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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중국 사막에 840만 그루 ‘녹색장성’…김종우, 몽골 사막화 막는 숲마을 6개 조성

권병현, 중국 사막에 840만 그루 ‘녹색장성’…김종우, 몽골 사막화 막는 숲마을 6개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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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병현 미래숲 대표
주중대사 때 “숲 만들면 황사 줄겠지” 생각

[연중기획] 매력시민 세상을 바꾸는 컬처디자이너

매달 청년봉사단 100명 데려가 나무 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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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미래숲 대표


“병풍 치듯 중국의 사막에 숲을 만든다면 황사도 줄지 않을까요?”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무악동 ‘미래숲’ 사무실에서 만난 권병현(78) 대표의 말이다. 10년째 중국 구부치 사막에 숲을 조성하고 있는 권 대표는 매달 100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아 사막에 나무를 심는다. 그가 등지고 앉은 벽 한편에는 끝없는 황토색 모래밭 위에 초록 잎사귀가 달린 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액자들이 빼곡했다. 2006년부터 시작된 그의 ‘사막의 숲’ 프로젝트는 모래바람만 거세던 땅 위에 나무 840만 그루로 16㎞ 길이의 ‘녹색장성’을 세웠다.

처음 그가 ‘녹색장성’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은 주중 한국대사로 있던 1998년이다. “1992년 한·중 수교 때도 깊이 참여했던 터라 한국과 중국의 끊어진 100년을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중국 황사 때문에 서울 공기가 탁하다’는 얘기였죠. 사막화는 비단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걸 이때 깨달았습니다.”

곧바로 그는 중국 정부에 ‘사막에 나무를 심겠다’고 제안했다. 산림녹화 경험이 풍부한 한국의 기술력과 자금으로 협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자금 문제가 속 시원히 풀리지 않았고 중국 정부 역시 “13억 인구가 먹고사는 문제가 더 시급하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그는 나무 심기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000년 퇴임했다.

“하지만 나 혼자서라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미래숲’을 세웠고 함께 행동할 청년들을 모집했어요.” 2006년부터는 구부치 사막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한국의 황사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답사를 한 후 사막이 위치한 다라터치시와 협정을 맺었다. 16㎞의 녹색장성 프로젝트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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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대표는 “사막에 나무를 심는 일은 일반적인 땅에 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구부치 사막 중에서도 그나마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구역을 찾아내야 해요. 큰 나무의 가지들을 쳐내고 엮어 사각형 다발을 만든 후 사막 땅에 고정시킵니다. 모래가 너무 많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키는 것이지요. 그 안에 땅을 1m 정도 판 후 묘목을 심고 물 한 동이를 부어요. 묘목이 물 한 동이를 먹고 악전고투하면서 뿌리를 내려야 사는 겁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사막 생태계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 그는 절로 힘이 난다고 했다. “나뭇잎이 떨어져 썩으니까 잃었던 유기질이 살아나죠. 미생물이 생기고, 그 미생물을 먹는 벌레가 생기고, 그걸 잡는 새가 찾아오는 식으로 자연의 순환이 다시 시작됐어요. 그걸 보는 순간 힘든 일은 다 잊게 됩니다.”

권 대표는 “사막이 힘드니까 한 번 왔던 봉사자들이 다시 안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녹색장성이 선 곳에서만 모래바람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면 또다시 온다”며 “자기 손으로 기적을 만들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 김종우 푸른아시아 대외협력국장
“말보다 실천” 목사서 환경운동가로 변신
기업·교회와 함께 유실수 심어 자립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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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푸른아시아 대외협력국장


환경운동단체인 푸른아시아의 김종우(45) 대외협력국장도 사막에 숲 만드는 일을 한다. 나아가 유실수를 심고 영농단지를 조성해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는 마을로 발전시킨다. 푸른아시아의 주요 활동지역은 몽골이다. 김 국장은 “내륙 분지인 몽골은 선진국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대기층에 쌓이면서 지난 60여 년간 평균 기온이 2.1도 올랐다”고 말했다. 강 887개, 호수 1166곳이 사라지며 수자원의 3분의 1이 감소했다. 사막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인구의 약 10%가 살던 곳에서 쫓겨나 ‘환경난민’이 됐다.

푸른아시아는 이런 곳에 숲을 조성해 마을을 만든다. 김 국장은 “환경보전과 경제발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있다”고 말했다. 푸른 아시아는 지금까지 바양노르 등 몽골의 6개 지역에서 이런 자립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그는 2010년 환경운동에 투신하기 전까지 강원도의 한 시골 교회 목사였다. 부산의 큰 교회 담임목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연스럽게 신학대학에 진학했다.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서 청년부 목사를 거쳐 36세 되던 해에 처음 담임목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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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안정된 삶이었지만 행복을 느낄 수 없었죠.” 6년 전 그가 교회를 떠난 이유다. 사실 처음 신학대학에 간 것도 부모님 뜻이 컸다. “어릴 때는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었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정의의 변호사요.”

고3 때는 진로 갈등으로 가출도 했지만 부모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1년만 다녀보자”며 신학대학에 진학했다. 1년은 2년, 3년이 됐고 끝내 목사가 됐다. 그때의 다짐은 “가난한 자의 편에 선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담임목사를 맡아 처음 찾아간 곳도 강원도의 조그만 시골 마을이었다. 하지만 목회 활동을 하면서도 그의 내면에서는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목사는 말로써 교인들을 구원으로 이끕니다. 그런데 말만으론 세상이 변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것은 실천과 행동이라고 느꼈죠.” 이것이 그가 교회를 떠난 이유였다. 그는 “작은 것부터라도 몸으로 부딪쳐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고민이 가장 커졌을 때 푸른아시아를 만났다. “기후변화는 20, 30년 안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겁니다. 당장은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지금 나서지 않으면 인간이 더 이상 지구에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지난 6년간 그는 푸른아시아의 뜻을 외부에 알리고 동참할 이들을 모으는 일을 해 왔다. 그사이 삼성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 파트너로 참여하며 사업 규모도 커졌고 대형 교회들과도 협력했다. “목회 활동을 하듯 동지들을 모았죠.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참여하는 기업·기관 등에도 이득이 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후원만 강요한 게 아니라 ‘윈윈’이 되는 사업 포인트를 찾아냈다.

“예를 들어 교회에는 봉사 인력과 자금이 많습니다. 이런 자원을 활용해 숲과 마을을 조성하고 그 이후 교회는 선교활동을 하게 했죠.” 현재 KT&G와 함께 몽골에 짓고 있는 임농업 교육센터도 대표적 예다. 교육사업을 통해 사회공헌을 하고 싶어 한 KT&G를 찾아가 임농업 교육을 제안했다. 김 국장은 “기업은 당초 뜻대로 교육사업을 하고 우리는 영농단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교육 인프라를 갖출 수 있어 윈윈”이라고 말했다.

글=윤석만·김나한 기자, 사진=전민규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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