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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피해 특별법 통과됐지만…"반쪽짜리"

중앙일보 2016.05.2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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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2세 피해자인 고 김형률의 생전 모습. [사진 합천평화의집]

“우리 아들이 생전에 못한 것을 이루기 위해 저라도 죽을 때까지 노력할 겁니다.”

26일 전화기 너머로 띄엄띄엄 들리는 김봉대(80·부산 동구 수정동)씨의 목소리에는 의지가 묻어났다. 김씨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아들 김형률(사진)씨에 이어 ‘원폭 2세 환우 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다.

1970년 부산 동구 수정동에서 태어난 형률씨는 생후 20일부터 몸이 아팠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병마와의 싸움은 서른 살이 되도록 계속됐다. 그러다 우연히 2002년 치료받던 병원에서 원폭 피해에 관한 논문을 보고는 자신을 괴롭히던 병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의 병명은 ‘선천성 면역글로불린 결핍증’. 백혈구 이상으로 면역체계가 약해져 조그만 감염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부르는 희소 난치병이다.

원인은 원자폭탄이었다. 김씨의 어머니가 6살 되던 해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겪었는데, 그 후유증이 김씨에게 대물림된 때문이었다.

병명을 알고난 후 김씨는 37㎏의 가냘픈 몸으로 동분서주했다. 자신과 같은 원폭 피해자를 위한 인권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2002년 3월 김씨는 대구에서 원폭 2세 문제해결과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원폭 후유증을 앓는 ‘원폭 2세 환우’임을 고백했다. 다음해에는 한국 원폭2세환우회와 한국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결성을 주도했다. 이 같은 노력은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처음으로 원폭 2세의 건강실태를 조사하는 계기가 됐다.

김씨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원폭 2세에 대한 생계보장 등 지원 내용을 담은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제정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5년 5월29일 3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면서 생전에 그토록 바랐던 특별법이 통과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17대 국회에 상정됐던 이 특별법은 18대 국회에서 폐기됐다가 지난 19일 19대 국회에서 16년 만에 통과됐다. 특별법 통과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71년 만이다.

특별법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 지원위원회 설치, 원폭 1세 실태조사, 건강검진 등 의료지원, 위령탑 조성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원폭 피해 2세에 대한 실태조사와 지원 같은 내용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아버지 김씨는 “아들이 원폭 피해자들을 도와주기 위해 죽기 전까지 노력했는데, 특별법은 원폭 2세 피해자들의 생계보장 등이 빠진 껍데기 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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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2세 피해자인 고 김형률의 생전 모습. [사진 합천평화의집]

김씨는 27일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받기 위해 일본으로 넘어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28일이 아들이 숨진 지 11년 되는 날이어서다. 김씨는 이날 오전 11시 부산민주공원 소극장에서 한국 원폭 2세 피해자 김형률추모사업회가 여는 11주기 추모제에 원폭 피해 유족대표로 참석해 아들의 뜻을 기린다.
정부는 원폭 2세 피해자를 76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나 3세 피해자는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김씨는 “20대 국회에서 특별법의 부족한 내용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지혜 원폭2세환우쉼터 합천평화의집 사업팀장은 “22개 시민사회단체가 원폭 피해자와 자녀를 위한 특별법 추진 연대회의를 만들어 이번 특별법 제정에 힘썼다”며 “하지만 특별법에서 빠진 원폭 2세의 실태조사 등을 넣기 위해 법 개정 작업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강승우 기자 kang.seu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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