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영기의 시시각각] 반기문, 꽃가마 타면 망한다

중앙일보 2016.05.26 19:15 종합 30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전영기
논설위원

엊그제 나는 제주에서 관훈클럽 기자간담회 토론자로 참가해 반기문 총장을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사람들의 관심은 내년 대선에 그가 출마할 것인가, 출마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에 쏠려 있다. 쏠림은 기대다. 기대가 배반당하면 순식간에 버림받는 게 대권 정치의 생리다. 그는 현직 유엔 사무총장다운 절제를 유지하면서 때가 되면 수순에 따라 정치에 참여할 것이란 의욕을 충분히 느끼게 했다. 너무 뺐다면 나약하게 보였을 것이고 너무 나갔다면 비난받았을 것이다. 국내외 지지자와 반대자를 고려한 절묘한 균형감각을 보였다.

내년에 그의 만 나이는 73세. ‘이승만·김대중 대통령이 선출될 때가 각각 73세, 72세다. 역대 최고령 대선 도전자가 될 텐데 괜찮겠느냐’는 질문에 반 총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당선한 1948년과 지금의 자연수명의 차이는 15~20년이다.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출마자(힐러리·샌더스 지칭)들도 70세, 76세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파서 결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더 이상 무슨 해석이 필요하겠는가. 그는 “유엔 여권을 반납하고 내년 1월 1일 한국 시민으로 돌아오게 되면 (대선 참여에 대한) 결심을 밝히겠다”고 했다. 유엔 직원은 소속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하면 안 된다. 반 총장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법으로 대선 출마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출마는 선언하면 되지만 집권은 전략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세력과 자금과 메시지가 필수 요소다.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끝까지 전진하겠다는 ‘집권의 이유’를 스스로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권력의지를 구성한다. 권력의지는 ‘내질러 보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권세욕, 출세욕과 차원이 다르다. 반기문의 권력의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과의 대면이라는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또 물었다. ‘박 대통령이 내년 일을 함께 도모해 보자(대선 지원)는 취지의 신호를 보낸 적이 있나’ ‘반 총장은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고 친박인 홍문종 의원이 주장하고 다닌다. 어떻게 생각하나.’ 반기문은 “박 대통령의 언질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일은 결코 없다” “나는 홍 의원을 알긴 하지만 지난 10년간 전화 한 통화 안 했다”고 답했다.

그동안 정치권에 그럴듯하게 유포됐던 박 대통령의 반기문 지원설은 낭설이라는 주장이었다. 친박의 반기문 추대설도 일방적인 구애라는 뉘앙스였다. 아닌 게 아니라 박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들일수록 “박 대통령은 스스로 권력행사와 운신의 폭을 좁히는 후계자 지명 같은 행동을 할 리가 없다”고 말한다. 반 총장은 박 대통령의 무관심에 조바심을 내고 있을지 모른다. 제주 발언은 그 조바심의 표출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박 대통령과 밀당에서 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반기문이 확보하고 있는 정치자산은 김종필보다 대권 고지에 더 근접해 있다고 믿는 충청도 유권자의 단결력뿐이다. 반 총장은 박 대통령의 일방성과 친박의 파벌성이 지배하는 지금 수준의 새누리당에 들어갔다간 한 방에 갈 수 있다. 대중의 지지는 떨어지고 빠져 나올 수 없는 정쟁의 늪에서 허우적댈 것이다. 그가 새누리당에 들어간다면 리모델링 이상의 재창당을 해치울 수 있어야 한다. 친박의 꽃가마에 올라타면 망하기 십상이다. 반대로 친박의 분열적·패권적 문화와 전쟁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정치의 실력을 길러야 한다. 반기문에게 그런 창의와 용기가 있을까.

제주 간담회를 마치면서 나는 반 총장이 ‘세계 속에 우뚝 선 한국’만 얘기하고 있다는 허전함을 느꼈다. 조국을 10년간 떠나 있어서 그런지 ‘저성장과 불평등에 신음하는 한국’에 대해선 잘 모르거나 관점이 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유권자는 반기문이 왜 대통령에 도전하려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내년 초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것에서부터 반기문의 권력의지는 하나씩 증명돼야 할 것이다. <제주에서>

전영기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