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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신인이니까 잘못하면 잡아주겠지 생각…두려움 없었다” '아가씨' 김태리

중앙일보 2016.06.03 01:11
지난 1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개봉 하루만에 28만명을 불러 모았다. 일제강점기 일본 귀족 저택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얘기다.

영화 ‘아가씨’ 하녀역 김태리
‘노출 수위 협의 없다’오디션 때 조건
1500대 1 뚫고 박찬욱 감독에게 발탁
“오드리 헵번처럼 성숙한 배우될 것”

김민희, 하정우 등 톱 배우들이 포진한 작품에서 신인 김태리(26·숙희 역)의 과감한 연기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아가씨(김민희) 앞에서는 순박한 하녀인 척하면서, 백작(하정우)과 몰래 만날 때는 속된 욕망과 두둑한 배포를 뽐내는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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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리는 “‘아가씨’에 멈추는 게 아니라 이것을 발판 삼아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전소윤(STUDIO766)]

칸영화제에서도 “심리 변화를 손에 잡힐 듯이 열정적으로 표현했다”(버라이어티), “이 매력적인 신인은 강인함과 영리함, 타고난 코미디 기질을 데뷔작으로 완벽히 증명했다”(트위치필름)는 호평을 받았다.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박 감독에게 발탁된 신데렐라,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은 행운아. 김태리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영화속 파격적인 레즈비언 러브신과, "노출 수위는 조금도 협의할 수 없다”고 못 박았던 오디션 조건 등도 화제다. 박감독은 오디션 현장에서 “묘한 아름다움과 틀에 박히지 않은 자기만의 연기”에 반해, 단박에 “나는 너로 정했다”고 외쳤다.

김태리의 길지 않은 연기 경력은 연극으로 시작한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1학년때부터 연극동아리에 들었다. “2학년 방학 내내 동아리방에서 툭탁툭탁 무대를 만들었는데 평생 직업으로 가져도 후회가 없겠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둔 2011년 무작정 대학로로 찾아가, 극단 이루에서 조명·음향 등 스태프로 1년간 ‘잡일’을 하다 정식 단원이 됐다. 연기는 모노드라마 ‘넙쭉이’로 처음 했다. 소아암에 걸린 자폐아가 죽어가면서 세상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주연배우 언더스터디(메인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신 투입하는 배우)였는데 우연찮게 연기를 해보였고, 이후 재공연때 당당한 더블캐스팅으로 이름을 올렸다. “무심코 대타 연기를 시켰는데, 때묻지 않은 연기에 깜짝 놀랐다. 내 작품인데도 그날 연극을 보고 내가 울었다”고 당시 손기호 연출은 회상했다. 손 연출은 “연륜 있는 배우가 홀로 무대를 끌어가는 모노드라마의 특성상 20대 신인 배우가 캐스팅된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도 했다.

이후 김태리는 서너 편의 CF와 독립·단편영화에 출연했다. 오디션은 수차례 떨어졌다.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했던 탓에 긴장하지 않고 담담했다”는 ‘아가씨’ 오디션에서, 박찬욱 감독은 그 담담함을 높이 샀다. “어려워하지 않고 할 말 다할 줄 알아야 큰 배우들 틈에서 제몫을 해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외모는 천생소녀지만, 속엔 사내아이가 들어앉은 듯한 김태리의 담대함도 합격 싸인을 끌어냈다.

현장에서 김태리는 질문이 많은 배우였다. “연극할 때도 이해 안 가는 것이 있으면 ‘왜요?’라고 물어보곤 했어요. 이유를 알면 작은 뉘앙스도 살릴 수 있으니까요. 더 나은 것을 위해서라도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죠.” 6개월간 일본어를 배우고, 살을 찌우며 운동을 해서 단단한 몸매도 만들었다. 김민희와 대비를 위해 태닝도 하고 가무잡잡한 얼굴 분장을 했다. 동성애 연기를 위해 동성애 로맨스물도 집중적으로 봤다.

신인으로서 거장 감독의 대작영화가 두렵지 않았을까. “신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잘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잘 해야 해’라는 생각보다 ‘처음 하니 내가 잘못하면 바로 잡아주실 거야’라고 마음을 다잡았죠.” 극중 숙희 만큼 당찬 그다운 말이다.

“‘아가씨’로 제 자신이 어떤 지점을 밟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앞으로가 더 중요하죠. 늘 새롭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은 창조적인 배우, 오드리 헵번처럼 인간적으로 성숙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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