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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인사이트]비정치인은 대권 경쟁 나서면 안되나

중앙일보 2016.06.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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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6일간의 방한중 대선 출마 가능성을 내비치며 정가에 큰 파장을 던지고 한국을 떠났다. 반 총장은 지난달 28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찾아 독대하며 '충청 대망론'을 점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또 정치 원로들과의 만찬, 경북 안동 하회마을 방문도 대권 도전 의지를 시사하는 행보로 부족함이 없었다.

반기문 총장의 대선 행보, 새로운 선택지 제공한 측면 있어

반 총장의 이런 행동들이 임기가 7개월이나 남은 세계최대 국제기구 수장으로서 부적절하다는 논란을 빚은 건 당연하다. 앞으로 반 총장은 유엔의 리더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포함해 여러 층위에서 냉정하게 평가를 받아야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그가 현재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 1위를 달리는 인물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반 총장의 대권 도전 가능성과 관련해 가장 큰 논란은 그가 '비정치인'이란 것이다. 평생 외교관으로서 ‘여의도 정치’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사람이 국제 정치와는 판이한 국내정치에 뛰어들면 실패할 게 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정치인 출신 대통령 가운데 국민 모두가 동의할만큼 성공을 거둔 사람도 없다. 오히려 퇴임후 집권시 실정이나 친인척 비리가 드러나면서 갖은 망신을 당하고, 측근이 감옥에 가고, 국격까지 추락하게 만든 이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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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국 대통령직의 특성상 국회의원 경험이 있는 정치인이 대통령을 맡으면 당정협의나 대 야당관계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5선 의원 출신인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지도부와도 사사건건 충돌한 끝에 국정이 마비되다시피한 걸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의원 경험 풍부한 정치인이 대통령을 맡는다고해서 당정이나 대 국회관계가 원활해진다고 단언하기도 어려운 게 우리 정치 현실인 것이다.

◇지역구 번영회장 전락한 정치인, 국민들 대안 원해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출마한 기성 정치인들이 국가적 현안을 철저히 외면했다는 점이다. 총선 직전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댔지만 이에 대해 입 한번 뻥끗한 후보가 없다. 집권당인 새누리당 지도부조차 "지역구 예산 확실히 밀어드릴테니 우리당 후보 뽑아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3년전 대선 당시 여야 모두 입모아 외쳤던 '경제 민주화' 역시 이번 총선에선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그 사이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고 청년 실업은 곱절로 늘어났다. 그런데도 분배와 복지, 성장을 어떤 식으로 진작하고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말 한마디 하는 후보가 없었다.

이것은 의원직 획득과 유지만이 목표인 직업 정치인들이 국회를 독점한 결과 발생한 폐해라고 할 것이다. 1988년 13대 총선 이래 지금까지 8차례 총선이 모두 소선거구제로 치러지면서 굳어진 공식이 하나 있다. 안보·경제 등 국가적 공약을 제시하는 후보 보다는 지역구 민원 척척 해결해주고 경조사 부지런히 챙기는 후보가 훨씬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당선이 지상 목표인 정치인들이 '지역구 번영회장'식 선거를 치르게된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북핵위기가 고조되고, 한미동맹을 해체하겠다는 사람이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돼도 우리 총선판에선 관심사가 되지 못하는 이유다. 앞으로도 단 1표만 앞서도 당선되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시스템 아래 총선이 치러지는 한 정치인들의 소시민적 이익집단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국민들은 일찌감치 이런 문제점을 꿰뚫어봤다. 그래서 터져나온 게 안철수 신드롬이다. 의대 출신의 컴퓨터 백신 개발자 안철수는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안철수가 기업활동에서 보여준 창의성·도전정신과 약자에 대한 관심에서 기성 정치인들이 채워주지 못한 목마름이 해소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안철수가 4.13 총선에서 자신의 당을 원내 3당에 올려놓는 대약진을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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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출신 컴퓨터 백신 개발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안철수 의원

19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래 오판과 실기를 거듭해온 안철수의 행보에 대해선 호오가 갈린다. 하지만 새누리·더민주 양당이 독주해온 독과점 구조를 깨고 유권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했다는 점만큼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프레임이 야권에서도 자연스럽게 거론될 수 있게된 것 역시 안철수가 운동권 논리에 갇힌 기성 야당 정치인과는 생각이 다른 아웃사이더 였기에 가능했다.

반 총장이 정치권에 참여하는 것 역시 이런 관점으로 보면 환영할 일이다. 유엔 사무총장을 연임한 베테랑 외교관으로서 그의 시야는 공천과 당선, 그리고 당권 다툼에만 목을 메온 기성 정치인들의 그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반 총장이 대권 경쟁에 나선다면 당장 북핵과 외교안보 영역에서 기성 정당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공약이 나올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정치권의 안보나 통일 담론은 한층 깊어지게된다. 비정치인 출신 대권 후보의 등장이 가져다줄 혜택의 하나다.

물론 반 총장은 직업관료 출신으로 대중과 밀착해 호흡해본 적이 없다. 또 조직 질서에 순응하고 상급자의 평가에 바탕해 승진을 해왔다. 이런 이력들이 그의 정치적 행동반경을 제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인의 의지와 능력으로 극복해야할 문제일 뿐 그의 정계진입 자체를 봉쇄하는 걸림들이 될 수는 없다.

◇반 총장 영웅 만드는 與 깍아내리는 野가 문제 
반 총장 신드롬에서 우려되는 건 다른 데 있다. 반 총장을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에 이용해먹으려는 국내 정치권의 과잉반응이다. 총선 참패로 대권 주자들이 전멸하다시피한 새누리당은 반 총장을 '메시야'급으로 추켜세우며 대권 주자 마케팅을 벌이고있다. 특히 친박 세력이 적극적이다. 국민이 총선을 통해 엄명한 반성과 개혁을 반 총장 마케팅으로 넘어가려는 꼼수나 다름없다.

반면 야당은 극한 비난까지 써가며 '반 총장 죽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반 총장이 유엔의 수장에 오른 건 그를 외교부 장관으로 중용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최고의 글로벌 인재"라며 밀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사람들, 즉 친노 계열 인사들이 주축이 된 더민주가 이제 와서는 반 총장이 여당행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흠집내기 바쁘다. 자가당착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반 총장의 권력욕을 탓하기 전에 반 총장 같은 비정치인이 뜨도록 만든 자신들의 무능부터 반성하는 것이 순리다.

결론적으로 여야의 섣부른 반기문 대망론도, 막무가내 흠집내기 모두 부적절하고 꼴불견이다. 반 총장이 밝힌대로 그가 올해말 총장 임무를 충실히 마친뒤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본뒤 대응 방향을 결정하면 족하다. 여야는 반 총장 행보에 일희일비하는 자신들의 행태야말로 무책임·무능 정치의 전형임을 인정하고, 뼈를 깎는 개혁에 나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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