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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옛날이야기 하나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중앙일보 2016.05.21 00:01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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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옛날 옛적에 꽃다운 열일곱 살 여학생이 있었다. 이성을 향해 마음 달뜨는 나이여서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어쩌다 임신이 되었고 학교에도 알려졌다. 학교에서는 즉각 그 학생을 징계했다. 학교에서 사라진 여학생은 무수한 소문을 남겼다. 아버지에게 몹시 맞았다더라, 머리를 빡빡 깎인 채 방에 갇혔다더라, 밥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더라 등등. 가장 마지막에 들은 소문은 그녀가 목을 매었다는 내용이었다. 옛날 옛적, 그때는 1976년이었고 그녀는 급우였다. 당시 우리가 다니던 학교 교훈 세 가지 중 첫 번째는 ‘순결’이었다.

그 사건은 열일곱 살 내 마음에 멍울 같은 것을 남겼다. 내가 받은 충격을 이해할 수도, 언어화할 수도 없었지만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느낌은 생생했다. 성인이 되어서야 그 사회가 한 여자 청소년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사회는 청소년에게 성교육을 하지 않았고, 미성년자의 실수를 감싸 안아 해결해 주려는 관용이 없었다. 그 사회는 학교 규율과 가장의 체면만을 중시했고, 그런 것보다 두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인식이 없었다. 급우를 둘러싼 소문이 무성할 때도 상대 남학생은 징계받기는커녕 정체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장차 살아가야 할 세상이 그런 모습이라니 절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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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일반화’는 정신분석이나 심리학 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그 행위에는 몇 가지 심리기제가 들어 있다. 자신이 아는 것이 절대적이며 옳다고 믿는 나르시시즘이 첫 번째 요소일 것이다. 두 번째는 불편하거나 위험한 감정을 인식하지 않으려는 방어적 요소가 있다. 자신의 감정을 대중 속으로 투사하면서 누구나 그렇다고 합리화시키면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 나는 사춘기 때 떠안은 낯선 감정을 성급하게 일반화했다. 이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 분노했고, 남성 중심 사회에 유익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그 태도는 유익하지 않았다.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그런 인식은 나의 세계를 절반쯤 축소시키는 결과가 될 뿐이었다. 가부장제 자체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모든 제도 뒤편에 존재하는 개인의 어려움에 시선이 미칠 때에야 비로소 나의 세계관이 온전해지는 듯했다. 한 남성의 ‘묻지마 범죄’에 희생된 젊은 여성을 보며 많은 이가 감정을 촉발당하고 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 부당함과 억울함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남성 사회 전체를 향해 성급히 일반화하지는 말 일이다. 그것이 바로 가해자 남성을 움직인 심리작용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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