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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청와대부터 ‘차고형 사무실’을 만들자

중앙일보 2016.05.18 00:57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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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술
경제부문 차장

오는 7월 고려대 서울 캠퍼스엔 ‘π-Ville(파이빌)’이란 이색 공간이 들어선다. ‘개척자’란 뜻의 영어 단어(Pioneer) 발음에서 따온 ‘창업 실험실’이다. 컨테이너를 쌓아 올려 ‘창고·차고’ 같은 분위기를 낸다. 연세대도 최근 경영관에 ‘디자인 개라지(Garage·차고)’를 설치했다. 창업 필수품인 ‘3차원(3D) 프린터’ 4대를 갖춰 학생들이 맘껏 시제품을 만들 수 있다. 프린터 사용법을 교육할 때마다 정원이 가득 찬다.

대학의 ‘차고형 교육’ 바람은 제2의 스티브 잡스를 배출하겠다는 시도다. 잡스는 1976년 21세에 캘리포니아 로스앨토스의 부모 차고에서 창업에 성공, 젊은이들의 자극제가 됐다.

환영할 만한 변화다. ‘손’으로 직접 만들고 체험하는 교육과 경험의 장(場)이 대한민국에선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학원의 칠판 강의에 치중하거나 틈나면 스마트폰을 쥐고 산다. ‘눈’으로 배우고 익히는 데만 익숙해진다. ‘돈’ 되고 일자리를 만드는 기술·아이디어·도전은 나오기 힘들다.

풍토가 이러니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라”고 다그쳐도 말짱 도루묵이다. 뭐든 갑자기 되는 일은 없다. 미국이 창업가 군단을 앞세워 ‘제4의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비결도 마찬가지다. 직접 만들고 체험하면서 기술과 친해지는 ‘축적의 시간’이 뒤에 있었다. 중국도 이를 본떠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의 ‘처쿠(車庫·차고) 카페’를 비롯한 수많은 창업 공간을 통해 하루 1만 개 벤처를 배출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산업기술진흥원장을 지낸 김용근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의 지적은 씁쓸하다. 그는 “중·고교 ‘기술’은 독립 과목도 아닌 ‘가정’과 묶여 있고 전공자가 아닌 교사도 많다”고 말했다.

그나마 미래창조과학부·고용노동부 등이 올 초 초·중등 이공계 수업이 향후 대학 교육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강고한 ‘입시 교육’ 앞에서 쉽진 않을 것 같다. 학부모 인식도 함께 바뀌어야 성공한다.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이란 이름으로 최근 내놓은 ‘신성장 동력 육성책’도 마찬가지다. 사물인터넷(IoT)·스마트카 같은 10대 산업의 세금을 깎아준다는 게 뼈대다. 하지만 역시 ‘반쪽짜리’ 같다. 신산업과 뗄 수 없는 ‘기술 교육’ 생태계 조성과 인력 양성 청사진은 없다.

결국 변화를 위해선 ‘교육·사회·산업·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액션 플랜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 청와대부터 ‘차고형 사무실’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보여야 한다. 책상머리 정책 대신 현장 전문가들과 이해관계자들을 만나고 설득해 ‘기술 교육’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마침 현 정부의 ‘창조경제’ 밑그림을 그린 인사들이 청와대 수석으로 새롭게 진용을 짰다. 이 분들이 ‘창고·차고’의 교훈을 다시 새겼으면 한다. 잡스는 평소 직원들에게 ‘해군이 아닌 해적이 돼라(Pirates! Not the Navy!)’고 주문했다. 도전적인 현장형 인재가 무기라는 얘기였다. 우리 아이들 세대가 ‘해적의 제물’이 되도록 이대로 놔둘 참인가.

김준술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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