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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피해자 67%, 살균제 1년도 안 썼는데 폐 굳거나 숨져

중앙일보 2016.06.03 01:54 종합 1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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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 유족인 송요선씨가 2일 오전 환경성질환 실태조사보고서 발표 현장에서 피해 사례를 발표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66.9%는 살균제 사용 기간이 1년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도 치명적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박동욱 교수, 1·2등급 대상 분석
72%는 5세 이하 어린이+임신부
2010·2011년에 140명 집중 발생
당시 혹한으로 가습기 많이 사용
“화학물질 사고 땐 즉각 판매 제한”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박동욱 교수는 2일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주최한 ‘가습기 살균제와 공중보건의 위기’ 세미나에서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박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1·2차 피해 신고자 530명 중 1·2등급 피해자 221명을 모두 조사한 결과 살균제 사용 기간이 ‘6개월 이하’인 피해자가 100명(45.2%), ‘6개월~1년’이 48명(21.7%)이었다고 밝혔다. ‘1~2년’ 사용자가 43명(19.4%), 2년 이상 사용자는 30명(13.5%)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정도를 기준으로 피해자를 1~4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폐섬유화(폐가 딱딱하게 굳는 현상) 질환이 심한 피해자에겐 1~2등급을, 폐섬유화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호흡기 질환, 폐렴 등을 앓는 피해자에겐 3~4등급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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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대상 피해자의 대부분이 5세 이하의 어린아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221명 중 5세 이하 폐 손상자 수는 125명(56.5%)으로 전체 폐 손상자의 절반이 넘었다. 특히 사망자만으로 분류하면 95명 중 63명(66.3%)이 5세 이하 영·유아였다. 또 임신부가 34명(사망자 18명)으로 전체의 15.4%로 드러났다. 피해자 10명 중 7명(73.3%)이 호흡기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 임신부라는 사실이 수치로 입증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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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결과 피해자의 59%가 2010~2011년에 발생했다. 2005년까지 매해 2~3명 수준이던 폐질환 피해자는 2010년 38명, 2011년 92명으로 급증했다. 박 교수는 당시의 ‘추운 날씨’와 ‘감염위생에 대한 관심 증가’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2005년 이후 가장 추운 겨울로 기록된 2010~2011년 대다수의 가정에서 난방용품과 함께 가습기 사용이 급격히 늘었다는 것이다. 2009년 신종플루, 2010년 구제역 발생 등으로 감염위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살균제 사용량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

제품별 폐 손상 피해자 중에는 옥시레킷벤키저가 생산한 ‘옥시싹싹’ 사용자가 가장 많았다. 옥시싹싹만 사용한 피해자는 85명(39%), 두 가지 종류 이상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 중 옥시싹싹을 50% 이상 사용한 피해자는 66명(30%)이었고 세퓨만 사용한 경우는 24명(11%), 롯데 와이즐렉 50% 이상 사용자는 16명(7.2%)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이유로는 정부의 예방정책 부재 및 사후처리 부실을 꼽았다. 박 교수는 향후 화학물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등록→평가→허가→위험관리’에 이르는 네 가지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화학제품을 등록할 때 사전에 독성 정보를 명확히 표기하고, 사고가 발생한 제품에 대해선 즉각 판매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며, 화학제품을 모니터링하는 등 감시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서울대 김호 보건대학원장은 “ 개인들이 국가나 사회를 믿지 못하고 개인이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며 “보건 전문가로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전 대표 검찰 소환=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이날 노병용(65) 롯데물산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그는 2004∼2007년 롯데마트 영업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이 회사 자체브랜드 상품인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 판매 업무를 총괄했다. 검찰은 노 대표가 당시 안전성 검사가 없었던 걸 알았는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검찰은 김원해(61) 전 홈플러스 그로서리매입본부장도 소환조사했다. 김 전 본부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표시광고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제품 출시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이철우(73) 전 롯데마트 대표와 이승한(70) 전 홈플러스 회장도 3일 피고소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한다.

채윤경·정진우·장혁진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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