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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여의도 140배 개발 최대 국책사업…환경단체 반대로 중단·재개 반복

중앙일보 2016.05.31 03:00 종합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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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전북 김제시의 새만금 도로 건설 현장. 바다를 메워 새만금 일대를 동서로 연결하는 공사에 투입 된 트럭과 굴착기가 작업하고 있다. 남북을 잇는 간선도로는 아직 착공 하지 못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여의도 면적의 140배인 409㎢의 국토(토지 291㎢, 담수호 118㎢)를 새로 만드는 새만금 사업은 식량 자급을 위한 농지를 만들기 위해 시작됐다.

91년 노태우·DJ 합의로 본격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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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새만금개발사업 기공식에 참석한 노태우 당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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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이란 명칭이 정부 문서에 등장한 것은 농림수산부가 1987년 5월 발표한 ‘새만금 사업과 서남해안 간척농지 개발 계획’부터다. 정부는 당시 김제·옥구·부안지구를 통합해 새만금지구라 불렀다. 그해 대선을 앞두고 황인성 당시 농림수산부 장관이 건의한 사업을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채택하면서 새만금 사업이 시작됐다. 노 후보는 그해 12월 10일 군산 유세에서 새만금 사업을 대통령 공약으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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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은 노 후보가 당선되면서 ‘대통령 공약 코드 넘버 20-07-29’로 관리됐다. 지지부진하던 새만금 사업은 91년 7월 청와대에서 열린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당시 신민당 총재의 영수회담에서 김 총재의 건의로 본격화됐다. 사업비 200억원이 확보된 데 이어 그해 11월 28일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서 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새만금 방조제 기공식이 열렸다.

‘새만금’은 호남의 곡창지대 명칭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지명이다. 옛 이름이 금만평야인 만경평야의 갯벌을 새롭게 조성하겠다는 뜻으로 ‘새금만’이라 지었다가 원래 지명과 구별하기 위해 ‘새만금’으로 바꿨다는 게 정설이다. 이 명칭은 87년 11월 열린 관계장관 회의에서 황인성 당시 농림부 장관이 ‘새만금 간척 사업’을 언급하며 처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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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은 91년 방조제 착공 이후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96년 시화호가 ‘죽음의 호수’로 바뀌자 새만금 수질 오염 논쟁으로 번졌다. 환경단체는 사업 백지화를 요구했다. 이에 99년 1월 유종근 당시 전북도지사가 새만금 사업 전면 재검토를 선언하면서 공사가 2년 넘게 중단됐다.

2001년 정부가 순차적 개발 방침을 발표하면서 방조제 물막이 공사를 재개했지만 시민단체 등은 ‘공유수면 매립 면허·사업 시행 인가 처분 취소 소송’ 등을 제기하며 맞섰다. 법정 공방은 2006년 3월 16일 대법원이 정부 손을 들어줄 때까지 4년7개월간 계속됐다.

환경·종교단체 등은 “새만금 사업은 군사정권이 전북 지역 민심을 달래고 재집권하기 위해 급조한 사업”이라며 무효를 주장했다. 전북도와 농업기반공사 등은 “지난 10년간 1조1385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되고 총 공정률이 66%에 달하는 국책 사업을 중단하라는 것은 억지”라며 사업 추진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새만금 방조제는 91년 착공 이후 19년 만인 2010년에야 완공됐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는 2006년 4월에 끝났다. 착공 이후 26년이 지나면서 새만금 사업 비전은 글로벌 복합공간 조성 쪽으로 방향이 또 바뀌었다. 당초 농지 조성을 위한 사업이 동북아 경제특구를 만드는 프로젝트로 변화됐지만 사업은 크게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군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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