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반가사유상이 건네는 말

중앙일보 2016.05.26 00:21 종합 31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박정호
논설위원

‘사유는 내면의 고통을 치유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라는 문구가 관객을 맞는다. 2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한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 만남’전이다. 10m 거리를 두고 우리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 국보 주구지(中宮寺) 목조반가사유상이 마주보고 있다. 어둑어둑한 전시장, 희미한 조명만이 두 작품을 비추고 있다. 두 눈을 지긋이 감은 불상의 미소에 마음이 평안해진다.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해방되는 듯하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말 그대로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의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로댕의 걸작 ‘생각하는 사람’의 선배뻘이다. 두 작품 모두 양국 불교 조각의 정수리를 보여준다. 고대 한·일 문화교류를 상징하는 ‘국가대표’ 문화재다. 지난해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두 불상은 보살(菩薩)상이다. 보살은 깨달음을 얻으려고, 즉 부처가 되려고 수행하는 중생을 말한다. 남녀 경계를 뛰어넘는다. 불상 자체도 남성인지, 여성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인도 간다라 미술에서 보살상은 남성이었다. 수염이 나고 근육도 발달했다. 불교가 중국에 건너오면서 음양사상과 만나 부처는 남성으로, 보살은 중성적으로 표현됐고, 그 양식이 한국에서 완성됐다. 반가상은 소녀상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절집에서 보살은 흔히 여성 불자를 가리킨다. 남성은 ‘거사(居士)’ ‘처사(處士)’로 불린다. 보살이 왜 여성을 뜻하게 됐을까. 정설은 없지만 우리 역사와 관련이 있다. 조계종 포교연구실장 원철 스님은 “신라·고려시대 보살은 남녀를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숭유억불책이 시행된 조선시대에 주로 여성들이 절을 찾아온 까닭에 범위가 좁아진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처럼 챙겨 주는 보살의 자비심이 도드라진 반면 남녀의 역할이 굳어졌다는 점에서 아쉬움도 남는다.

반가사유상을 보면서 되레 마음이 아렸다. 최근 우리를 극한 고통에 빠뜨린 여성혐오 논란이 겹쳐졌다. 남과 여가 원수처럼 다투는 상황, 그 원인을 제공한 남성들의 근본적인 사유가 요청된다. 성찰 없는 행동은 폭력이 될 수 있다. 1400여 년 전의 두 불상이 지금 우리에게 건네는 말이다. 깨달음은 거창하지 않다. 상대를 받아들이는 자세다. 조용필의 ‘여와 남’이 생각난다. ‘너가 있음에 내가 있고 내가 있음에 너가 있다.’ 두 불상은 미래를 관장하는 미륵불(彌勒佛), 미래는 저 멀리가 아닌 바로 당신 곁에 있다.

박정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