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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사춘기 외로움의 특효약은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기

중앙일보 2016.06.01 00:01 강남통신 10면 지면보기
학교 가기 싫다는 고1 아들이 걱정되는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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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요일 오후면 울상인 아들 어떡해) 고1 아들을 둔 주부입니다. 아들 녀석이 지난해부터 일요일 오후만 되면 우울해지고 저녁 때쯤 되면 눈물까지 흘리면서 월요일이 오는 게 너무 싫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매주 그러니까 엄마인 저까지 우울해지고 심할 땐 짜증도 납니다.

언제부터 월요일이 싫었는지 물었더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유 없이 우울해졌다고 하네요. 남편이 직업군인이라 자주 이사하고, 초·중학교 때 6번 전학을 한 터라 학교 적응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로 생각해 늘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입학해서는 여러 친구와 두루두루 잘 지내고 학교생활이 즐겁다고 했습니다. 전학이 우울의 원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월요일이 싫은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다시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 싫고, 주 중에는 시간이 늦게 가는 것 같다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A. (우울감의 정체는 본능적인 외로움) 제 기억에 처음 우울이란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초등학교 5학년, 어느 일요일 저녁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이 너무 쓸쓸하고 허전하단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일요일에 우울이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드님의 마음이 잘 이해되는 듯합니다.

반복적으로 일요일에 찾아오는 우울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제 경우엔 외로움이었습니다. 많은 사람과 부딪히며 바쁘게 지내는 주중 학교생활 때는 잘 못 느끼다가 혼자 있게 되는 일요일에 그 외로움을 느꼈던 것이죠.

외로움을 결핍의 감정이라 우리는 보통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가 떠났을 때 느끼는 것이 외로움이라고 말이죠. 상실 후에 찾아오는 감정이 외로움이기도 하지만 외로움은 태어날 때부터 느끼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결핍이나 상실 없이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이죠. 사람은 누구나 ‘응애’하고 태어날 때부터 외로움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외롭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좋은 관계를 맺고자 욕망하는 것입니다. 외롭지 않다면 사랑에 대한 욕구도 없겠죠.

고1 사춘기는 감성적으로 풍부할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외로움 같은 감정 반응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한 것은 아닌가 걱정할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학교생활도 즐겁다고 한다면 걱정할 이유는 더욱더 없습니다. 내 아들이 감성적으로 풍성하게 잘 자라고 있구나 생각해 주시면 좋겠네요.

외로움을 느끼는 유전자가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죠. 외로움이 싫어 매일 약속을 만들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모임 후 밀려오는 고독감에 가슴이 뻥 뚫려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고독감이 너무 커 우울 증상까지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흥겨운 모임 후에 찾아오는 외로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왜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요. 내 환경이 나를 외롭게 만들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요. 그것으로는 군중 속의 고독을 설명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외로움은 환경적 결핍에 기인한 이차적인 감정 반응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본능과 연결되어 있죠. 생존을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만들기 위한 성적 본능도 중요하지만 외로움도 중요합니다.

외로움은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도록 하는 힘으로 우리 유전자 안에 본능적으로 내재해 있는 느낌입니다. 외롭지 않다면 사회적 관계를 열심히 만들지 않겠죠. 인간이 발달시킨 사회와 문화는 이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외로움이 없었다면 사회적 유대감을 추구하는 인간의 문화적 특성이 나타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외롭기 때문에 외롭기도 하지만 외로움은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본능적 감정이기도 한 것이죠.

타고나기를 더 외롭게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요. 최근의 외로움에 대한 연구를 보면 ‘그렇다’가 답입니다. 유전자가 완전히 동일한 쌍둥이를 일란성 쌍생아라 하죠. 일란성 쌍생아를 대상으로 한 외로움 연구에서 유전적 경향이 48%, 거의 절반에 이른다는 연구 보고가 있네요. 타고나기를 외로움을 잘 타게 태어난 사람은 같은 환경에서도 더 외로움을 느낀다는 얘기입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한 남자가 자신이 어렸을 때 외로웠던 게 환경 탓이었다 생각하고 자녀를 더 따뜻하게 키웠는데, 어느 날 고2 아들이 너무 외롭다고 해서 당황했다고 합니다. 친구도 너무 많고 쾌활한 아들인데 말이죠.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는 것, 그만큼 사회적 유대감에 대한 욕구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외로움은 통증이지만 긍정적인 힘으로도 작용합니다.

덜 외로운 사람에 비해 정서지수 EQ가 발달하죠. 외로운 만큼 다른 사람의 반응을 잘 파악하고 응대하니까요. 외로움이 사회적 기능을 발달시키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누군가가 떠날 때도 찾아오는 감정이지만 누군가에 다가가게 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관심 구하지 말고 먼저 관심 주면 안 외로워

외로움의 특효약은 무엇일까요. 외로움의 특효약에 대한 연구 결과가 역설적입니다. 내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관심을 찾는 것보다 오히려 내 따뜻한 마음을 표현할 때 외로움이 행복감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영어로 ‘helper’s high’ 라 표현하죠. 여기서 helper는 봉사자, high는 마약 같은 중추신경 흥분제를 복용했을 때 느끼는 짜릿함을 뜻합니다. ‘나 외로우니 더 사랑해줘’보다 대단한 자선 봉사는 아니라도 남을 배려하고 위할 때 외로움이 쾌감으로 전환된다는 것입니다. 배려의 쾌감이라 할 수 있겠네요.

윤리적인 차원에서 남을 배려하자는 것이 아닌, 뇌 과학 측면에서 남을 배려할 때 찾아오는 심리적 쾌감이 크다는 역설입니다. 외로움이 큰 사람일수록 그 쾌감도 더 커지는 것이고요. 자원봉사를 한 어르신들은 삶의 의미와 행복감이 증가하고 생리적 반응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진 것이죠.

내 외로움에 갇혀 나를 외롭게 하는 주변에 섭섭한 마음만을 가지게 되면 내 외로움의 깊이가 더 커집니다. 벽을 부수고 외부 세계에 내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줄 때 내 외로움이 따뜻한 감성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도덕적 윤리적 요구이기도 하지만 우리 뇌에 내재해 있는 외로움이 만들어내는 행동이기도 한 것입니다.

인간에겐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달려가는 이기적 유전자가 분명 존재하죠. 그러나 이기적 유전자만 존재했다면 오히려 인류 전체에 위기가 찾아왔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 유대감을 강렬히 원하는 외로움의 유전자가 함께 있기에 경쟁과 협동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 인류의 존재감을 두텁게 하고 있다 생각됩니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인간 쾌락의 3요소로 우정, 자유, 사색을 이야기했는데요. 자유와 사색이 독립된 개체로서 내 내면을 살펴보는 여유라면 우정은 타인과의 따뜻한 관계죠. 우정에는 기본적으로 이타적인 관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대방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여겨지는 것이 우정의 근간이 되는 공감 소통이라 생각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행복과 관련된 첫 번째 요소가 진실한 우정, 즉 솔직히 내 마음을 터놓고 위로받을 수 있는 타인, 친구가 얼마나 존재하는가입니다. 친구가 없어 외롭다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만날 친구가 없다기보단 나를 위로해 주는 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겠죠. 좋은 관계, 우정을 만드는 일은 생존 이상으로 뇌의 행복감을 위해 우선시해야 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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