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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장 친화적인 해운 구조조정 필요하다

중앙일보 2016.06.03 00:34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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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범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70, 80년대 해운업 불황 닮은꼴
항공경영기법 통해 위기 타개
채무·비용에 치중한 수술 대신
해운·조선업 윈윈 전략 찾아야

한국항만경제학회 부회장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잇따라 자율협약에 돌입하며 본격적인 재편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해운산업의 근본적 회생까지 갈 길은 멀기만 하다.

현대상선이 글로벌 해운 동맹체 재편에서 소외된 가운데 용선료 인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또 다른 선사인 한진해운도 넘어야 할 길이 멀다. 해운산업과 항공산업이 태생적으로 ‘수송’이라는 큰 틀에서 맥락을 같이하고 있으며 통상 항공산업이 해운산업보다 10년을 앞서 경영기법·첨단기술 등을 도입해 운영한다. 이런 측면에서 항공산업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왔는지를 살펴보면 지금의 해운산업이 나아갈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말까지 이어졌던 해운업계 불황은 현재의 해운산업 불황과 묘하게 닮아 있다. 당시 2차 오일쇼크 이후 해상 물동량이 대폭 감소해 불황의 늪에 빠졌다. 업체들끼리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도 치열했다. 84년 발효된 신해운법으로 인해 자유경쟁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해운동맹 체제가 흔들리는 한편 운임 하락에 따른 치킨게임 경쟁이 시작됐다.

이 때문에 적자의 늪을 벗어나지 못한 해운사들이 운항을 접거나 도산했고, 정부에서는 ‘해운산업합리화’ 조치를 통해 해운업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당시 항공의 경영기법을 접목해 위기의 파고를 넘은 국내 성공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80년대 자본잠식 상태였던 국내 일부 해운업체의 경우 항공업체에서 투입된 경영개선팀의 도움을 받았다. 한 발 앞선 항공업계의 원가 인하 노하우를 전수받았을 뿐만 아니라 항로 통합 및 배선 합리화 조치가 단행됐다. 당시 항공사 승무원 교체방식을 벤치마킹해 해운업체는 연간 20%에 달하는 선원 이직률을 줄였고 선박 스케줄 효율성까지 제고할 수 있었다. 서로 비슷한 측면이 많은 항공산업과의 상호 보완 작용을 통해 해운업체들의 수지는 금세 흑자로 전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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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운산업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도 의외로 항공산업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시각을 조금 달리해 재무적 부분이 아닌 항공기 제작 방식에서 선박 제작을 살펴보면 답을 찾을 수도 있다.

현재 선박 제조는 선주의 요구에 따라 맞춤형 주문 제작하는 방식이다. 선주의 요구에 맞춰 모든 것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모든 배가 제각각이고 비용과 시간도 상당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 효과도 누리기 어렵다.

반면 항공기 제작의 경우 프로토타입(Prototype) 방식으로 항공기를 제작한다. 모델에 따른 표준화된 기본 항공기를 제작하고 난 이후 항공사의 요구사항에 맞춰 도색, 좌석, 인테리어, 기타 편의시설 등을 더하는 방식이다. 프로토타입 방식의 장점은 기본 틀을 다 갖추고 나서 필요 부분만 충족시켜 제작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절감해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

만약 선박 제작에도 프로토타입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면 어떨까. 상대적으로 값싸고 좋은 배를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조선사와 해운사가 힘을 합쳐 공동설계를 하고 이를 표준화시킨다면 글로벌 트렌드인 에코십(Ecoship)의 한국형 버전도 가능하다.

현재 국내 해운선사들은 글로벌 선도 선사들처럼 운항효율이 20% 이상 높은 1만8000TEU급 초대형 친환경 선박을 발주해야 규모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유동성 위기에 빠져 구조조정 도마에 오른 국내 해운선사들의 형편을 감안하면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만약 조선사와 해운사가 힘을 합쳐 선박의 표준화를 이뤄 한국형 에코십을 만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해운사는 효율성과 단가 경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고 조선업계가 수주 절벽을 뛰어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해운산업은 국내 수출입 화물 운송의 99%, 국가 전략물자 수입의 100%를 담당하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만약 해운사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면 국가 경제가 동반 붕괴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해운선사의 자구 노력과 더불어 해운업 부활을 위해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의 적극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현재의 선박펀드 참여 조건인 부채비율 400% 이하, 선사 부담 10% 등의 높은 문턱부터 낮춰야 할 것이다. 채권단을 포함한 금융권도 해운업계에 대한 채권 차환을 지원하는 등 유동성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해운산업 구조조정은 채무나 비용 부문에만 치중하는 분위기다. 이런 식으로 구조조정에 접근하면 당장의 재무상황은 좋아질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국제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도태되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재무구조 개선과 함께 정부 차원의 강력한 정상화 지원 의지를 표명하는 게 절실하다. 또한 시장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하는, 보다 세련된 시장 친화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한때 세계 해운산업을 호령했던 한국 해운산업이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안승범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한국항만경제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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