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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울역서 전시·공연 보고 체험하며 놀다

중앙선데이 2016.06.05 00:24 482호 30면 지면보기

김명범의 ‘Untitled’(2009)



중장년에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말은 유년의 상징이다. 누구나 술래가 되어 친구들과 신나게 뛰놀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문화역서울284에서 26일까지 열리는 융복합예술프로젝트의 제목을 ‘복숭아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한 것은 여기에 몇몇 이미지를 더하기 위해서다. ‘무릉도원’이라는 현실 너머의 지상 낙원, 분홍빛 화사한 복숭아꽃 세상을 떠올리며 고단한 일상은 잠시 잊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자고 넌지시 말한다.


융복합예술프로젝트 '복숭아 꽃이 피었습니다', 6월 26일까지 문화역서울284

이 ‘융복합예술프로젝트’에는 전시와 공연과 영상과 사운드 작업이 섞여있다. 심지어 냄새와 통증도 ‘작품’이다. 규격화된 장르만 생각했다면 ‘이게 무슨 예술인가’도 싶겠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새롭고 흥미진진한 재미로 다가온 듯하다. 시작 한 달 만에 벌써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옛 서울역사를 찾았다.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호주 극단 원스텝이 만든 프로그램 ‘업사이드다운 인사이드아웃’에 참여하는 것이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 7~12회(약 90분 소요) 진행되는데 한 번 공연에는 3~4명으로 구성된 한 가족만 참여할 수 있다. 스토리북의 지시에 따라 역사 곳곳에 마련된 숨은 공간을 찾아다니며 보물찾기, 터널 지나기 같은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작품을 즐기는 것은 물론 옛 서울역사에 얽힌 이야기까지 터득하게 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신수진 예술감독은 “호주팀 3명이 한 달간 역사 곳곳을 샅샅이 훑고 다니며 장소특정적 작품을 완성해냈다”며 “관람은 물론 체험까지 겸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유형의 예술인데 특히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라고 귀띔했다.



예약이 밀려 원하는 날 참가가 어렵다면 그냥 1층부터 천천히 발길을 옮겨보자. 맨 처음 관람객을 맞는 작품은 건축가 국형걸이 중앙홀 한복판에 재활용 산업자재인 검정 플라스틱 팔레트 더미로 구성한 미로 정원이다. 아이와 함께, 혹은 아이처럼 동굴속 미로를 왔다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가운데 설치된 이희원의 영상 작업과 마주하게 된다. 거친 폭포 소리가 귓전을 두들기는 가운데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는 듯한 폭포수를 바라보면 어느새 몸이 붕 뜨는 듯한 비현실적 체험을 하기도 한다.

이병찬의 ‘URBAN CREATURE FAKE PLASTIC TREE’(2016)



강소영릴릴이 만들어낸 운주사 풍경소리 공간과 신성환의 물방울과 무지개 체험장, 로랑 페르노의 구슬장식관을 지나면 김준의 ‘제의적 소리’가 관람객을 맞는다. 나무로 만든 직육면체 공간에 들어가 누우면 덮개가 덮힌다. 암흑 천지속 들려오는 것은 종교의식 소리뿐인 일종의 임사체험이다. 그럼에도 관람객들이 줄을 선다. 한번 들어가 누워보았다. 관 속에 들어가면 이런 느낌이려나.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귀빈실에 마련된 김명범의 설치 작품은 관람객을 환상의 세상으로 이끈다. 뿌리째 뽑혀 공중에 떠있는 나무의 가지마다 1000개의 붉은 풍선이 가득하다. 풍선에 의해 하늘로 날아가는 듯하다. 해미 클레멘세비츠의 ‘성음송’은 구글에서 45개 언어로 ‘어머니’라는 단어를 수집해 들려준다. 바닥에 놓여있는 헤드폰을 끼면 오히려 아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대신 “엄마” “마마” 소리가 어슴푸레 들려온다. 엄마 자궁 속에 있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있는 ‘복원 전시실’은 시간이 멈춘 공간이다. 서울역사를 복원하면서 나온 흔적을 곳곳에 전시해 놓았다. 작품은 아니지만 그 못지않은 아우라가 넘쳐나는 곳이라 빼먹지 말고 들려볼 것을 권한다.



기찻길처럼 배열된 큼지막한 복숭아들이 진동하듯 움직이는 양아치의 설치 작품 ‘성진은 복숭아꽃 한 가지를 꺾어 팔선녀에게 던지는데’, 비닐로 만든 거대한 문어가 숨 쉬는 듯한 이병찬의 ‘어반 크리처-페이크 플라스틱 트리’ 역시 오래된 돌건물을 환상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히로노리 무라이와 김승영의 ‘수평선과 만남’에서 이끼 냄새는 만남이라는 행위를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마지막으로 관람객을 맞는 크리스토프 브뤼노의 ‘와이파이 SM’은 의미심장하다. 작가가 만든 밴드를 팔에 착용하고 있으면 ‘전쟁’ ‘기아’ ‘난민’ 같은 단어가 화면에 나올 때마다 자극이 전달된다. 인류가 지금 어디선가 겪고 있는 고통에 공감해보자는 게 작가의 취지다. 역시, 무릉도원은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인가. 일장춘몽의 끝이 쌉싸름하다. 무료. 월요일 휴관. seoul284.org. 문의 02-3407-3500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문화역서울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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