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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피해자 될 수 있어 가슴 철렁…잘못한 기업, 해체 수준 엄벌 내려야”

중앙일보 2016.05.19 01:50 종합 10면 지면보기

박민제 기자 ‘보이스택싱’
가습기 살균제 민심 듣다

분노한 시민들 한숨 쉬며
“걸러내야 할 전문가, 제 역할 못해
화학제품 과장광고 강력 규제를”

기자가 직접 택시를 몰며 민심을 듣는 중앙일보 ‘보이스택싱(voice taxing)’이 지난 17일 긴급운행에 나섰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국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뒷좌석에 앉은 시민들은 “가습기 살균제를 틀어놓은 방에 관련자들을 가둬야 한다” “기업을 해체할 정도로 엄벌해야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날 6시간 동안 7명의 승객이 보이스택싱에 올랐다.
 
#청파동 삼거리→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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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부역 인근에서 노수영(35)씨 등 여성 세 명이 승차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친구 사이였다. 가습기 살균제 수사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피해자들이 대부분 애들이잖아요. 지금 수사하고 있다지만 죽은 애들을 살려낼 수도 없고…. 마음이 너무 아파요.”
이번 사태에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해당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 있다고 했을 때 언론에 몇 번 언급됐잖아요.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다가 왜 이제야 책임을 묻나 싶습니다. 피해자들이 얼마나 많이 도움을 요청했을까 생각하면 답답하죠. 제대로 된 이유도 모르고 애들이 죽었으니….”
누구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보시나요.
“기업과 정부 다 책임이 있죠. 왜 우리나라에서는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만 억울한 일을 당하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그런 범죄자들은 독방에 가둬놓고 가습기 살균제를 틀어놔야 해요. 당해 보라고요. 살인이랑 뭐가 다른가요. 빨리 처벌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노씨는 요즘 화학제품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방향제 등을 다 버렸다고 했다.

“피해 부모들은 어떻게든 자기 애들에게 잘해 주려고 부지런히 알아보다 그렇게 된 거잖아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상황이니 가슴이 철렁한 일이죠. 이번 기회에 아이들에게 피해 입히는 사람에 대한 형벌이 강화됐으면 좋겠어요.”
 
#신대방→철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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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일행을 목적지에 내려준 뒤 신대방 삼거리를 지나 보라매공원 후문 쪽에 다다랐을 때 두 여성이 손을 들었다.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으로 가는 이재옥(56)·이정수(55)씨였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그거 다 상술 때문이에요. 얼마나 광고를 많이 했어요. 일반인들이 뭘 알겠습니까. 광고에서 좋다고 하니까 다 사다 쓰는 거지. 갓난아기 있는 집 중에 가습기 없는 집이 어디 있어요. 다 있지. 아기 키우는 부모들이 보면 사고 싶게 만들었잖아요. 말도 안 되는 허위 광고죠. 아주 나쁜 사람들이에요.”

이재옥씨는 두 돌이 채 안 된 외손자와 외손녀가 있다고 했다.

“인공적으로 만든 게 좋을 게 뭐가 있어요. 우리가 애들 키워 봐서 알잖아요. 젖병 씻을 때도 밀가루 풀어서 막 닦으면 얼마나 깨끗한데요. 무슨 살균소독기가 왜 필요해요. 팍팍 삶으면 되지. 애들 몸속에는 의사가 있다고요. 자연적으로 잘 크는데 인공적인 여러 가지를 쓰면 탈이 나는 거죠.”
 
#상도동→봉천동→노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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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쯤 승차한 박나래(27)씨는 취업준비생이었다. 그는 정부의 무능함을 지적했다.

“정말 믿을 만한 데가 아무 데도 없구나 싶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제품이 시중에 팔렸을까요. 부정부패가 심해도 이건 좀 아니잖아요.”
왜 이렇게 됐을까요.
“국민은 당연히 정보가 적을 수밖에 없죠. 그러니 소비자가 많이 당할 수밖에 없고요. 기업이 먹여주는 대로 먹고 만들어주는 대로 쓰는 일이 많게 된 거죠. 그런 부분을 걸러줬어야 할 전문가들도 제 역할을 못했잖아요. 실험보고서 쓴 교수님도 구속됐으니까요. 정말 심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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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보이스택싱의 마지막 손님은 회사원 박민규(34)씨였다. 그는 부인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책을 묻자 그는 “기업이 해체될 정도의 엄벌에 처해야 한다. 대충 사과하고 시간 끌다 벌금 몇 푼 내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히면서 넘어가는 그런 사태만은 막아야 된다”고 말했다.
해당 제품 불매운동에도 참여하시나요.
“그럼요. 이번에는 정말 끝장을 봐야 합니다. 저도 아이가 곧 생기는데 그런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해야죠.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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