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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일상적 폭력에 공감…추모로 집단적 분노 표출

중앙일보 2016.05.21 01:37 종합 4면 지면보기
지난 17일 오전 서울 강남역 인근 한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추모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추모 공간으로 자리 잡은 강남역 10번 출구 외에 부산의 한 백화점 앞에도 추모 쪽지 수백 장이 붙었다. 대구시민들도 중앙로역에 메시지를 남기는 등 전국으로 추모 열기가 번지고 있다. 20일 서울 신촌의 한 백화점 앞에선 ‘여성 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 토론회’가 열렸다.

“사회적 약자인 젊은 여성들 피해
개인 아닌 사회 구조적 원인 규명
법 개정해 혐오범죄 가중 처벌을”
정부, 26일 종합안전대책 내기로

추모 물결의 동력은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슬픔과 분노다. 20일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는 “같은 20대 여성으로서 남 일 같지 않다” “여자니까 조심하라는 말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 등의 포스트잇 수백 장이 붙어 있었다. 페이스북에는 ‘강남역 10번 출구’라는 페이지도 생겼다. ‘여성 혐오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페이지’라고 소개돼 있는 이 계정엔 ‘좋아요’ 수만 3600개가 넘는다.

경찰은 ‘여성 혐오 범죄’라는 틀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범행 동기를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김씨가 ‘여성들에게 무시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은 맞지만 2008년부터 ‘편집 조현병(일명 정신분열증)’으로 불리는 정신병을 오래 앓아 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혐오 범죄로 섣불리 단정 짓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온·오프라인에서는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망한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인 젊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변을 당했다는 인식이다. 강남역 추모 현장을 찾은 서인영(30)씨는 “여성들은 아무리 피곤해도 변을 당할까 봐 택시에서 졸지 않고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욕하는 아저씨들을 만나도 대거리할 수 없다”며 “한국에서 여성의 공포는 일상적인 것이며 이번 사건은 그 공포가 현실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여성 혐오 범죄는 과거에도 종종 발생했다. 지난해 9월 연쇄살인 혐의로 구속된 김일곤(49)은 살해 이유로 “여자가 저항하는 등 내 말을 너무 안 들어서” 등 여성 혐오 심리를 드러냈다. 지난 4월 서울 강동구에선 자신보다 키가 작은 여성만 골라 때리고 물건을 빼앗아 달아난 남성이 구속됐다. 3개월 만에 잡힌 범인은 경찰에서 “여자만 보면 때리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망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 혐오뿐 아니라 외국인, 성적 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 범죄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며 “같은 살인이나 폭행이라도 범행 동기가 ‘혐오’에 근거했다면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온·오프라인상에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 비하 발언이 전혀 규제되지 않고 있다”며 “혐오 발언부터 명백한 범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뿐 아니라 각종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점차 심해지고 있다”며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을 게 아니라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포용성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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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이 20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아 여성 살인사건 피해자를 위한 추모의 글을 보고 있다. 강 장관은 이날 ‘강남역 살인사건’과 관련, 여성 안전대책 긴급회의를 열었다. [뉴시스]


사태가 확산되자 정부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주재로 국무조정실·보건복지부·법무부 등 관계부처 국장이 참석한 가운데 ‘강남역 살인사건’ 관련 여성 안전대책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강 장관은 여가부에는 여성 혐오 풍조와 관련해 양성평등 문화를 안착시킬 방안을, 복지부에는 정신질환자 관리대책을, 행정자치부에는 공용화장실 관리대책 마련을 각각 주문했다. 여가부는 26일께 범정부 여성 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또 서울시는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범죄가 발생한 점을 감안해 시내 화장실을 전수조사한 뒤 대응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채윤경·이에스더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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