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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스 정치언어 번역기'로 돌려본 반기문의 25일 발언

중앙일보 2016.05.2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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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고 26일 아침부터 온 언론이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런데 반 총장이 25일 저녁 때 한 말이 정확히 뭔지 찾아보셨나요? 바로 이겁니다.
 

(유엔에서 퇴임한 후)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해 결심하겠다.”


아주 모호하죠? ‘이게 도대체 어디를 봐서 대선 출마 시사라는 건가’ 싶으시죠?

사실 외교관들의 말 자체가 ‘전략적 모호성’이 강합니다. 국익이 걸린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늘 여지를 남겨두는 언어습관이 몸에 밴 것이죠.

그런데 그런 외교관들 중에서도 반 총장의 ‘말솜씨’는 특히 모호하기로 정평이 났습니다. 아무리 민감한 질문을, 아무리 집요하게 해도 늘 즉답을 피한 채 요리조리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해외 언론들도 인용하는 반 총장의 공식 별명(?)이 ‘기름장어(Slippery Eel)’일 정도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디지털 중앙일보, 조인스가 제공하는 ‘조인스 정치언어 해석기’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들이 이 해석기를 돌려, 알듯 모를 듯한 반 총장의 25일 주요 발언 속에 숨어있는 속뜻을 깨알같이 풀어드리겠습니다.
 

내년 1월 1일이면 한국 사람이 된다. 그때 한국 시민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심해 결심하겠다”

→퇴임 이후 ‘한국에서 정치 활동’을 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최초의 발언. 지난 18일까지만 해도 반 총장은 “사무총장을 그만두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에 대해선 가족 간에 얘기들이 좀 다르다”(특파원 간담회)고만 했었음. 일주일 사이에 최소한 ‘가족회의’는 끝내신 듯.
 

대통령을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지만, 자생적으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한다”

→국내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흡족하게 생각해왔다는 점에 방점을 찍어서 들어야 하는 발언. 실제로 반 총장이 매일 새벽 4시30분에 기상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CNN이나 AP통신이 아닌 한국의 언론보도를 챙겨보는 일이라고 함.
 

미국 대선 후보들도 70세·76세다. 한국 같은 선진사회에서는 체력 같은 것은 별문제가 안 된다”

→‘기름 장어’ 반 총장이 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속내를 많이 드러낸 발언. 이 발언을 나온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의 한 참석자는 “반 총장이 답변 준비를 많이 해온 것 같았다”고 전했음. 그렇다면 ‘72세 고령 대통령 후보’는 곤란하다는 식의 공격에도 이미 대비하고 있다는 뜻.
 

박근혜 대통령이 무슨 언질을 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과 내가) 자주 만났다는데 이명박 대통령 때도 그랬다”

→일단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개입 논란을 진화한 발언. 하지만 따지고 보면 ‘특정 정치계파(친박근혜계)만의 후보로 인식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측면도 분명히 있음. 결국 여권 내 다른 계파와 야당들을 향해서도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한 장면.
 

남북으로 분단된 것도 큰 문제인데 내부에서도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고, 해외에서 보도되는 걸 보며 약간 창피하게 느낄 때가 많다”

→여야불문, 기존 정치권 전체를 겨냥한 ‘싸잡아 비판’ 카드. ‘후발 주자’‘제3후보’가 점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가겠다는 뜻으로도 들림. 지난해 방한 때 “국내 정치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으니…”라며 국내 정치에 대해 거리두기했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
 

남북 간 대화채널을 유지해온 것은 내가 유일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계속 노력하겠다.”

→“내가 유일한 게 아닌가”라는 부분 앞에 “(차기 대선주자들 중에서)”를 붙여야 할 듯한 발언. 차기 후보군 중에서 자신의 특장점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고 있고, 그것을 어필하기까지 했기 때문임. 반 총장의 머릿속에 있는 컨셉트는 ‘통일 대통령’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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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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