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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얽매이지 않은 서민들이 기적을 이뤄줬다”

중앙일보 2016.06.03 00:46 종합 26면 지면보기
닷새 전 임기를 개시한 20대 국회에 20년 만에 처음 전북에서 당선된 여당 의원이 입성했다. 3수 끝에 전주을에서 금배지를 단 새누리당 정운천(62) 의원이다. 그는 1996년 총선에서 강현욱 전 전북지사가 신한국당 후보로 군산에서 당선된 이래 전북에서 처음 당선된 여당 계열 의원이다.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를 국회에서 만났다. 그는 “내가 집중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전부 서민”이라며 “중상층 이상은 야당과 연결돼 있어 파고들어도 소용이 없다. 반면 아파트 경비원, 환경미화원 같은 분들은 진심을 다하면 전부 내 지지자가 됐다”고 강조했다. “정치는 지역주의가 아니라 결국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 야당과 얽힌 상류·중산층 대신

[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20년 만에 전북에서 여당으로 당선된 정운천 의원

세탁소·미화원 등 서민에게 호소
3만 명과 셀카 찍어 친구 맺고
끈질기게 설득하자 표심 바꿔
기사 이미지

정운천 의원은 인터뷰에 앞서 “셀카 같이 찍자”며 휴대전화부터 꺼내들었다. 지역구 주민 3만 명을 만나면서 한 명 한 명씩 셀카를 찍고 친분을 맺어 온 버릇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정치는 지역주의가 아니라 결국은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진 박종근 기자]

전주에서 새누리당 간판으로 정말 당선될 수 있다고 확신했나.
“나는 안 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2010년 전북도지사 선거에선 18.2%, 2012년 총선에선 35.8%를 득표했다. 이런 추세를 보니 이번엔 될 거란 믿음이 생겼다. 지난 4년간 지역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안 했다. 주민 3만 명 한 분 한 분과 셀카를 찍고 대화했다.”
하지만 불과 111표 차로 이겼다.
“부재자·재외국민 투표에서 상당한 표를 놓쳤다. 그들은 그동안 2번(야당)만 찍어 온 이들이다. 나를 본 일이 없으니 이번에도 그랬을 것이다. 이것만 아니면 3000표 차로 이겼을 거다. 또 다른 요인은 총선 며칠 전 전주를 찾은 김무성 대표가 ‘전북도민들은 배알도 없느냐’고 발언한 것이다. 이것도 표를 깎아먹었다. 어쨌든 111표 차로 이기니 내가 얻은 표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하다고 느껴지더라. 그래서 당선 인사를 일주일 내내 했다.”
주민들 반응은.
“나를 안 찍은 사람들조차 환호하더라. 수십 년간 얽매어 온 지역주의 굴레가 터진 것 아닌가. 또 온 나라가 전주 사람들 잘했다며 칭찬해주지 않는가. 전주가 이렇게 중앙 뉴스를 타본 적이 있었나. 주민들이 온통 해방된 느낌에 즐거워한다.”
이번 총선은 여당 심판 바람이 거셌는데, 역설적으로 야당 텃밭에서 여당 후보로 당선됐다.
“야당은 맨날 정권 심판론만 갖고 선거를 치른다. 그러니 전북이 망조가 든 거다. 그래서 선거 기간 내내 ‘동남풍’을 외쳤다. 동쪽엔 김부겸, 남쪽엔 이정현 바람이 부니 전주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정운천 만큼은 찍어주자’는 바람이 불면서 정권 심판론을 이긴 거다.”
무소속으로 나왔으면 당선이 쉽지 않았을까.
“다들 그랬다. 여당으론 죽어도 안 되니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다음 여당에 복귀하면 되지 않으냐고 말이다. 난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전북 지역은 선출직 공무원이 시·도 의원,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합쳐 모두 222명이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은 한 명도 없다. 이런 끔찍한 지역주의 장벽을 깨기 위해 내가 나섰는데, 어떻게 무소속으로 나갈 수 있냐고 일축했다.”
그렇게 지역주의를 깨야겠다는 의지가 생긴 계기는.
“전주에서 버스 노조 파업이 있었다. 8개월 넘게 질질 끌더라. 여야가 고루 있었으면 이렇게 오래갔을까? 야당만 독주하는 지역이니 만사가 쳇바퀴를 도는 거다. 경쟁이 없으니 책임도 없고 여당도 없다. 이 3무(無)를 없애지 않으면 전주는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출마를 결심한 것이다. 전주 사람들도 나와 대화하면서 ‘맞다. 이래선 큰일 난다. 바꾸겠다’ 고 하더라.”
주민들과 어떻게 대화했길래 마음을 돌리던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 세탁소·이발소·미용실이다. 집이 서울에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빨랫감을 한 달에 1~2번씩 집사람이 들고 전주로 내려온다. 지역 세탁소에 두 벌씩 맡기며 거래를 튼다. 집사람이 두 번 가면 세 번째에는 내가 간다. 이 정성에 못 이겨 세탁소 주인이 내 사람이 된다. 지난 4년 내내 중상층 이상은 안 만났다. 야당 권력과 얽혀 있어 표심을 바꾸기 힘든 분들이다. 그래서 중하층 아래 서민을 집중적으로 만난다. 야당 권력에서 자유로운 그분들이 내게 제일 중요하다.”
중상층 이상은 정말 안 만났나.
“만나본들 시간만 빼앗긴다. 예를 들면 대학에 가면 교수는 안 만난다. 대신 미화원·경비원을 만난다. 셀카 찍고 그분들 얘기를 들으며 친구를 맺는다. 그러면 내 든든한 우군이 돼 주신다.”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지내기가 워낙 어려웠을 것 같다.
“내가 장관 출신이고 여당 전북도당 위원장을 지냈다. 그래도 행사장에 가면 내 자리는 없다. 의전도 안 해준다. 30년간 전주에 여당 출신 의원이 전무하니 행사장에 가면 전부 야당 판이다. 축사도 전부 그쪽이 한다. 이러니 누가 전주에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나오겠는가.”
전북을 포기하다시피 한 새누리당에도 잘못이 있지 않나.
“전북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만 5만 명이다. 당비도 1억원 넘게 걷힌다. 반면 우리 진성당원은 1500명뿐이다. 당비도 300만원에 불과하다. 게임이 안 된다. 하도 답답해 대구에서 걷은 새누리당 당비 수억원 중 2000만원은 전북에 보내라고 요청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안 주더라.(웃음)”
이제 의원이 됐으니 지역에 ‘예산폭탄’을 투하하게 되나.
“정부도 이젠 전북에 신경을 안 쓸 수 없다. 전북 공무원들이 ‘정운천 의원에게 부탁했다’며 정부에 예산 확대를 요구할 것이다. 나도 정부 담당 국장에게 ‘여기 왜 신경 안 쓰느냐’고 얘기할 것이다. 당 지도부도 내가 어렵게 당선됐으니 신경 써줄 수밖에 없다. 나를 예결위에 안 넣어줄 수 없을 것이다.”

| 지역주의 여전히 강고한 수준
호남 출신 요직 등용 확 늘리고
석패율 도입 등 선거 개혁 절실
영남패권주의 탈피도 급선무

 
정 의원의 당선으로 지역주의가 얼마나 해소됐다고 보나.
“지역주의가 깨진 건 절대 아니다. 물꼬를 겨우 튼 수준이다. 지금도 호남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은 10%대에 불과하다. 나와 이정현·김부겸·김영춘 의원 등 여야 전사 4명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당과 정부가 제도 개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그래야 지역주의가 무너질 여건이 굳어진다.”
제도 개혁이라면 무엇을 뜻하나.
“석패율제(지역구에서 낙선한 후보자 중 득표율이 높은 사람을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러면 호남에도 새누리당 인재들이 출마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당 인재가 많이 출마하면 지역주의는 확실하게 금이 간다.”
지역주의의 본질은 무엇이라 보는가.
“과거 민주화와 독재, 박정희와 김대중 구도로 인해 지역주의가 발생했다. 그 연장선이 여기까지 왔다. 그 결과 호남에선 무조건 새누리당이 싫다고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무작정 싫다는 것이니 도무지 풀 길이 없다. 연애랑 비슷하다. 상대방이 그냥 싫다면 관계가 이어질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힘든 것이다. 내 경우는 새누리당은 싫은데 정운천은 좋아서 찍어준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역주의는 사라진 게 아닌 셈이다.
“그래서 당선 이후가 중요하다. 내가 예산을 가져오고 자본을 유치해 지역에 혜택이 오면 ‘새누리당은 도둑으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라고 바뀔 수 있다. 그러면 지역주의도 서서히 무너지는 거다.”
호남에 국민의당 바람이 분 건 어떻게 보나.
“호남 사람들이 국민의당이 수권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찍어준 건 아닌 것 같다. 더민주의 30년 일당독주와 참여정부 시절 호남을 홀대한 의혹을 받아온 문재인 전 대표가 싫어서 국민의당에 표가 몰린 것으로 본다.”
그래도 호남에서 지지율 1위는 여전히 문 전 대표인데.
“호남 유권자 중 20~25%는 골수 더민주 지지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못 올라갈 거다.”
지금도 호남은 새누리당은 풀어줄 수 없는 한(悍)이 있다고 한다.
“야당이 진영논리로 호도해온 얘기일 뿐이다. 다행히 나의 당선과 이정현 의원의 재선으로 이런 오해가 깨질 균열점이 생겼다. 사실 전북에 실질적인 혜택을 줘온 당은 새누리당이다. 국가식품산업단지도 내가 장관 때 설립했고 새만금개발청·기금운영본부도 마찬가지다. 반면 야당은 집권 10년 동안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
중앙정부 요직에 호남 출신이 극히 적다. 청와대는 ‘호남 출신을 쓰고는 싶은데 뽑아보면 결과적으로 영남 출신이 되더라’고 한다.
“그렇다면 호남은 무능한 사람들만 있다는 얘기인가. 호남 출신으로 차관급까지 올라간 공무원들은 그 어느 지역 출신 공무원보다 경쟁력이 있다. 홀대받는 지역에서 자력으로 요직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능력 있는 사람이 (호남에) 없다니 분노가 치민다. 영남에 인사가 편중된 이유는 중앙 공무원들이 인사 후보군을 올릴 때 자기와 가까운 이들만 찍어 올린 결과다. 무조건 (호남에도) 일정 비율을 줘야 진정한 탕평인사다. 내가 기업 경영을 할 때는 충청·전라·경상·강원 등 각 도 출신을 한 명씩 고루 뽑았다. 그 결과 사업이 잘됐다. 경상도에 일이 있으면 그곳 출신 직원이 가면 말이 잘 통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왜 안 되나.”
새누리당 차기 대표는 누가 돼야 하나.
“당 대표만큼은 원외에서 개혁적 인사를 데려와야 한다. 원내대표는 몰라도 대표는 얼마든지 외부 영입이 가능하다. 국민들이 새누리당이 정말 변했다고 느낄 때까지 이런 개혁 조치를 밀어붙여야 한다.”
친박들은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끌고 가려면 (대통령에게) 편한 사람이 당 대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지금이 청와대에 충성하는 사람이 당을 끌고 갈 수 있는 상황인가. 그렇게 되면 오히려 (대통령의) 국정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새누리당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 보는가.
“당의 지휘봉을 영남에만 맡기고 의존하면 안 된다. 호남에도 보수의 기치를 지키고 있는 곳이 많다. 나를 찍어준 사람들은 50·60·70대가 상당수다. 이들은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과감히 내게 표를 줬다. 사실 호남은 50년 전 대선 때는 박정희 대통령을 영남보다 더 많이 찍어준 곳이다. 이런 표심을 복원해야 한다.”
전북이 전남보다는 지역주의가 약한 곳으로 여겨졌지만 여당 당선은 전남(이정현 의원)에서 먼저 이뤄졌다.
“지역주의는 실은 전북이 전남보다 더 철옹성이다. 전주는 조선왕조 500년간 나라의 중심 도시였다. 그 양반 기질과 자존심이 묻지마식 야당 지지로 모아진다. 처음에는 나도 쉽게 생각했다가 절망했다. 그러나 대학도 삼수 했는데 정치도 삼수 못하랴는 생각에서 도전을 이어 간 거다.”
 
정운천은…

1954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한 정 의원은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의 자택을 관리한 부친 덕에 인촌과 같은 방에서 태어났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친구 집에서 유숙하며 익산 남성고·고려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진로를 농업으로 잡은 그는 키위를 국산 브랜드 ‘참다래’란 이름으로 특화시켜 히트를 쳤다. ‘성공한 농업 CEO’ 반열에 오른 그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MB)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MB 당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MB 정부 초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발탁됐지만 광우병 파동으로 6개월 만에 물러나는 아픔을 겪었다. 그 뒤 한나라당 후보로 2010년 전북도지사 선거, 2012년 총선에 잇따라 출마해 낙선했다. 이후에도 4년간 끈기 있게 지역 민심을 파고든 끝에 4·13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최형재, 국민의당 장세환 후보를 누르고 금배지를 거머쥐었다.

▶1954년 전북 고창 출생 ▶고려대 농경제학과 졸업 ▶한국참다래유통사업단 회장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2010년 새누리당 최고위원 ▶2010년 전북지사 선거 출마 ▶2012년 19대 총선 출마 ▶2016년 20대 국회의원 당선

글=강찬호 논설위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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