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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불구 여전히 배급제 실시, 고질적 식량난 더 악화

중앙선데이 2016.06.05 01:06 482호 15면 지면보기

쿠바의 배급제도는 혁명 직후인 1962년에 도입됐다. 주민들은 정부가 준 배급노트를 갖고 배급소에서 쌀·콩·설탕·우유·달걀·닭고기 등을 매우 싼값에 살 수 있다. 사진은 한 배급소 모습. [사진 조희문·장수환]



지난해 처음 쿠바에 가면서 걱정했던 것은 음식이었다. 관광객이 많은 나라니 뭐 큰 걱정이 있으랴 생각했지만 그래도 일당독재 사회주의국가가 아닌가. 그렇다면 국민은 배급제로 식량을 조달할 테고. 도착해 보니 정말 수퍼마켓에 물건이 없었다. 처음에는 강도를 만난 줄 알았다. 진열대 중간에 띄엄띄엄 물건이 없는 게 꼭 약탈당한 가게 같았다. 한숨이 났다. 럼과 맥주와 물, 그리고 안주거리로 과자를 샀다. 럼은 아바나클럽과 레헨다리오가 유명한데 나는 34도로 도수를 낮추고 달콤한 맛을 내는 레헨다리오를 좋아한다.


특별기획 | 新쿠바 르포-5·끝- 쿠바판 장마당

쿠바 주민의 식량조달 방법은 배급과 시장에서의 구입 두 가지가 있다. 배급제도는 혁명 직후인 1962년에 도입됐다. 모든 주민은 정부가 준 리브레타라는 배급노트를 갖고 동네에 있는 보데가라는 배급소에서 기초생필품을 배급받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유상배급이다. 매월 구입할 수 있는 배급품의 양이 정해져 있는데 정부 보조가 있기 때문에 가격은 아주 싸다. 쌀·콩·설탕·우유·달걀·닭고기 등이 기초배급품이다. 담배·시가·전구·의류·비누·치약·소금·커피 등 20여 가지 물품은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구입품은 모두 배급노트에 기재해야 하며 정해진 양 이상 구입할 수 없다.

고기와 야채·과일 등을 살 수 있는 자유시장.

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상인.



수퍼마켓 어디를 가도 물건 많지 않아배급소에서 살 수 없는 것은 시장에서 구입한다. 자유시장과 암시장이 있는데 배급소보다는 가격이 비싸다. 대신 배급소에 없는 물건들을 살 수 있다. 자유시장은 조그만 청과물시장으로 보면 된다. 주로 고기와 야채, 그리고 과일 등을 판다. 닭고기가 많이 있고 쇠고기는 보기 어렵다. 나는 민박집 근처 시장에서 귤과 파파야를 사다 먹었다. 열대 과일은 현지에서 직접 먹는 게 최고다. 입만 대도 단물이 줄줄 흐른다. 매일 아침 민박에서 해주는 과일주스가 너무 달고 맛있어 설탕을 섞었나 궁금했는데 아니라고 한다.



수퍼마켓은 어디를 가든 물건이 많지 않다. 그래서 물건을 고르는 데 고민할 필요가 없다. 과일주스를 사고 싶으면 2~3종류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된다. 하나의 브랜드에 주스 종류만 선택하면 되니 얼마나 쉬운가.



암시장은 ‘이스키에르다(왼손)’라는 은어로 부르는데 일종의 불법시장이다. 고기·생선·꿀 등 다양한 물건들을 취급한다. 길거리 노점상 대부분은 허가받지 않고 영업한다. 쿠바 거리를 걷다 보면 시가를 싼값에 판다고 호객행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낙없이 빼돌린 시가를 파는 사람들이다. 시가에 대해 잘 알면 좋은 가격에 흥정이 가능하다. 고기나 빵, 맥주 등도 시중보다 더 싼값에 사려면 암시장을 이용해야 한다. 믿을 만한 암상인이 아니면 당국에 걸릴 수도 있다. 민박집 주인이 “우유와 꿀은 갖다 주는 사람이 있는데 관광페소로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 사람이 바로 암거래상이다. 동네 식당 주인이 시장에서는 비싸서 못 사고 필요한 식자재를 대주는 사람이 있다고 한 것도 바로 암시장을 말하는 것이다.



쿠바는 지금 고질적인 식량부족난을 겪고 있다. 특히 고기·야채·과일 등 기초 식료품이 부족하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서민이 사기에는 너무 비싸다. 관광객이 넘쳐나면서 식량부족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쿠바가 미국과 국교 정상화하면서 가장 먼저 투자승인을 한 미국 기업도 농업용 트랙터 생산업체다. 미국 농산물 공급업체들도 투자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보따리장사가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 잡았다. 쿠바로 가는 방문객들 중 상당수는 보따리장사를 한다. 친척이나 친구로부터 쿠바에서 필요한 물품을 주문받아 가능한 한 많은 물건을 가지고 쿠바로 들어간다. 공항 통과도 큰 문제는 아닌 듯했다. 부족물자를 가지고 가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눈감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공항 직원들과 서로 교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방문객이 가져가는 물건을 쿠바에서 파는 것은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보따리 거래는 상례화돼 있는 것 같다. 식당 주인은 출처만 묻고 따지지 않으면 원하는 것은 7주일 내에 다 공급해 준다고 했다. 그는 “가까운 멕시코 칸쿤과 미국 마이애미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아마 조직적인 밀수가 이루어지는 듯했다. 쿠바를 방문할 때 최고의 선물은 생필품일 것 같다.



식량이 부족하다 보니 쿠바 식단은 단출하다. 그래서 건강식이기도 하다. 식단은 신선한 유기농과 채식 위주로 짜여 있다. 밥에 야채와 감자 같은 유카, 콩그리(팥 익힌 것), 고기 한 점(대부분은 닭고기) 이런 식이다. 다른 중남미 국가와 달리 음식은 싱겁다.



이처럼 식량 사정은 어려운 편이지만 보건의료제도만큼은 쿠바인의 자부심이 크다. 암이나 에이즈도 모두 치료대상이니 우리같이 별도의 민간보험을 들 필요가 없다. 패밀리 닥터(가정의)와 진료소가 1차 진료기관이다. 2차 진료는 시설이 조금 큰 지역구 병원, 그리고 3차 진료는 대학병원 등 전국구 병원이 맡고 있다. 가장 부러운 것은 패밀리 닥터다. 의사가 동네주민이라 자기가 담당하는 환자들의 가족력과 건강상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처방이 확실하다. 80세 된 민박집 주인도 30년이 넘게 같은 의사의 처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월급을 받는 의사니 다른 욕심은 없어 보였다. 물론 요즘처럼 월급이 적은 때에는 패밀리 닥터 체계가 무너지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약국에도 필요한 의약품이 너무 부족해 걱정이라고 한다.

한 쿠바 여성(왼쪽)이 지난달 24일 수도 아바나 거리 좌판에서 시가 등을 팔고 있다. [AP=뉴시스]



당장 손쉽게 외화 벌 수 있는 관광업 중시쿠바 정부는 미국과 다시 수교하는 등 전체적으로는 개방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지만 아직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중국처럼 내수시장이 큰 것도 아니고 확실한 수출품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서비스업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가 쉽지 않은 여건이고 실제로 투자유치 실적도 미비하다. 게다가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같은 선진국 문제도 안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쿠바 정부는 당장 손쉽게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관광업을 중시한다. 민영화도 식당·민박·택시 등 관광과 관련된 업종을 최우선으로 했다. 쿠바를 찾는 관광객은 전 세계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나 관광업만으로는 내수진작에 역부족이다.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자유화 정책을 펴면서 주민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다. 쿠바 주민의 97%가 미국과의 화해에 만족하고 더 많은 개방을 원하고 있다.



쿠바 장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쿠바 주민들의 가장 큰 관심은 체제보다는 돈이다. 생활이 쪼들리면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렵다. 그만큼 쿠바 상황은 심각하다. 내가 학술대회에서 만난 공무원, 국내외 학자, 학생, 언론인들도 같은 입장이었다.



민간부문에서 자영업 또는 근로자로 일하는 사람들은 전체 근로자의 20% 정도다. 나머지 80%는 정부가 고용하고 있다. 대부분은 월급으로 한 달 생활이 부족해 나머지는 해외송금이나 불법 근로로 충당한다. 퇴직한 연금생활자의 환경은 더 열악하다.



수도 아바나의 생활이 그렇다면 나머지 지역 생활은 안 봐도 뻔하다. 현재 가장 큰 경제실권은 군부가 쥐고 있다.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 형제가 물러나면 경제 권력을 쥐고 있는 군부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실질변수다. 쿠바의 장래는 차기 지도부와 군부의 역학관계에 달려 있다. 정치권력이 투명하게 이양되는가가 향후 쿠바를 점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말했듯이 어떠한 개혁도 속도가 관건이다. 너무 느리면 뒤처지고 너무 빠르면 적응을 못한다. 이미 수십 년간 200만 해외교민의 송금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개방열차는 탄력을 얻어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쿠바 어디에도 달리는 열차를 막을 수 있는 힘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쿠바 주민의 약 34%가 해외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송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은 미국에서 송금되고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뒤를 잇고 있다. 이들이 보내는 돈이 연 3억 달러에 달한다. 대부분의 돈은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 사용된다. 송금액 중 11% 정도만 자영업에 투자된다고 한다. 쿠바인 70%는 자영업에 관심이 있다는 조사도 있다. 지금까지는 송금이 생활비 지원이었다면 앞으로는 사업자금에 많이 투자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주민의 정부 의존도가 갈수록 줄어드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조희문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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