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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갖추고 훈련 거친 ‘항암 3.0 특수부대’ 떴다

중앙선데이 2016.06.05 00:33 482호 27면 지면보기



올해 초 미 매사추세츠공대(MIT)는 10대 혁신기술을 발표했다. 2위 인공지능에 앞서 1위는 암 치료용 면역세포였다. 암은 국내 사망원인 1위다. 세 명 중 한 명은 평생 한번 암을 만난다. 수술만으로 완치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항암치료를 한다. 항암치료 성공 여부는 환자가 면역력을 유지해서 견딜 수 있는가다. 1세대 화학항암제는 부작용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치료가 중단되기도 한다. 2세대 표적치료제도 치료제 내성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제 3세대 항암치료제, 즉 면역세포 치료제가 최근 임상시험에서 놀랄만한 치료효과를 보이고 있다.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암 정복의 선봉, 면역세포 치료제

 



부작용·내성 넘어선 3세대 치료법지난 2월 미 과학발전학술대회(AAAS)발표에 의하면 한 달 시한부 급성 백혈병 환자 29명을 대상으로 면역치료제를 주사한 결과, 27명 환자에서 암이 사라졌다. 면역세포 치료제에 사용된 세포는 환자의 면역세포다. 즉 환자의 혈액에서 면역세포(T cell)를 채취한 후 실험실에서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도록 ‘무기’를 장착하고 그 수를 불렸다. 장착 ‘무기’는 암세포 ‘명찰’에 해당하는 수용체(receptor)로 그 암세포를 찾아낼 수 있도록 T 세포의 외벽에 붙인다. 이렇게 준비된 면역세포들을 다시 몸에 주사하면 백혈병 암세포에 정확하게 달라붙어 파괴시킨다. 이번 연구는 150년 백혈병 치료 역사 중 가장 효과적이어서 참여 의사들도 놀랐다.



왜 이 방법이 그렇게 효과적일까. 금년 초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국가(IS)’ 테러가 발생하자 프랑스 정부는 시리아 내 IS 심장부를 폭격했다. 하지만 확실한 제압을 위해서는 외부의 폭격보다는 지상군의 투입이 필요하다. 더 확실한 방법은 프랑스군보다는 IS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리아반군을 외부에서 최첨단무기로 훈련·무장시키고 투입하는 방법이다. IS의 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반군이 천적이기 때문이다.



암의 천적은 면역세포다. 암환자의 경우는 이런 면역이 약해져 제대로 암을 발견·파괴하지 못한다. 따라서 약해진 면역세포를 환자의 몸에서 꺼내서 실험실에서 훈련시키고 수를 늘려서 인체에 재투입하면 된다. 이 기술의 핵심은 환자의 면역세포를 실험실에서 어떻게 훈련시키고 어떤 맞춤형 무기를 장착하는가다.



 

면역세포의 한 종류인 대식세포(도넛 모양)가 암세포(중앙)를 인식, 파괴한다.



적의 모습 기억하는 면역세포 남겨인체 면역세포의 적은 두 종류, 즉 외부 적(병원균·바이러스)과 내부 적(암세포)이다. 외부 적이 침입하면 1차 ‘항원제시세포(APC; antigen presenting cell)’가 이를 잡아먹고, 적의 흔적인 ‘항원’을 자기 세포벽에 ‘제시’한다. 이후 적의 흔적을 본 T 세포가 해당 병원균을 공격하도록 스스로 변신·공격·박멸한다. 목표물에 레이저 빔을 비추면 항공기가 그 레이저를 추적해서 미사일을 퍼붓는 방법과 같다. 전투 종료 후 인체면역은 적의 모습을 기억하는 세포(memory T cell)를 남긴다. 이 경우 같은 녀석이 들어오면 기억세포의 도움으로 빠른 속도로 박멸한다.



문제는 암세포다. 암세포는 정상세포가 변한 내부변절자다.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는 놈이라 찾아내기도, 공격하기도 쉽지 않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와 다른 단백질을 생산하거나 같은 종류라 해도 많이 생산해서 정상세포와 구별된다. 이를 구분하는 세포는 경비 역할을 하는 APC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훈련시킬 수 있는 세포는 현재 두 종류, 즉 APC와 면역의 공격 주역인 T 세포다.



 

항원제시세포(APC)인 수지상세포. 침입 바이러스나 암표식 물질을 표면의 굴곡에 붙여서 면역세포(T cell)에 제시, 암세포 파괴를 유도한다.



APC는 골수, 즉 뼈에서 백혈구를 만드는 조혈모세포를 분화시켜 만든다. 이때 환자 암세포 물질과 같이 키우면 APC는 활성화돼 외벽에 암세포의 표식을 내건다. 이렇게 준비된 APC를 환자 몸에 주사한다. 즉 ‘이러이러한 모습을 한 암세포가 당신의 몸 안에 있으니 정신 차리고 그 녀석을 잡아 죽일 준비를 하라’고 모든 면역세포에 알려준다. 암환자의 경우 이런 ‘항원제시’ 과정이 약해져있거나 암세포에 의해 고의적으로 차단돼 있다. 외부에서 주입된 APC에 의해 ‘정신’을 차린 환자의 T 세포는 즉시 수를 불려서 해당 암수용체를 가진 암을 죽인다.



두 번째 방법은 T 세포 자체가 특정 암을 인식?공격하도록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T 세포를 만드는 것이다. 올해 일본 나고야 대학에서 이 방법으로 뇌종양을 인식·공격하는 무기(수용체)를 갖춘 T 세포를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었다. 뇌종양 쥐 79마리에게 주사했더니 60% 쥐에서 암 성장이 멈췄다. 목표로 하는 암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면역 T 세포는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제작하는 ‘환자 맞춤형 암치료제’다.



 표적 단백질이 변형되면 내성 생겨암을 선고받으면 환자는 4단계를 거친다. 암이란 사실을 부정하고, 하필 내가 암에 걸렸을까 하고 분노하지만, 현실과 타협하고 결국은 암을 수용한다. 수용 후 치료단계에서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항암치료다. 항암 부작용인 구토·설사·현기증으로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그나마 항암제 치료로 암세포가 줄어든다면 암환자는 어떤 식으로든 버티려고 한다. 하지만 암세포가 항암제에 듣지 않는 ‘내성’이 나타나게 되면 환자는 절벽으로 몰린다. 항암제 내성은 왜 생길까,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는 없을까.



 

면역 T 세포(파란색 표시)가 암세포(녹색)를 발견, 접근해서 공격용 물질(빨간색)을 내 뿜는다.



정상세포보다 암세포가 빨리 성장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화학항암제는 당연히 부작용·내성이 생긴다. 전이 유방암·전립선암·폐암·대장암의 90%가 화학항암제에 내성이 있다. 암세포에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2세대 항암제인 표적치료제의 내성도 이미 예상되고 있었다. 표적치료제에 암세포 내성이 생기는 이유는 항생제 내성균인 ‘수퍼버그(superbug)’가 생기는 것과 같다. 즉 항생제를 도로 뱉어내거나 항생제가 달라붙는 곳을 변형시킨 병원균이 발생하면 이놈이 바로 수퍼버그이다. 암세포도 마찬가지다. 암세포의 특정단백질에 달라붙은 표적치료 때문에 암세포가 죽어나가지만 어쩌다가 그 단백질이 변형된 암세포는 내성이 생긴다. 2014년 미국 조지타운대의 연구에 의하면 폐암 환자의 40%가 표적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것으로 확인됐다. 그 원인은 돌연변이 때문으로 밝혀졌다. 돌연변이로 표적치료제를 무력화시키는 특정 단백질이 많이 생겨난 탓이다. 죽이겠다고 항생제를 내뿜는 녀석과 이것을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 돌연변이하는 녀석 사이에는 끊임없는 ‘창과 방패’의 진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암세포와 표적치료제도 같은 전쟁을 하고 있다.



2세대 표적항암제는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알려진 표적항암제 41개를 조사해보니 모두 T 세포의 활성을 떨어뜨렸고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피부암 치료제도 환자 50%에서 면역 저하를 일으켰다. 표적치료제가 암세포의 원하는 부위만 정확히 작용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왜 그럴까. 암세포는 외부의 침입자가 아니다. 내부 세포가 변해 생긴 변절자라서 정상 세포와 유사점이 많다. 특히 암세포의 대부분 표적물질은 정상 세포에도 있다. 다만 그 양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치료 목적으로 외부에서 몸 안으로 주입되는 물질은, 크든 작든 다른 세포에 영향을 준다. 암세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근접전을 벌이는 면역세포는 그런 면에서 표적치료제의 영향권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2세대 표적치료제의 단점, 즉 내성과 독성을 3세대 면역세포 치료제는 넘어설 수 있다.



 면역세포 치료제는 암 정복의 첫 걸음면역세포 치료제는 3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로 환자 자신의 세포를 사용해서 거부 반응이 원천적으로 없다. 둘째, 면역치료제는 일회용 주사가 아니다. 즉 1?2세대 항암제처럼 사용 후 분해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 안의 세포로 오래 남아 있을 수 있고 기억될 수 있다. 셋째, 개인 암 맞춤형 세포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 환자가 위암이면 위암에 맞는 면역세포를 훈련시켜 다시 몸 안에 주사할 수 있다.



천연두 바이러스를 박멸시킨 가장 큰 주역은 백신이다. 백신이 바로 ‘천적’이다. 즉 바이러스를 가장 잘 방어하는 면역을 미리 준비시키는 방법이 백신이다. 면역세포 치료제도 백신같은 예방효과와 더불어 치료효과가 있다. 과학계는 암을 정복할 수 있는 첫 단추를 채운 셈이다. 하지만 암은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니다. 인간보다 훨씬 앞서 동물·식물이 태어난 이래 암세포는 자라고 있었다. 암 발생의 원천 차단만이 확실한 정복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초 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달 정복처럼 ‘암 정복’ 프로젝트를 천명했다. 그 책임자는 조 바이든 부통령이었다. 부통령의 장남은 지난해 악성 뇌종양으로 숨졌다. 장남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슬픔이 암 정복 프로젝트의 성공의 기폭제로 승화했으면 한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ekkim@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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