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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맛있는 영화 만든 그들, “요리는 일상적 예술…창의력이 중요”

중앙선데이 2016.06.05 00:39 482호 14면 지면보기
영화 속 음식이 나오는 장면에서 군침을 흘리며 입맛을 다셔본 경험, 아마 누구나 있을 것이다. 드넓은 화면 가득 등장하는 요리의 자태는 결코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니 말이다. 지난달 26~31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제 2회 서울국제음식영화제는 음식을 사랑하는 씨네필에게는 둘을 동시에 함께 즐길 수 있는 맛있는 축제였다.



아침엔 조조영화를 보며 브로콜리 수프와 그릭 베리믹스 요거트를 마시고 저녁에는 샴페인과 와인에 핑거푸드가 제공되는 해피아워를 즐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호사로운 극장 나들이인가. 한밤의 유혹은 더욱 다채롭다. 다큐멘터리 ‘세비체의 DNA’를 보면서 페루의 싱싱하면서도 상큼한 세비체(해산물 회무침)를 맛본다거나 ‘후무스 이야기’를 관람하면서 병아리콩을 갈아만든 중동식 디핑소스인 후무스에 맥주를 곁들일 수 있는 기회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다.


서울국제음식영화제 온 라코스테·아사하라 감독

보다 맛있는 영화 감상을 위해 서울을 찾은 ‘브라씨 부자의 맛있는 가업 잇기’의 폴 라코스테(Paul Lacosteㆍ50) 감독과 ‘무사의 레시피’의 아사하라 유조(朝原雄三ㆍ52) 감독을 만났다.



 



자연주의 음식의 대가 미셸 브라로 시작된 ‘인벤팅 퀴진’ 프랑스 리옹에서 차로 다섯 시간은 더 가야 나오는 라기올 마을에 위치한 레스토랑 ‘미셸 브라’. 그야말로 이곳에 오기 위해 일부러 여행을 떠나야 맛볼 수 있는 미슐랭 3스타의 정의에 부합하는 레스토랑이다. 탁 트인 푸른 초원에 각종 채소와 꽃 향기가 가득한 이곳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미셸 브라와 폴 라코스테 감독의 인연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셸이 3스타를 받은 뒤 단편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라코스테는 “이 지역은 프랑스에서도 정말 척박하고 가난한 곳이다”라며 “원래 미비한 재료로 만든 요리가 더욱 강력한 법이다. 미셸의 요리는 땅을 근본으로 한 뿌리에서부터 그 힘이 나온다”고 말했다.



영화는 텃밭에서 뽑은 채소와 재래시장에서 하나 하나 고른 재료가 어떻게 요리로 재탄생하는지를 한 편의 그림처럼 보여준다. 새하얀 접시를 스케치북 삼아 정원에서 딴 장미잎과 떫은맛을 지키고 신맛을 더하는 각종 허브잎 30~40개가 올라가 완성되는 가르구유 요리를 보고 있노라면 싱그러운 흙내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다.



“그 뒤로도 저는 쭉 단골이었죠. 그러다 2010년에 미셸이 아들 세바스티앙에게 레스토랑을 물려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편을 찍어보자고 제안했어요. 기업을 물려주는 건 흔한 일이지만 피카소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서 그 아들이 반드시 재능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잖아요. 요리는 기술과 예술의 결합인데 그게 제대로 전달이 될까 궁금했습니다.”



독학으로 요리를 배워 자연주의 음식을 구축한 미셸은 매우 꼼꼼하고 치밀하다. 벌써 15년째 아들과 함께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잔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결코 자신의 스타일을 강요하진 않는다. 세바스티앙의 요리는 더 심플하면서도 감성적이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동안 구상한 디저트는 아버지를 상징하는 빵과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치즈, 그리고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초콜릿 3종의 조합으로 탄생했다.



실제 조리사 자격증을 딸 정도로 요리를 좋아하는 라코스테는 “요리는 매우 일상적인 예술 활동”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매일 세 번씩 무언가를 먹거나 요리를 해야 하잖아요. 과연 이게 맛있을까 하는 서스펜스도 있죠. 영화에도 나오지만 일본 등 동양 요리는 굉장히 섬세하지만 자기가 할 줄 아는 것, 안전한 방법으로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반면 프랑스 엄마들은 친구들이 오면 한 번도 안 해 본 요리를 해요.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하는 거죠. 때론 그런 과감함도 필요한 것 같아요. 브라 부자에서 볼 수 있듯 요리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중요하거든요.”



요리를 촬영할 때 가장 신경쓰는 부분에 대해 묻자 그는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며 감상팁을 건넸다. “요리에선 소리로 모든 재료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어요. 그래서 카메라가 돌 땐 냉장고나 에어컨도 전부 꺼버려요. 그래서 랍스터 40마리를 버리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직접 맛볼 수 없는 이상 소리는 색감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죠.”



폴 라코스테의 음식 세계에 빠져들었다면 그가 지난 20여 년간 만든 ‘인벤팅 퀴진’ 시리즈를 권한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피에르 가니에르부터 ‘라따뚜이’의 실제 주인공 미셸 게라르까지 10명의 스타 셰프의 음식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단편 촬영 후 영감을 얻어 이 시리즈를 시작해 ‘브라씨 부자의 맛있는 가업 잇기’로 마무리를 지었으니 시작과 끝을 모두 브라 부자가 함께 한 셈이다.



소박한 생강죽부터 화려한 향응요리까지 … ‘무사의 레시피’ ‘브라씨 부자의 맛있는 가업 잇기’가 실제 이야기를 다뤘다면 ‘무사의 레시피’는 에도 시대에 있었던 가상의 식칼 무사 부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버지 덴나이(니시다 토시유키)는 식칼을 들고 이시카와현 카가번의 삼시세끼를 책임지는 것을 후나키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살아왔지만 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뒤늦게 검 대신 식칼을 들게 된 차남 야스노부(코라 켄고)는 이를 수치로 생각한다. 이에 덴나이가 절대미각 오하루(우에토 아야)를 며느리로 스카우트해 부족한 아들을 옆에서 돌보고 가르치게 하는 내용이다.



무사와 요리의 만남은 영화 속 식탁을 한층 다채롭게 만든다. 유자를 곱게 싸서 말린 유자빵부터 밀기울을 채운 오리구이까지 의외의 향연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침이 넘어간다. 아사하라 유조 감독은 “300년 전 에도 시대가 배경이지만 그 당시 무사의 레시피는 현대 일본 음식의 바탕이 되었다”고 말했다. ‘무사의 가계부’(2010)에 이어 이시카와현 100주년 기념 영화로 만들어진 만큼 철저한 고증을 거쳐 요리법부터 조리도구까지 상세히 재현했다. 가이세키 요리·향응요리 등 다양한 조리법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사실 요리 프로그램이 아니니까 과정을 일일이 찍을 필요는 없었어요. 다만 재료를 준비하는 게 더 어려웠습니다. 주연배우들이 직접 요리를 배워 팔뚝만한 잉어를 해체하고 회를 떴죠. 또 하나 더 고민이 됐던 건 색감이었어요. 이미 화려한 서양식 요리의 색감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다소 심심하고 무미건조한 음식을 그대로 보여줘도 될까 고민이 많이 됐죠.”



하지만 감독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하루가 영주 부인의 아픈 속을 달래기 위해 끓인 생강죽은 소박하지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등장한다. 마치 우리가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보면서 별로 대단한 요리도 아닌 문어모양 비엔나소시지와 폭신한 계란말이를 먹고 싶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상대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이 담겨있어서 그런가봐요. 실제로 단순한 요리지만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맛을 봤을 때도 반응이 가장 좋았어요.”



그렇다면 21년간 20편의 영화를 선보인 ‘낚시 바보 일지’(1988~2009) 시리즈의 14~20편을 연출하고 지난해부터 TV 드라마로 동명의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는 아사하라 감독은 어떻게 이 영화를 맡게 됐을까. “일본에서는 대대손손 음식점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요. 조상들이 이어온 가업을 평생의 업으로 여기는 거죠. 그런 정서가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본인이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업’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일말의 깨달음이라도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맡게 됐습니다.”



그는 음식에 대해서도 분명한 철학을 밝혔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역색이 옅어지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어느 나라에서도 맥도날드가 주식이 되어간다는 건 재미없는 일이잖아요. 일본에서도 불고기와 김치 등 한국음식이 인기가 많지만 역시 한식은 한국에서 먹어야 제맛이죠. 특히 삼계탕은 본고장 맛을 절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런 걸 지켜나가는 게 옳다고 봅니다.”



보다 넓은 일본 음식 영화의 세계를 보고 싶다면 ‘오이시이 일본’ 섹션에서 상영됐던 ‘스키야키: 감방미식회’ ‘달팽이 식당’ ‘타니타 직원식당의 다이어트 레시피’를 찾아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 삶의 애환과 우여곡절이 깃든 추억의 음식부터 소원이 이루어지는 식당의 소소한 기적을 맛볼 수 있다. 영화제는 끝났지만 새로운 맛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아직 끝났지 않았으니 말이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ㆍ서울국제음식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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