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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아프리카 대륙에 한국판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중앙일보 2016.05.26 00:27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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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에티오피아(25~28일)·우간다(28~30일)·케냐(30일~6월 1일) 등 아프리카 3개국 순방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이들 나라에서 개발과 문화외교를 결합한 새로운 개발협력 프로젝트인 ‘코리아 에이드(Korea Aid)’ 사업 출범행사에 각각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형 공적원조(ODA)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는 셈이다. 한국도 이젠 소프트파워를 바탕으로 한 본격적인 개발협력시대를 아프리카 대륙에서 연다.

현지서 가장 절실한 것은 보건의료위생 상황개선
스스로 이를 진행할 보건의료인력 양성 지원하자


아프리카는 남한보다 301배의 땅덩이(3022만㎢)에 20배가 넘는 11억 인구의 거대 대륙이다. 중국이나 인도에 필적하는 인구다. 그런데 이 대륙에 있는 54개국 국내총생산(GDP)의 합계는 2013년 기준 2조3900억 달러 정도로 한국의 2배가 채 안 된다. 이에 따라 1인당 GDP는 2320달러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이다. 상위 10%의 인구가 전체 GDP의 44.2%를 차지하고 하루 1달러 미만의 절대빈곤선 아래에서 허덕이는 사람이 전체의 36.2%에 이르는 등 빈부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영국 환경운동가로 국제환경개발연구소장을 지낸 리처드 샌드부르크는 『아프리카 경제침체의 정치학』이란 저서에서 아프리카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자연환경도 외부 영향도 아닌 사람 탓이라고 지적했다. 시도 때도 없이 심각한 인권침해를 저지르는 부패한 독재 정부, 관료들이 장악한 경제, 엉망인 교육시스템, 부족과 종족 갈등 등 인적 요인이 엄청난 자원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를 가난하고 병든 지역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의 상당 국가는 빈곤, 영양실조, 오염된 식수, 만연하는 전염병과 풍토병 등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아프리카에 한국이 경쟁력 있는 보건의료 분야의 ODA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치면 어떨까 싶다. 단순히 의료인력이 현지 봉사활동을 하거나 크고 작은 진료소를 지어주고 지속적으로 돕는 방식의 협력은 지금도 민간에서 상당 부분 하고 있다. 정부가 나선다면 의료 분야에서도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는 무게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보건의료와 위생 담당 인력을 양성하는 보건의료 교육시스템을 이 대륙에 전파하는 방식이다. 이는 과거 우리가 받았던 공적원조를 되돌려 주는 효과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55~61년 이뤄졌던 미네소타 프로젝트다. 미국 국무부의 의뢰를 받은 미네소타대가 한국의 서울대 의대와 함께 시행했던 보건의료 지식 전수 교육 프로젝트다. 미국이 수행했던 교육 원조 중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6·25전쟁으로 교육과 연구에 어려움을 겪던 한국의 대학 중 서울대 의대의 교직원에게 수준 높은 의학교육을 하고 최신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며 기자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서울대 의대 교직원 77명이 짧게는 4개월, 길게는 4년간 미네소타대에서 연수를 했다. 미네소타대 교수 114명이 서울대에 자문관으로 파견돼 가르쳤다. 이 기간 동안 미국에 갔던 한국인 77명 가운데 개인 사정이 있었던 4명을 제외한 73명이 귀국해 후진을 양성했다. 같은 시기에 미국에 파견돼 교육을 받았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인력 대부분이 현지에 정착한 것과 대조적이다.

귀국한 이들은 한국에 세미나와 심포지엄 등 늘 공부하는 의학 교육시스템을 정착시켰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은 임상 의료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보건의료 교육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의대·치대·간호대·약대·보건대학원을 통째로 수출해 달라는 중동 국가도 있을 정도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은 한국의 자동화되고 디지털화된 병원 운영시스템을 구입해 가기도 했다.

이런 보건의료산업은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받쳐주는 든든한 자산이다. 이제 이를 본격적으로 ODA 사업에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각국에서 유학생을 받든지, 현지에 보건의료 인력 양성 교육기관을 세우고 돕는 21세기 소프트파워 ODA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순방길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어 과정을 마치고 한국에서 공부할 현지 학생을 비행기에 태우고 함께 귀국하는 ‘소프트파워 외교 드라마’를 보고 싶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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