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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꽃들아, 내년 봄에 만나자

중앙선데이 2016.06.05 00:36 482호 22면 지면보기
이른 아침 피어오른 늦봄의 상쾌함은 낮이 되면 작열하는 햇빛 아래 곧 증발해 버린다. 하루 동안 여러 계절을 오가는 느낌이다. 모내기가 막 끝난 논은 머리를 깎은 동자승 머리 위에 돋아난 머리털처럼 소담스럽기만 하다. 씨앗을 뿌린 텃밭은 솎아내기를 아낀 탓에 제대로 된 상추를 보지 못했다. 화단에 심은 꽃씨의 형편없는 발아율 때문에 생각했던 꽃밭은 일찌감치 포기한 터다. 결국 텃밭이든 화단이든 모종을 사다가 다시 시작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지천에 흐드러지게 올라오는 예쁜 잡초들의 생명력이 놀랍기만 하다. 아이들과 함께 봄철 꽃들을 그리며 마을을 돌았다. 특이한 것들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녀석들이다. 훨씬 더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추렸다. 못내 떠나가는 봄에 대한 아쉬운 마음도 담았다. 안녕! 내년 봄에 다시 만나자꾸나~.


도시남자 이장희, 전원 살다 -7-

함지박처럼 큰 꽃을 피운다고 해서 ‘함박꽃’이라고도 불렸다. 색깔이 다양한데다 모양이 풍성하고 아름다워 집 뜰에 많이 심는다. 마을 길을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꽃이 비슷한 ‘모란’과는 잎이 확연히 다르게 생겨 구분하기가 아주 어렵지는 않다. 모란이 나무인 데 비해 작약은 뿌리만 남아 겨울을 나는 풀인데, 거대한 꽃만큼이나 새봄에 돋아나는 붉은 새싹의 강렬한 기세도 인상적이다. 게다가 성큼성큼 자라 올라 커다란 꽃봉오리가 만개할 때까지의 거침없는 행보가 꽃 세계의 장군감이다. 소박한 꽃을 좋아하는 내게는 우리집 작은 화단보다는 동네 산책길에서 만나는 게 더 어울릴 듯하다. 씨를 맺지 않는 개량종 겹작약도 있는데 그 화려함은 봄의 절정을 알리려는 듯 요란스럽다.?



초가을에 발아해 겨울 동안 땅바닥에 바싹 붙어 엎드려 지낸 후 봄이 되면 본격적으로 자라나 연한 보랏빛 꽃을 피우는 풀이다. 논두렁 여기저기서 아주 흔하게 발견되는데, 한여름에 고사해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 식물의 일생에 있어 더운 여름날만이 초록빛 전성기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진정 모든 것에는 정해진 때가 있는 법이구나! 겨울형 한해살이 풀 하나가 내게 새로운 것을 일깨워 준다.



 



 



 



 



 



꽃봉오리가 벌어지기 전의 모습이 붓처럼 보인다고 해서 ‘붓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볼 때마다 ?꺾어 물감 한 번 찍어 바르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흔히 화투의 5월이 난초라고 말하지만 사실 모델은 이 붓꽃이라는 말도 있다. 활짝 핀 붓꽃은 더없이 화려하지만, 그 순간을 위해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만개한 꽃이 오래가진 못한다. 참으로 짧고 굵게 자신을 표현하는 이 근사한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과연 어떤 작품이 나올는지!



 



 



 



길쭉한 풍선같이 뾰족 솟아오르다 이내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 듯 만개한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아름다운 꽃향기와 꽃 군집의 모양새가 아주 매력적이다. 원래 인동(忍冬)이란 ‘겨울을 참고 이겨낸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토종은 백색이나 연한 자백색으로 향기도 은은하다고 한다. 하지만 서양에서 들여온 붉은 인동은 색깔도 진하고 향기 또한 진하다. 겨울을 이겨내는 의미가 딱 어울리는 토종 인동을 한 번 만나 보고 싶다



어느 집 낮은 담벼락 바깥쪽에 조르륵 심어 놓았다. 진한 빨간색 꽃이 가냘프고 아름답다. 흔히 이름 때문에 아편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개양귀비로는 마약을 만들 수 없어 재배의 규제를 받지는 않는다. 한때 이를 오인한 경찰이 개양귀비를 모두 뽑아 압수하는 촌극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마을 길 한 편에 도도하게 피어오른 풍취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중국 최고의 미인이었다는 당나라 현종의 황후 양귀비가 어떤 이였을지 궁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시원스럽고 단순한 꽃의 모양이 싱그럽다는 생각이 절로 나게 만든다. 그런데 선명한 줄이 나 있는 꽃잎은 알고 보면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라고 한다. 안쪽에 노란 부분이 꽃인 셈이다. 꽃보다 꽃받침이 더 화려한 꽃이라니! 자연에서는 주연이 가장 돋보이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토종은 ‘으아리’라는 재밌는 이름을 가졌는데 개량종보다 투박하고 야생에서 찾아보기가 쉽지는 않다고 한다. 외래종보다 뒷전으로 물러나야 했던 많은 토종들의 험난한 삶에 응원을 보낸다.



 



 



 



?이장희 ?대학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의 저자. 오랫동안 동경해 온 전원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과 파주를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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