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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왈레로 먼저 구운 다음, 숯불향 입혀 고급스런 맛

중앙선데이 2016.06.05 00:30 482호 28면 지면보기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오리 가슴살 구이 ‘봉화오리’. 플레이팅도 멋있지만 맛은 더욱 멋지다. 오리고기의 새로운 발견이다.



고기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아온 것이 있다. 불포화 지방산이 많고, 필수 아미노산과 각종 비타민이 풍부해서 몸에 좋은 고기인데도 그렇다. ‘치느님(치킨+하느님의 합성어)’이라고까지 불리면서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닭고기, ‘국민 메뉴’ 삼겹살로 외식의 지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돼지고기, 언제나 흠모의 대상이 되는 쇠고기 등등에 비하면 한참 뒷전이다. 바로 오리고기 얘기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79- '주옥'의 오리고기

언젠가 베이징의 유명한 오리구이 전문점에 갔을 때였다. 개업 이래로 그 집에서 팔린 오리구이를 전광판으로 카운트하고 있었는데 그때 무려 1억 마리가 넘었다. 식당 단 한 곳의 얘기다. 중국에서는 이 정도로 사랑을 받는다. 프랑스 같은 미식의 나라에서도 최고급 정찬 메인 코스에 사용할 정도로 귀하게 다뤄진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옛말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많이 먹지 않던 고기여서 이렇게 푸대접을 받게 되었다. 식문화 차이 때문이라지만 오리 입장에서 보면 좀 억울할 것 같기도 하다. 가격도 착한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은 별로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는 편인데도 별 다른 이유 없이 유독 오리고기는 선뜻 정이 안 갔다. 외식 메뉴를 정할 때도 한 번도 내가 먼저 나서서 오리고기를 찾은 적이 없었다. 이렇게 데면데면하던 서먹한 관계였는데 최근에 제대로 ‘임자’를 만나는 바람에 생각이 바뀌었다. 오리고기는 맛있는 것이다! 나름의 독특한 매력도 알게 되었다.



‘주옥’이라는 현대적 콘셉트의 한식 비스트로에서였다. 프렌치 방식으로 접근한 한식 퓨전요리를 주로 하는 곳이다. 오리 가슴살을 ‘프왈레’(Poeler·버터를 이용해 팬에 굽는 프랑스 조리 기법)로 일차 구운 다음 된장소스를 발라 오븐에 다시 굽고, 마무리로 숯불에 살짝 구워 숯불향을 입힌 요리를 먹었다. 늙은 호박 ‘퓌레’(Puree·채소를 갈아 걸쭉하게 만든 것)와 깻잎순 볶음, 가지, 야콘 구이가 곁들여졌다.



미디움 레어로 구워 육즙이 넉넉히 살아있는 오리 고기가 된장 소스와 어울려 만들어내는 진한 풍미가 일품이었고, 식감도 아주 부드러웠다. 쇠고기와는 또 다른 느낌의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왜 오리고기가 프랑스 요리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지 바로 이해가 됐다. 지금까지 내가 오리고기와 친해지지 못했던 것은 역시 ‘제대로’ 못 먹어봤기 때문이었다.

▶주옥: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8-3 전화 02-518-9393 휴일은 따로 없다. 좌석이 많지 않아서 예약을 하는 편이 좋다. 점심에는 세트메뉴만 하고 저녁에는 단품 위주로 한다. 오리 가슴살 구이 ‘봉화 오리’ 3만1000원



이곳은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음식점이다. 하지만 18년의 경력을 갖고 있는 오너셰프가 하는 곳이어서 그 요리 수준은 이미 어느 정도 완성돼 있다. 오리 가슴살 구이는 물론이고 다른 요리들에서도 그 내공의 깊이가 느껴졌다. 일찍부터 국내 여러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차근차근 요리를 배워왔고, 그 마지막 단계로 미국의 유명 레스토랑 ‘노부’에서 일하면서 세계적 수준의 요리를 경험한 신창호 셰프(37)가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처음 문을 연 곳이다. 과거에 같이 일하던 김주용 매니저(35)가 동업자로 합류해 매장과 운영 관리를 맡았다.



신 셰프는 앞으로 이곳에서 한식뿐만이 아니라 국적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창작요리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기본 요리 방식은 역시 프렌치다. 서양 요리의 근간이 바로 프랑스 요리고, 맛을 내는 방식이 체계적으로 잘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좋은 제철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겠다고 하는데, 얼마 전 갔을 때는 죽순 무침을 해줬다. 경남 진주에 있는 처갓집에서 바로 따서 보냈다는 봄철 죽순으로 만든 것이다. 상큼한 식초 베이스 소스에 버무려진 어린 죽순이 경쾌하게 씹히는 것이 마치 봄이 입안에서 바삭거리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이곳에서는 식사 전에 몇 가지 종류의 식초를 제공해서 맛보도록 하는 것도 독특했다. 자신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와인과 귤·감·사과·쌀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했다. 식전에 식초를 조금 먹게 되면 입맛을 돋우는 효과가 있고, 위 속의 나쁜 균을 없애주는 효능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본적이 없어서 약간 긴가 민가 했지만 막상 식초 몇 방울을 먹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입맛이 개운해지면서 미각 세포가 더 생생해지는 느낌이 신선했다.



이제 시작인 음식점이지만 깊이 있는 맛과 세심한 정성, 그리고 이렇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계속 승부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유명 음식점 대열에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열심히 해나간다면 말이다. 귀한 음식점이 오래갔으면 하는 마음에 덕담 삼아 하는 말이다. ●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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