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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명 불러 3시간…하루 22건 미국 청문회 피곤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2016.05.26 02:10 종합 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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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 의사당에서 24일(현지 시간) 열린 미 국세청(IRS)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건 관련 청문회에서 제이슨 차페츠(공화·유타주) 하원의원이 청문회 시작 전 보좌관과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미 청문회는 정치 공세보다 현안 해결에 중점을 두는 실무형 문화가 정착돼 있다. [워싱턴 AP=뉴시스]


상원 6건, 하원 16건. 미국 연방 의회에서 24일(현지시간) 하루 동안 열린 청문회(Hearing) 건수다. 휴가철·연말연시 등 휴회 기간을 제외하면 상임위원회 혹은 소위원회가 주관하는 청문회로 시작해 청문회로 끝나는 게 미 의회다. 하지만 의회도 행정부도 피곤을 호소하지 않는다. 효율성·전문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장?차관·CEO 대신 실무자가 증인
질의는 5분, 주제 벗어난 발언 제한
의원이 증언도…고함·삿대질 없어
‘워싱턴 지역 지하철 안전대책’ 등
‘현안 청취’ 한국과 달리 주제 구체적


이날 오전 10시 상원 덕센빌딩 419호.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였던 마코 루비오 등 외교위 소속 의원 7~8명이 모인 가운데 ‘미국-인도 간 공생·발전을 위한 방안 마련 청문회’가 열렸다.

증인은 국무부의 니샤 데사이 비스왈 남·중앙아시아 담당 차관보 1명. 청중석에 자리 잡은 관료도 국무부 담당 과장 1명뿐이었다. 위원회 청문회는 중대 사안이 아닌 한 장·차관급이 등장하지 않는 게 관례다. 실·국장급 담당자 중심이다. 소위원회는 더 직급이 내려간다. 정부 고위 인사를 불러 다그치는 자리가 아니라 ‘충분히, 깊게’ 듣기 위한 기회로 여기기 때문이다. 기업도 특수한 경우를 빼곤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실무 책임자급이 나온다.

이날 청문회는 다음 달 7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미국 방문 시 어떤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게 미국에 도움이 될지 살펴보는 자리였다. 의원들은 핵심적 질문만 던지고 비스왈 차관보는 핵심적 답변만 했다. 증언 요지를 서면으로 사전 제출하고 모두 진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중복 질문을 피했기 때문이다.

청문회의 결론은 “인도 총리 방미 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해양 작전 등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자”였다. 1시간30여 분 만에 진술을 마친 비스왈 차관보가 자리를 뜬 뒤 30분가량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사다난드 듀미 연구원, 미 외교협회(CFR)의 알리사 아이어스 등 민간 전문가의 의견 진술이 이어졌다.

미 의회에선 ‘소관 현안 청취’란 모호한 주제로 청문회가 열리는 경우도 거의 없다. 갑과 을이 존재하지 않고 주제 또한 세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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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10시 하원 레이번 빌딩 2167호에서 열린 교통·인프라 위원회 산하 ‘고속도로·교통체계 소위원회’의 ‘워싱턴 지역 지하철 안전과 신뢰도 개선 마련’ 청문회. 청문회 1부의 증인으로 등장한 3명은 제리 코널리(버지니아주) 등 워싱턴 인근 지역구의 하원의원들이었다.

의원석에 앉아 있어야 할 의원들이 증인석에 앉은 것이다. 이들은 잦은 고장으로 말썽인 워싱턴 지하철의 고충과 해결 방안을 전문용어를 섞어가며 설명했다. 필요하면 의원이 스스로 증인이 되기도 하는 청문회 문화가 정착되다 보니 고성이 오가거나 삿대질을 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청문회 시간도 상당히 짧다. 하원과 대부분의 상원 위원회의 경우 규칙 6조와 규칙 26조를 통해 증인에 대한 1회 질의시간을 5분 이내로 제한한다. 하원 군사위나 정부개혁위 등은 “청문회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질문만 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상원은 오전 11시 전 또는 오전 11시~오후 2시에 회의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거의 모든 정책 청문회는 길어야 3시간이다. 24일 열린 상원 외교위 청문회는 2시간30분, 하원 소위 청문회는 2시간15분 만에 끝났다.

그렇다고 청문회가 정부 사정을 봐주면서 이뤄지는 건 아니다. 청문회 정족수는 하원이 2명, 상원이 1명이다. 따라서 소위 위원장 1명이 정부 관계자 1명을 상대로 청문회를 여는 경우도 다반사다.

지난해 7월 23일 하원 소기업·창업위 산하 ‘건강과 기술 소위’가 주관한 ‘애플리케이션 기술이 소기업에 끼치는 혜택에 대한 청문회’도 의장인 아모아 레이드웨건 등 2명이 출석했다. 앱 개발 창업자들을 위해 정부가 뭘 도와줄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이 청문회는 42분 만에 끝났지만 비효율적 청문회라는 비난 여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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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청문회는 ▶일반적 형태인 입법청문회 ▶행정부의 정책 집행을 감독하는 감독청문회 ▶공무원의 부패 혐의나 입법적 개선이 필요할 때 열리는 조사청문회 ▶고위직 관료 임명 시의 인준청문회 네 종류가 있다. 하지만 국정감사는 없다.

미 의회의 한 의원 보좌관은 “미국에선 ‘365일 청문회’가 열리지만 행정부 마비나 입법부 비대화라는 비판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는 1964년 의회재조직법이 제정돼 상시 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50년 넘게 꾸준히 제도 보완을 해 왔고, 입법부와 행정부가 상호 존중의 토대 위에 견제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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