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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철옹성 일본도 뚫은 K게임…중소형 게임사가 안 보인다

중앙일보 2016.05.26 00:01 경제 2면 지면보기

반가운 소식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웃을 수 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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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균
경제부문 기자

한국 게임(K게임)이 철옹성 일본마저 뚫었다는 본지 보도(23일자 B1면)가 나간 뒤 국내 한 중소 게임사 관계자는 이렇게 속사정을 털어놨다.

셧다운 등 규제, 내수기반 흔들고
정부·투자자들, 대형사에만 관심
지속 성장 위해 강소기업 키워야


‘반가운 소식’부터 보자. 국내 ‘빅3’ 게임사 넥슨·넷마블게임즈·엔씨소프트는 올해 1분기 일본에서만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언뜻 대수롭지 않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일본 게임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연간 15조원 규모인 일본 게임시장은 60% 이상을 콘솔 게임(TV로 즐기는 비디오 게임)이 장악하고 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4’ 같은 게임기가 생활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이들 게임기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게임 소프트웨어(SW)는 당연히 일본산이다.

반면 K게임의 주력 상품인 온라인 게임 시장규모는 연간 2조원에 불과하다. 콘솔 게임 천국, 온라인 게임 불모지에서 거둔 의미 있는 성과라는 얘기다. 모바일 게임도 중국 텐센트나 핀란드 슈퍼셀 같은 글로벌 게임사가 꽉 잡은 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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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성적표를 들고도 웃을 수 만은 없는 이유는 뭘까. 우선 국내 빅3와 컴투스 정도를 제외하면 중소 게임사 가운데 일본에서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둔 사례가 거의 없다. 대형 게임사는 여러 게임에 대규모 인력과 자본을 투입할 수 있지만, 중소 게임사는 제한된 여건에서 하나의 게임에 ‘올인’해야 한다. 실패할 경우 회사의 존폐로 연결될 수 있어 위험을 감수하고 수출 전선에 뛰어들 엄두를 못 내기 때문이다.

한 중소 게임사 관계자는 “비슷한 수준의 게임이면 결국 마케팅·광고에서 성패가 판가름 나는데 중소게임사의 역량으로는 힘에 부친다”며 “중소 게임업체 가운데 성공 신화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라고 토로했다.

실제 국내 게임업계는 업계 빅3가 상위 게임사 20곳 매출의 60%를 차지할 만큼 ‘허리’가 가늘다. 셧다운제 같은 규제가 내수 기반을 흔들면서 다양성·창의성이 위축돼 생긴 현상이다. 허리가 약한 산업은 소비 트렌드 전환기나 위기 발생 시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투자자들의 성향도 강소 게임기업의 등장을 막는다. 검증된 대형 회사에만 투자가 집중되면서 경쟁력 있는 중소 게임사라도 자금난을 벗어나기 어렵다. 국내 한 게임 스타트업 대표는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 투자 상담을 받으러 가서 콘솔 게임을 만들 계획을 얘기했는데 담당자가 콘솔 게임이 뭔지 잘 모르더라”고 털어놨다. 콘솔 게임은 구매자가 계속 SW를 추가 구입해야 해서 온라인이나 모바일 게임에 비해 최소 수익이 보장되고 일본 진출에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시도해야 할 분야”라고 입을 모으지만 이처럼 현실에선 투자유치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K게임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정부가 ‘강소기업’ 육성에 힘써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대형사에 편중됐던 투자 기회를 중소 게임사에도 고루 주고, 투자 분야도 다양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준희 한국게임개발자협회장은 “대형사가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는 이면에서 중소 게임사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정부가 정책 안목을 키워야 한다”며 “게임산업에서 ‘벤처 신화’가 탄생하기 어려워지면 경력자들은 이탈하고 신규 인력 유입도 지지부진해져 결국 게임업계 전체의 위기로 번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균 경제부문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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