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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고수들 꿈의 놀이터’ 삼성 SW멤버십 없앤다

중앙일보 2016.05.23 00:01 경제 2면 지면보기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SW) 인력 육성 정책이 바뀐다. 삼성전자는 대학생 SW 인재를 발굴·육성하기 위해 지난 1991년 도입한 ‘SW멤버십’과 관련해 올 하반기엔 대상자를 뽑지 않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매년 상·하반기에 대학생을 모집했지만 25년 만에 채용을 중단한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멤버십 제도를 축소하기 시작한 건 확실하다”며 “장기적으론 폐지를 고려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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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멤버십은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상징적인 인재 육성 제도다. 전국 단위로 인재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마음껏 프로그래밍만 할 수 있게 만든 최초의 장(場)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SW 인재를 확보하라”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지시로 시작했다. 91년 서울 강남에 사무실을 열었고, 면접을 통해 뽑은 대학생에게 숙식과 개인 좌석, 최신 컴퓨터와 인터넷 환경을 제공했다.

당시로선 대학원 연구실에서나 쓸 수 있던 인터넷이 제공된다는 소식에 전국의 ‘컴퓨터 고수’들이 모여들었다. 유니코사(전국대학 컴퓨터서클연합) 회장 출신으로 설립 당시 운영진을 맡았던 배인식 전 그래텍 대표는 “인터넷은 물론 개인용 컴퓨터(PC)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던 시대에 ‘놀이터’가 생기니 전국의 괴짜 프로그래머들이 모여들었다”며 “명문 대학 출신도 아니고, 학점도 낮은 학생들을 SW능력 하나로 찾아냈다”고 말했다. 매년 2차례, 100~900명의 대학생을 선발해 지금까지 3500여 명의 수료자를 배출했다.

고수들이 모여 밤새 컴퓨터와 놀다 보니 이곳 출신들이 IT업계를 주름잡게 됐다. 크로스파이어 같은 게임으로 4조원 대 부자가 된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회장, 국내 최초로 윈도 통신 프로그램을 내놓은 지란지교소프트의 오치영 대표, ‘국민 게임’으로 불린 포트리스를 내놓은 CCR의 윤석호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스타트업에서도 멤버십 출신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진동으로 손가락 통화를 할 수 있는 시계줄을 만드는 ‘이놈들 연구소’의 최현철 대표, 가상현실(VR) 콘텐트를 제작하는 리얼리티리플렉션의 손우람 대표 등이다. 업계가 SW멤버십을 두고 “벤처 창업가의 산실”이라 일컫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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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십 채용 중단은 삼성의 SW 인력 육성정책이 ‘키우는 시스템’에서 ‘뽑는 시스템’으로 바뀌는 신호탄이란 게 외부의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국내 17개 대학과 손잡고 실시하던 맞춤형 인재육성 프로그램 STP(Samsung Talent Program·삼성 탤런트 프로그램)도 올해부터 폐지했다. 우수 3학년 공대생에 장학금을 주고 삼성에서 요구하는 실무를 가르친 뒤 인턴 채용에서 우대하는 제도다.

삼성 측은“대신 지난해 시작한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진대회와 주니어 SW 창작대회 등을 통해 SW 저변 확대에 노력할 것”이란 입장이다. 인재를 뽑아 몇 년을 두고 키우는 과정은 없어지겠지만, 전국 인재들이 SW 실력을 경합하는 장은 계속 제공하겠단 거다.

삼성 출신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가만히 있어도 최고 수준의 SW 인재들이 입사하겠다고 줄을 서는데 오랜 기간 비용을 들여 SW 인력을 육성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게 삼성의 계산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삼성 SW멤버십이나 STP 제도는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겐 많은 자극과 동기를 제공했던 상징적인 제도였다”며 “단기적인 비용을 따져 폐지했다면 대기업의 역할을 소홀히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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