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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인사이드] 회식 후 덮친 불행 … 어디까지 산재인가

중앙일보 2016.06.0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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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일러스트 중앙포토]

송년회, 단합대회, 뒤풀이 등 회사에 다니면서 한번쯤은 참여하게 되는 회식자리. 이런 자리에서 술을 먹고 취해 다치거나 사망한다면 모두 다 산업재해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정답부터 말하자면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2013년 10월 8일 인천시 무의도. 1박 2일짜리 ‘△△자동차 단합대회’의 첫째 날. 직원 이모씨는 지점장 및 동료 15명과 함께 저녁자리에서 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8시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계속 됐습니다.

둘째날 아침에도 이씨는 식사를 하며 또 술을 곁들였습니다. 평소 주량이 소주 2병인 이씨가 단합대회에서 마신 술의 양은 약 3병 반 정도였죠. '불행한 사고'는 식사 후 나선 둘레길 산책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절벽에서 낭떠러지 20m 아래로 굴러 떨어진 이씨는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사망했습니다.

이씨 부인은 “남편의 사망은 단합대회 중 발생한 것으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신청했죠. 하지만 공단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부인은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도 공단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 호제훈)는 이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5일 밝혔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호법에서 ‘업무상 재해’란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ㆍ질병ㆍ재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사업주가 "지배·관리하는" 행사에서 폭음을 한 뒤 발생한 사고라면 업무와 재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회사가 주관한 송년회에 참여했다가 술에 취한 상태로 귀가 중 맨홀에 빠져 사망한 장모씨의 유족에게 산재법상의 유족급여가 지급돼야 한다고 판단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하지만 이씨 사건에선 사업주의 책임보다 사고 당사자인 이씨의 책임이 더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단합대회에서 술을 못 마시는 직원들은 음료수를 마신점으로 볼 때 술을 강요하는 자리가 아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과음을 한 것은 이씨의 자발적 의사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비록 단합대회 자체를 사업주가 주관한 것이더라도 과음은 자발적인 것으로 본 것입니다. 결국 재판부는 "업무수행의 일환으로 참여한 단합대회와 이씨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며 "공단의 유족급여 지급 거부가 적법하다"고 결론냈습니다.

근로자가 회식자리에서 한 음주가 어디까지 근로의 연장이고 어디부터 자발적인 유흥인지 그 경계는 여전히 불분명합니다. 장씨 사건의 재판부는 “술을 권하지 않았다고 해도 업무상 회식자리에서의 과음으로 발생한 사고는 사실상 근로자를 방치한 회사의 책임이 있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사업주가 음주를 권유하거나 사실상 강요하였는지 ▶음주가 근로자 본인의 판단과 의사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이 제시하는 판단 기준입니다.

법원 관계자는 “실제로 어디까지를 사업주의 과실로 인한 위험영역으로 봐야하는지는 모호한 면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회식 후 음주 사고의 경우, 여러 가지 사실관계를 따져야 하기 때문에 해당 재판부의 가치 판단에 의해 결론이 달리지곤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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