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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지도 잘나지도 않은 오해영…2030 여성들 “딱 내 얘기”

중앙일보 2016.06.01 01:19 종합 22면 지면보기
| 실연 당하고 직장선 매일 깨지고
막장없는 현실적 캐릭터 흡입력
여성들 지지에 시청률 고공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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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또! 오해영’이 인기다. 평범한 여성의 현실적인 얘기가 20~30대 여성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사진 tvN]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연출 송현욱)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20~30대 여성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승승장구 중이다. 첫 회 2%대를 기록했던 시청률은 9회째 8%(닐슨코리아)에 이르렀고, 그런 인기에 힘입어 방송분량도 2회가 추가돼 전체 18회로 늘어났다.

주인공은 지독히 평범한 서른 두 살 해영(서현진). 결혼 전날 차여 절망에 빠진 해영 앞에 도경(에릭)이 나타난다. 도경은 해영과 동창이면서 이름까지 같지만 훨씬 예쁘고 똑똑한 ‘예쁜 오해영’(전혜빈)에게 결혼식 날 차이는, 해영과 비슷한 꼴을 당한 처지다. 웃음을 잃은 도경에게 어느 날부턴가 ‘그냥 오해영’이 보이기 시작한다. 둘의 인연은 해영이 도경 옆집으로 이사 오며 점점 깊어진다.

막장도 재벌도 없는 이 드라마의 최대 매력은 얼굴도, 패션 센스도, 집안 환경도 평범 그 자체인 ‘그냥 오해영’에 있다. 해영은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해 술에 절어 살며, 회사에서는 매일 상사 수경(예지원)에게 깨진다. 승진에서도 혼자 누락됐고, 집에서도 골칫덩이다.

치열한 직업 세계 혹은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랑을 그린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지극히 현실적인 설정이다. “현재 20~30대 직장 여성들이 삶에서 품는 다층적인 고민이 모두 녹아있다. 요 근래 이렇게 여성의 고민과 성장을 섬세하게 그린 드라마는 없었다”(TV 평론가 김선영)는 분석이다.

해영의 평범함은 ‘예쁜 오해영’(전혜빈)과 늘 비교 당하는 설정으로 인해 증폭된다. 지금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금수저 vs 흙수저’ 프레임으로 볼 수도 있다. “예쁜 오해영과 그냥 오해영을 대할 때 달라지는 한국 남성들의 이중적인 태도의 묘사, 엇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어 피해자로서 경험을 공유하는 여성 시청자들이 오해영에 쉽게 몰입하는 점”(김선영)도 강점이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2004~2005, KBS2) ‘청담동 살아요’(2011~2012, JTBC) 등에서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했던 박해영 작가가 이번에도 장기를 발휘한 것이다.

| ‘예쁜 오해영’에 상처입었지만
“나는 나” 외치는 그녀에 대리만족
서현진 디테일 연기가 1등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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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오해영(서현진)과 도경(에릭). [사진 tvN]


그러나 해영이 그저 평범한 데서 그쳤다면 지금과 같은 지지를 받지 못했을 거라는 설명도 나온다. 해영의 진정한 매력은, 현실 속 ‘해영’들이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 해줘 대리만족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그는 회식 자리에서 예쁜 오해영과 비교 당하자 “너는 너고, 나는 나야!”라며 소리를 빽 지른다. 보는 이의 속은 뻥뻥 뚫린다.

수수하고 담백한 얼굴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는 배우 서현진(31)은 이런 장면에서 행동을 과장하는 대신 디테일을 살리는 센스를 발휘한다. 드라마를 여기까지 끌고 온 1등 공신, ‘또! 오해영’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이유다.

등장인물들 모두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고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점도 매력이다. 가령 남주인공 도경은 잘생겼고 능력 있지만 ‘재벌’ ‘실장님’ 식의 왕자는 아니다. “계층 상승이 거의 불가능한 요즘, ‘재벌 3세’와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는 트렌드에 부합한다.

그러면서도 사랑에 대한 여성들의 판타지를 적당히 충족시켜준다. 인물도 단순하지 않아, 마녀 같은 수경에게 실은 누구도 짐작 못 하는 아픔이 있고 ‘예쁜 오해영’도 단순한 악녀가 아니다.

여기다 두 여주인공이 이름이 같다는 설정, 사실상 동거, 결혼식 날 신부가 사라지는 미스터리, 예지력이라는 판타지적 요소 등을 곳곳에 배치에 흥미를 더한다. 물론 로맨틱 코미디가 미스터리·판타지 등의 장르와 결합하는 요즘 추세를 감안하면 ‘또! 오해영’이 마냥 새로운 건 아니다. 하지만 자칫 진부하고 유치할 수 있는 설정을 탄탄한 캐릭터와 설득력 있는 전개로 영리하게 버무렸다.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도경의 직업, 주변 인물들의 러브 라인도 풍부한 곁가지다.

드라마의 남은 절반에서, 해영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드라마의 열성 팬들에게 그런 질문은 의미 없다. 다시 사랑해야만 하니까. “나는 쪽팔리지 않습니다. 더 사랑하는 게 쪽팔린 것은 아닙니다”라고 되뇌는 여자가 사랑을 쟁취할 수 없다면, 그 누가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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