 수 있다.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리버럴 아츠의 종착역은 진선미(眞善美)의 발견과 체득 나아가 구축에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터키 동부의 신들과 닮은 그리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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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의 제단이란 의미의 세바스테이온 입구. 아프로디테 제단으로 활용되다가 로마시대와 와서는 신격화된 황제를 모시는 제단으로 변형된다.

사실 진선미의 의미와 가치를 논한다는 것은 필자의 능력 밖 영역에 해당된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설명하자면, 인식으로서의 진, 윤리상의 선, 심미적 차원의 미로서의 진선미가 리버럴 아츠가 지향하는 궁극적 가치라 판단된다.

아프로디시아스는 그 같은 판단에 기초한, 교양 수련 현장으로서 최고봉 중 하나다. 고대도시로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현장 체험의 진수라 말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필자는 아프로디시아스를 우선시한다. 이유는 단 하나. 파르테논은 결코 독점할 수 없는 전부 노출된 세계적 관광지지만, 아프로디시아스는 일부에게만 알려진 새로운 발견과 발굴이 가능한 사색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프로디시아스를 찾은 것은 지난 4월 초다. 봄이라고 하지만, 태양 빛이 아주 강렬하다. 태양에 노출된 피부 전부가 검붉게 탔다. 에게해를 낀 지역이 그러하듯, 밤낮의 일교차도 심하다. 낮에는 에어컨, 밤에는 히터가 호텔에서의 일상이다. 아프로디시아스를 찾은 이유는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이자 이념인 진선미의 원류를 탐구하기 위해서다. 정확히 말해 진선미 가운데, 심미적 차원의 미에 대한 공부가 아프로디시아스를 찾은 가장 큰 이유다.

도대체 고대인들이 말하는 미의 개념은 무엇일까? 아프로디시아스는 도시 이름에서 보듯 미의 여신으로 통하는 아프로디테(Aphrodite)를 기린 곳이다. 이탈리아 고대 로마로 넘어가 비너스라 불린 미의 여신이 바로 아프로디테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기리는 신전의 중심이 바로 바로 아프로디시아스다.

고대 그리스 유물·유적을 언급할 때의 주공간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다. 이른바 백색문화를 창조해낸 그리스 문명의 중심이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필자는 인류 문명사의 교과서로 자리잡고 있는 그리스 문명 이전의 모습에 주목한다.

모든 문명·문화가 그러하듯 어느 한순간 갑자기 하늘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문화와 문명을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만큼 천박한 것도 없지만, 고대 그리스 문명 역시 주변과의 교류 결과이다. 이집트에 용병으로 팔려간 그리스인들이 피라미드를 보면서 느낀 대규모 신전이 아테네에 들어서고, 그리스 신화 속의 수많은 신은 이미 아시아 마이너(Asia Minor)라 불리는 터키 동부의 신들의 모습과 일치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페르시아, 바빌론을 연결한 결과물로서의 그리스 문명과 문화인 셈이다.

고대 그리스를 서양문명의 발원지로 잡은 곳은 영국이다. 대영박물관 1층이 아테네 신전에서 갖고 온 조각물로 뒤덮인 것은 18세기 영국의 새로운 역사창조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리스의 정통성을 통해 글로벌 해양대국 영국의 권위와 역사가 재정립된 것이다.

영국은 그리스 안에 이물질의 투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집트·히타이트·아시리아·페르시아·바빌론·아나톨리아로 이어지는 그리스 바깥 세상의 역할을 완전히 무시한다. 그 같은 왜곡된 역사관이 이른바 서방 제국주의 문명사관과 일치한다는 것을 안 것은 10여 년 전이다. 유럽의 수많은 박물관을 섭렵한 뒤 얻은 결론이다. 공부할수록 그리스만이 아닌, 그리스 바깥의 요인과 영향이 눈에 들어온다. 아프로디시아스는 그 같은 결론을 통해 얻어낸 수확 중 하나다.

게리멘더링의 어원 멘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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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테이온에서 발견된, 젊은 황제 네로에게 왕관을 건네주는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파 조각상.

아프로디시아스로의 길은 파무칼레트(Pamukkale)에서부터 시작됐다. 석회 온천으로 유명한 파무칼레트에서 남서쪽으로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거리다. 아프로디시아스는 다른 에게해 고대 도시와 달리 내륙에 들어서 있다. 멀리 청동기시대 때부터 존재하던 곳이지만,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기원전 3세기 때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死後) 주변 지역을 통치하기 시작한 마케도니아인들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간다. 원래 터키 동부를 차지하던 아시아 마이너계 주민들이 주류지만, 마케도니아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인들이 들어서면서 그리스 도시로 탈바꿈한다.

에게해를 낀 터키 동부지역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 중 하나로 ‘멘덜강(Meander River)’을 빼놓을 수 없다. 터키 동부 아시아 지역의 한가운데를 흘러 에게해로 빠지는 강이다. 특정인에게 유리한 선거구를 의미하는 게리멘더링(GerryMandering)이란 말은 뱀의 움직임처럼 흘러가는 사행천(蛇行川)인 멘덜강에서 유래된 말이다. 멘덜강은 아프로디시아스를 지탱해온 산파 같은 곳이다. 풍부한 멘덜강 덕분에 농작물 수확도 안정되고, 내륙에 들어선 아프로디시아스의 발전도 가능하게 된다. 터키 동부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 큰 도시의 대부분은 멘델강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져 있다.

아프로디시아스로 들어가는 길은 완만한 평지로 이어져 있다. 겨울을 막 지난 시기인데도 각종 농작물로 무성하다. 풍요 그 자체다. 아프로디시아스는 그 같은 자연의 혜택 속에 둘러싸인 평지의 신전이다. 터키에서 만난 다른 그리스 신전의 경우 산으로 둘러싸인 고원 지대에 위치해 있다. 평지에 위치한 신전이란 말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깊은 곳이란 의미도 갖고 있다.

신전이 산 위에 있을 경우 방문하기가 어렵다. 아프로디시아스가 번성한 기원전 1세기 당시 교통편은 도보(徒步)가 전부다. 신전에 봉양할 물건의 경우 당나귀에 실어 나른다. 당시 신전 방문은 가족 총동원의 특별 행사다. 많은 준비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산보다 평지에 위치한 신전은 여러모로 접근하기 쉽다. 반복해서 방문할 수도 있다. 여신 아프로디테스는 인간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신이란 느낌이 든다.

아프로디시아스로 들어가는 입구는 고대 그리스 당시 만들어진 석관(石棺)들로 뒤덮여 있다. 석관 사방에는 메두사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석관을 부시거나 안의 물건을 훔쳐가지 말라는 경고다. 메두사는 정면으로 보는 즉시 돌로 변하게 만든다는, 저주의 화신이다. 한국도 비슷하지만, 당시 석관 속에는 사자(死者)의 애용품들이 다량으로 매장됐다. 오늘날 세계 유명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그리스 유물의 대부분은 석관 속의 매장품이라 봐도 된다. 메두사의 저주도 무시하는 곳이 바로 세계적 박물관의 정체다. 아프로디시아스는 지금도 발굴 중인 현재진행형 고고학의 현장이다. 고대 그리스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아시아 마이너와 로마 그리고 비잔틴에 이르는 시대의 유물들이 아프로디시아스 주변에 널려 있다. 고대 그리스 유물의 경우 2000년 전의 흔적에 해당된다.

유물은 현장에 가면 곧바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필자 나름의 판단이지만, 보통 1000년에 15m 높이의 퇴적물이 쌓이게 된다. 비가 오거나 지진이 생기면서 전부 땅속으로 사라진다. 따라서 30m 깊이의 지하에 숨겨진 것이 고대 그리스 유물의 현주소다. 각종 장비를 총동원해 조심스럽게 파내려가야 한다. 시간 전문가, 역사가를 필요로 하는 대역사(役事)다. 세우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과 돈을 필요로 한다. 터키 곳곳에 흩어진 대부분의 유물들은 그 같은 손길을 기다리며 방치됐다. 필자는 그 같은 무관심을 선호한다. 아무도 없는, 버려진 듯한 고대 유물 유적지에서 느끼는 희열은 아테네의 파리테논 신전에서의 감동을 능가한다.

아프로디시아스 입구에서 왼쪽으로 100m 정도 들어가자 곧바로 10m 높이의 기념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각종 신의 모습과 더불어 로마 황제 네로의 조각품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3층 구조로 1층은 기둥, 2층과 3층이 조각형 입체 벽화다. 전체 길이는 80m 정도다. 세바스테이온(Sebasteion)이라 불리는 건축물로 로마 황제를 신으로 모신 기념 사원, 즉 신전이다.

로마가 아프로디시아스를 사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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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여왕 펜테실레아를 살해하는 순간 사랑을 느낀 아킬레스의 모습. 세바스테이온 벽에 장식된 조각 중 하나다.

15세기 비잔틴 제국이 몰락한 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곳이지만, 1970년 발굴에서 80여 점의 입체 조각벽화가 발견된다. 아프로디시아스 내 박물관은 80여 점 전부를 전시하고 있다. 필자의 개인적 판단이지만, 루브르, 대영제국 박물관을 비롯한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최고 수준의 그리스 신화 관련 대리석 조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신들과 동격에 놓인 황제의 조각들이다. 로마는 세계의 정복자로 나서면서 스스로를 신의 나라라고 칭한다. 로마 황제를 인간이 아닌, 신으로 받드는 문화다. 황제 숭배의식은 로마에서 보다, 식민지나 로마 동맹국들에서 한층 더 강화된다. 황제 신전을 통해 로마에 대한 우호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물론, 합법적인 차원에서 주변의 세금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황제신전은 원한다고 해서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로마로부터의 특별한 허락이 필요하다. 모든 식민지와 동맹국들이 경쟁을 하듯 황제신전을 원했다. 대부분 개별적 차원의 황제신전을 갖고 있지만, 아프로디시아스는 로마 황제 모두를 기리는 종합신전을 갖고 있다. 로마로부터 특별히 취급된 곳이란 의미다.

아프로디시아스가 로마로부터 사랑을 받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외교다. 1세기 로마가 페르시아계 이민족과 싸울 당시 아프로디시아스는 로마 동맹국으로 참가해 승리를 얻어낸다. 아프로디시아스로부터 많은 희생자가 난 점을 고려해 식민지가 아닌, 독립된 동맹국으로 취급된다.

둘째는 문화다. 로마 황제들 대부분은 그리스 문화에 빠져 있었다. 당시의 그리스의 영토적 개념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다. 땅이 아니라 문화다. 그리스만이 아니라 그리스 문화권에 들어가는 터키 에게해 주변 모두가 그리스로 받아들여졌다. 아프로디시아스는 로마의 영향권에 들어오기 전 이미 그리스 문화대국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스를 모신 신전의 현장으로 로마인들로부터도 신성한 곳으로 받아들여진다. 아프로디시아스가 원하기도 했겠지만, 아프로디테의 숨결이 살아있는 신성한 곳에 황제의 신전이 들어선다는 점에서 로마 스스로가 원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슬람국가(IS)를 능가하는 로마의 페르시아 문명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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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년을 전후해 건립된 아프로디시아스 야외극장에 선 필자. 4월이지만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시선을 똑바로 두기 어렵다.

세바스테이온을 지나 안으로 100m 정도 걸어가자 원형극장이 눈에 들어온다. 기원전 30년을 전후해 세워진 곳으로 8000명 수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최전성기의 인구는 2만 명 정도다. 원형극장에서는 비극, 희극과 같은 연극이 1년 중 3개월 이상 열렸다.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1주일에 두 번 정도 문화행사에 참가했다. 전쟁에 숨진 희생자에 대한 위령제를 비롯해 스스로의 품과 격을 다지는 시 낭송도 이뤄진다. 원형 극장에서 이뤄지는 행사는 오락과 무관하다. 신에 대한 의식인 동시에,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할 가치와 상식을 재확인하는 곳이 원형극장이다. 그리스 비극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오이디푸스 스토리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는 참회의 심정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방황하다가 굶어 죽는다. 인륜에 반할 경우 어떤 천벌이 기다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교훈극이 당시의 연극이다. 따라서 연극 관람에 시민 모두가 참가하는 것이 거의 의무적이다. 교훈극을 연출해내는 연극 종사자, 음악가, 시인의 경우 자부심도 대단하고 급료도 높았다고 한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원형극장은 다른 지역과 달리 특별석이 많다. 특별석이란 등받이를 갖춘 의자형 좌석으로 관람하기 편한 앞줄과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 아프로디시아스는 마케도니아, 즉 그리스 문화·문명에 기초한 공화국이기는 하지만, 원주민은 아시아 마이너 즉 페르시아계다. 정치적으로 모두가 평등한 공화국을 지향하지만, 왕을 중심으로 한 페르시아 스타일의 통치방식도 함께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특별석은 마케도니아 그리스 정복세력을 위한 자리라 볼 수 있다. 원형극장에서 벌어졌을 연극을 상상하면 당시 사람들이 21세기 현대인보다 한층 높은 교양을 가진 문명인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을 죽이고, 공금을 횡령하고도 큰소리치는 것이 21세기 인간들이다. 그리스 비극은 시대를 넘어서 인간 모두에게 전해질 교훈이자 상식에 해당된다. 문화유적 현장 답사는 인간이 소중히 지켜야할 가치·윤리·도덕의 의미를 재확인 시켜주는, 살아있는 교육의 현장이기도 하다.

아프로디시아스의 하이라이트는 아프로디테스를 모신 신전이다. 언덕 위에 세워진 원형극장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신전으로 이어진 길은 이름 모를 꽃과 꿀벌들로 가득 차 있다. 에게해를 비롯한 그리스 문명·문화권의 자연적 환경은 신비롭고 경이롭기도 하다. 들꽃과 들풀이 마치 경쟁하듯 열심히 자란다. 꽃 하나하나가 힘차고 강하다. 외롭게 자라는 아네모네 꽃의 빛깔도 너무도 선명하다. 아프로디테스의 애인으로 산돼지에 부딪쳐 살해된 아네모네 전설에서 보듯, 붉은 피를 연상케 할 정도로 진하다. 고대 그리스 문화와 문명은 바로 아름답고도 강인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결과물일 듯하다.

아프로디테스 신전은 안내판이 없다면 그냥 스칠 만한 유적지다. 높은 기둥이 10여 개 늘어서 있지만,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떠올릴 만한 그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4세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아프로디테 신전은 철저히 파괴된다. 아프로디테스 신전은 교회로 전용되고 관련 유적이나 유물은 전부 말살된다. 우상숭배라는 차원에서 그리스 신화 속의 유적들도 파괴된다. 현재 이슬람국가(IS)의 그리스 유적 파괴 문제가 세계적 뉴스로 취급되고 있지만, 4세기 당시 벌어진 기독교도가 저지른 그리스·페르시아 문화 파괴는 21세기 상황을 ‘새발의 피’로 여길 정도로 엄청났다.

왜 교양은 죽는 순간까지 쌓아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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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폼페이에서 발견된 벽화 속의 이시스 여신. 지혜를 의미하는 뱀은 이시스와 아프로디테가 갖는 이미지 중 하나다.

아프로디시아스 내 박물관에 전시된 아프로디테 대리석 입상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인류의 보물이다. 1600여 년 동안 땅속에서 잠자다 발굴된 아프로디테는 머리와 팔은 철저히 부서진 모습으로 서 있다. 기독교도가 파괴한 뒤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아프로디테 모습은 아름다운 미의 여신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옷을 입고 있고 두 팔을 벌려 모두를 환영하는 듯한 자세로 서 있다. 의상 앞면 한가운데는 땅의 여신 게(Ge)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os), 태양의 신 헬리오스(Helios)와 달의 여신 세레네(Selene)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염소 머리에다 물고기 몸을 한 상상 속의 동물에 올라선 반라의 여인 조각도 의상의 다리 부분에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아프로디테스 입상은 관능적 차원의 미의 상징과 거리가 멀다. 자식에게 다가서는 어머니로서의 이미지가 한층 강하다. 메소포타미아강 주변, 즉 현재의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숭배된 여신 이시타르(Ishtar)의 변형된 모습에 해당된다.

기원전 3500년 전부터 숭배된 이시타르는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Isis)에서 유래된 것이다. 세속적 차원의 미(美), 성(性)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새로운 노동력을 제공하는 다산(多産)의 근원인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이시스, 이시타르 나아가 아프로디시아스의 아프로디테가 가진 공통점이다.

그리스 문화권인 아프로디시아스의 아프로디테가 로마 스타일의 관능의 여신이 아닌, 어머니의 이미지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배층은 마케도니아 그리스계, 원주민은 페르시아계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 볼 수 있다. 지배층이 현지 주민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이시타르를 아프로디시아스의 수호신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미를 둘러싼 경쟁에 관한 한 대한민국만큼 도를 더하는 나라도 드물다. 언제부턴가 신문·방송은 대한민국 전체를 뷰티 콘테스트 무대로 만드는 데 공헌하고 있다. 성형으로 단련된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은 지면의 고정 인물로 자리 잡고 있다. 진선미가 아니라, 미진선 아니 미미미가 대한민국 최고의 가치인 듯하다. 외국인인지 알기 어려운 높은 코와 터질 듯한 보톡스 얼굴, 보기조차 무겁게 느껴지는 젖소형 가슴…. 강남스타일로 본다면 반대를 할지 몰라도, 인류 보편 타당한 가치 기준으로 볼 때 고대 그리스·로마야말로 미의 의미를 정확히 알려주는 표본이 아닐까?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미의 경쟁은 고대 그리스·로마 당시의 기준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너무도 다르고 오히려 추하게 여겨질 뿐이다. 상식적 얘기지만, 심미적 차원의 미는 인식으로서의 진과 윤리상의 선을 배경으로 할 때 의미를 갖는다.

리버럴 아츠의 가치는 어떤 것인지, 진선미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교양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쌓아가야만 하는지…. 이 모든 답을 찾기를 원하는 사람은 고대 유물 현장 답사에 나서길 권한다. 고대 그리스만이 아니라, 경주 고분을 돌아다니며 1300년 전의 통일신라인들과의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과거를 통해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리버럴 아츠가 보여주는 또 다른 의미이자 가치일지 모르겠다.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글·사진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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