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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내몰림의 대안으로 ‘열정의 섬’ 만들어 내다

중앙선데이 2016.06.05 01:00 482호 18면 지면보기

용산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 낡고 오래된 공장지대를 새로운 상권으로 바꿔놓은 ‘열정도’ 골목. 젊은 장사꾼들이 주도하고 있다. 2일 해가 지기 시작한 열정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김현동 기자



지난 2일 오후 8시 용산구 원효로 1가 일대 옛 인쇄소 골목. 와인 한 잔을 3000~5000원에 내는 작은 카페 앞에 자녀를 동반한 젊은 부부가 자리를 잡았다. 편의점에서 볼 수 있는 플라스틱 탁자에서 와인을 즐긴 이 부부는 1시간 쯤 후에 일어섰다. 바로 앞은 ‘OO 토탈’이라는 설비 업체, 바로 옆엔 오래된 공장이 있어 독특한 분위기다. 카페 안 테이블 5개는 쉴새 없이 손님이 바뀌었다. 카페 직원은 “지난해 10월 문을 연 뒤 꾸준히 손님이 늘고 있다”며 “시원한 곳을 찾는 사람이 늘어날 여름철 장사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권 직접 개발 나선 ‘청년장사꾼

서울 용산구에 뜨는 ‘섬’이 생겼다. 일명 ‘열정도’다.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인근에 한꺼번에 솟아 오른 새 주상복합과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마지막 남은 옛 동네다. 주상복합인 용산 더프라임 뒷편이 열정도의 시작점이다. 용산 KCC 웰츠타워 아파트, 이안용산아파트, 이안용산프리미어로 둘러싸여 있다. 열정도는 심하게 뛰어버린 지가에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추진하던 재개발 계획이 중단돼 섬처럼 옛 모습 그대로 남게 됐다. 대형 인쇄소들이 파주 출판단지로 옮겨가자 더 썰렁해졌다.

열정도 프로젝트 ● 2014년 11월 서울 용산구 원효로 1가 ‘인쇄소 골목’에 6개 음식점 동시 개점 ● 음식점·주점 17곳, 카페 2곳 등이 들어서 상권 형성 중 ● 최소 투자비용으로 인테리어를 거의 안한 소자본 창업이 주종 ● 매주 둘째 주 토요일에 개최되는 열정도 야시장에 5000여명 방문



월세 50% 올라, 골목상권 특색 지키기 고심주민들이 꺼려하던 골목이 북적대기 시작한 것은 2014년 11월 ‘청년장사꾼’이 6개의 음식점을 한꺼번에 내면서부터다. 청년장사꾼은 경복궁역 인근에 ‘열정감자’(현 감자집)로 유명세를 탄 요식업체다. 김윤규(30)·김연석(35) 대표가 2012년 이태원에 카페를 열면서 시작한 이 회사는 여러 실험과 실패 끝에 현재는 서울에 매장 14개를 운영하는 직원 40여명의 회사로 컸다. 근속 기간이 긴 직원을 두고 매장 지분투자를 하게 하는 등 독특한 아이디어로 ‘요식업계의 스타트업’으로도 주목받았다. 열정도엔 감자집 등 음식점 5곳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 여러곳에 매장을 냈다 자리를 잡을만하면 옮겨야 하는 일이 반복되자 ‘우리가 아예 상권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열정도 일대는 2014년 당시 임대료가 33㎡(10평) 기준 50만~70만원 수준이었다. 당시엔 권리금과 보증금도 없었다. 인테리어 비용을 줄이는 등 최저 자본만 쓰기로 하고 실험을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옛 인쇄소나 공장의 특징들이 남아 노포(老鋪)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험블(humble)한 분위기가 이 골목 특유의 스타일로 자리잡았다. 직장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기 위해 가끔 온다는 이모(37)씨는 “소문낼 정도로 맛있거나 독특한 것은 아니지만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고 편안한 마음으로 오기 좋다”고 말했다. 매달 둘째주 토요일엔 푸드트럭과 노점상을 모아 야시장을 열고, 거리 공연도 기획한다. 자투리 땅을 이용한 ‘1평 공원’, 벽화거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와 현재 진행 중이다.



소위 말하는 뜨는 동네가 된 셈이지만 김연석 대표는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뜨는 동네’라는 말이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핫(hot)하다는 소문이 돌면 대규모 프랜차이즈가 들어서고 임대료가 급등해 기존 소규모 업체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둥지내몰림)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는 “한번에 매출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지속가능한 장사’를 목표로 동네 주민, 인근 회사 직장인을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메인 열정도로 불리는 200m 남짓한 길엔 음식점·주점· 카페 20여곳이 영업중이다. 골목 사이 사이엔 자투리 공간을 이용한 액세서리 공방, 소품 가게, 옷가게, 꽃가게등이 들어서면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20~30대에 인기를 끌다 보니 그사이 진입장벽이 생겼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해 11월부터 이 일대 매장을 알아보다 자리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는 김현경(35·여)씨는 “열정도 메인 거리에는 매물이 잘 나오지 않고 예전과 달리 보증금과 권리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월세는 33㎡당 100만~120만원 사이에서 형성돼 2014년 말보다 40~50% 정도 올랐다. 열정도가 주목 받으면서 효창공원쪽 원효로 2가 방향으로 상권이 팽창되고 있다.



상권이 뜨면 손님이 늘고 매출도 증가한다. 이러면 건물주들은 계약기간 만료 시점을 기다렸다 임대료를 올리기 일쑤다. 상권 부흥의 과실을 향유하겠다는 의지다. 지금까지의 문제는 인상폭을 부동산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했다는 점이다. 매출 증가 속도가 지대 상승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되고, 월세 감당이 어려워지면 터를 다지느라 고생한 가게 주인이 외곽으로 밀려난다. 이런 젠트리피케이션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상권 유행 사이클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명동이나 강남역과 같은 유동인구가 많은 전통적인 대형상권에서 벗어나 있어도 입소문만 나면 접근하기 훨씬 쉬워졌기 때문이다.



‘매출의 20% 임대료’ 경리단길 모델 관심한적한 주택가였던 종로구 삼청동에 사람이 몰리면서 관광지로 변했고, 2010년 이전에는 인적조차 뜸했던 용산구 경리단길이 명소로 자리잡기까지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서동한 연구원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지도 애플리캐이션(앱)이 일반화되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공유가 급증하면서 특별한 집객 시설(역·백화점·쇼핑몰)이 없는 골목이 신흥 상권으로 부상할 수 있게 됐다”고 진단했다.



임차인 보호에 대한 논의가 나왔지만 해법이 쉽지만은 않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7대 사업 중 하나로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9개 지역(대학로, 인사동, 신촌·홍대·합정, 북촌·서촌, 성미산 마을, 해방촌, 세운상가, 성수동)을 지원해 모범사례로 만들어 내고 이를 시 전체로 확산한다는 목표를 공개했다.



7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성과는 미미하다. 개인간 계약에 관이 개입하는 것은 물리적·법적 한계가 있고 특정 지역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나 근거도 마땅치 않아서다. 서울시 소상공인 지원과 관계자는 “재산권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문제고, 지역별 사정도 다 달라 해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취지는 좋지만, 지자체의 개입이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요식업계 관계자는 “대상지역 중 하나인 해방촌은 이미 나름의 생태계가 형성되는 중인데 그 지역 업주들이 보호 대상으로 적합한지, 만약 그렇다면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해당사자들이 직접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건물주의 선한 의지에 기대하거나, 월세를 올리려는 시도를 사회악으로 몰아 규제하기 보다는 합리적 계약에 근거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몇몇 실험이 이미 진행 중이다. 경리단길 북쪽에 잇달아 가게를 내고 ‘장진우 골목’을 만든 장진우(30)씨가 올초 경리단길 끝자락에 조성한 푸드코트(스핀들 푸드 마켓)도 주목받는 사례다. 입점 매장(11곳)은 매출의 20%를 임대료로 내고 인테리어 등 기반 시설 관리는 건물주가 맡는 형태다. 임차인으로서는 경리단길에서 초기 투자 비용 없이 소자본으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건물주는 푸드 코트가 번성하는 만큼 더 많은 이윤을 누리게 돼 갈등 요인을 최소화했다.



상권이 떴다 금세 가라앉은 전례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역세권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은 후퇴해도 버틸 여지가 있지만,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곳에 있는 상권은 매력이 떨어지면 가파르게 쇠락한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명 브랜드로 채워지면서 내국인의 발길이 뜸해진 삼청동이 대표적인 예다. 상가중개업체 점포라인의 조사에 따르면 삼청동의 월세는 계속 오르고 있지만 올들어 권리금은 기존의 절반인 평균 3000만원 수준으로 줄었다. 그만큼 매출이 줄었다는 해석이다.



전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 전담반을 처음 만든 성동구청의 강형구 지속발전과장은 “2012년부터 스타트업과 사회적 기업이 입주하고 갑자기 ‘뜨는 동네’로 소개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가능성에 대비해왔다”며 “땅값이 올라도 유동인구가 적어 바로 상권의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숲길·방송대길·상원길 일대 상권(상가 255곳)을 지속발전구역으로 지정한 성동구의 조례는 다음달 발효된다. 주민협의체가 입점을 원하는 업소를 심사해 상권 특색을 지키겠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지만 상위법이 없어 강제력은 없다. 강 과장은 “상권 가치 상승의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는 게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며 “대상 지역 건물주 255명 중 141명이 상생협약에 서명하는 등 이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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