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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연, 삭은 연잎…스러져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찍다

중앙일보 2016.06.03 01:12 종합 22면 지면보기
진흙에서 고고하게 올라오는 붉고 흰 연꽃이 아니다. 사진작가 주명덕(76)씨는 검은 연, 삭아빠진 연잎을 찍었다. 흔히 ‘주명덕의 검은 풍경 사진’이라고 불리는 ‘잃어버린 풍경’의 검정 일색처럼, 그는 이번에도 먹빛으로 자신이 찾아온 세계를 감쌌다.

주명덕 사진전 ‘연(蓮) PADMA’

서울 위례성대로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연(蓮) PADMA’는 스러져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연꽃이 다 진 뒤에 사진기를 들이댄 작가는 “예전에 못 봤던 것, 오히려 뒷면이 더 좋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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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덕 작 ‘연’, 충남 부여 궁남지, 2016.

주명덕씨는 처음에 민화의 화사한 연꽃, 시시각각 변색하는 모네의 수련을 떠올렸지만, 50년 사진 인생의 무지근한 시간이 배어든 어두운 쪽으로 나아갔다. 그늘 속의 밝음이랄까. 검되 따듯하고, 시커멓지만 투명하고, 거무튀튀하지만 부드러운 연잎의 변화무쌍한 생태에 마음이 끌렸다. 군집을 이룬 연잎의 사계절, 홀로 또 같이 겪어내는 연의 생로병사는 슬프면서도 장엄하다. 사람의 일생과 무엇이 다르랴.

지난 1월 병상에 오래 누워있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난 뒤 찍은 겨울 눈 사진은 생사의 어름을 뛰어넘은 작가의 명징한 미감으로 눈이 부시다. 처연하게 말라 비틀어져 땅으로 고개를 떨어뜨린 연의 자태는 봉긋 피어난 한창 때 연꽃보다 더 아름답다. 여전히 은염 인화법의 암실작업을 고집하는 그에게 한 점 한 점 손에서 피어나는 연은 자식이나 연인과 같았을 것이다. 소멸에 대한 저항일까. 가슴에 묻은 부인의 초상이 연으로 부활했다.

모나지 않고 어진 ‘주명덕표’ 사진 앞에 서면 평면 인화지에 고인 빛이 유화의 마티에르처럼 울렁인다. 관람객은 두께가 다른 빛이 넘실거리는 인생 풍경 앞에서 문득 아득해진다. 전시는 18일까지. 02-418-1315.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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