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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열차로 온 ‘다칭 원유’ 열처리 뒤 30㎞ 송유관 타고 북으로

중앙일보 2016.05.16 02:30 종합 16면 지면보기
중국의 대북 원유 원조가 3년째 통계상 제로(0)지만 실제로는 석유가 송유관을 타고 북으로 운송되고있는 현장이 확인됐다.

신경진 특파원
단둥 송유기지에 가다

| 목적지는 평북 봉화화학공장
원유 응고 막으려 89도까지 데워
단둥송유기지에 연기 짙게 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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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단둥시 러우팡진 바싼 유류저장소에서 하역 작업 중인 유류열차. 하루 한 차례 꼴로 헤이룽장성 다칭유전에서 채굴한 원유가 이곳에서 북·중 송유관을 통해 북에 전달된다. 1975년 문을 열었다. [단둥=신경진 특파원]


15일 오전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외곽 러우팡(樂房)진에 위치한 단둥송유기지. 비오는 일요일임에도 25량 유조열차 두 대에 실린 원유가 송유관을 통해 하역되고 있었다. 바싼(八三) 유류저장소로 불리는 이곳은 망루의 경비병과 곳곳의 폐쇄회로 카메라가 주위를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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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黑龍江)성 다칭(大慶) 유전에서 열차로 운송된 원유는 이곳에서 시작되는 송유관을 통해 북한 평안북도 피현군 백마리의 정유시설인 봉화화학공장으로 보내진다. 장거리 수송을 위해 원유는 89도 고온 열처리를 거치기 때문에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정문 앞 상점 주인은 “ 마오쩌둥(毛澤東) 때부터 조선(북한)에 원유를 보내는 곳으로 지금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유조열차가 오가는 철로변에 열린 오전장에서 먹거리를 팔던 상인 역시 “거의 매일 열차가 온다. 어느 날은 저녁에 다른 날은 낮에도 온다”고 말했다.

대북 제재 전후로 송유량의 변화 추이를 확인하기 위해 열차 왕래 빈도를 물었다. 철로변 상점 주인은 “적다. 하루 한 번, 많아야 두 번 오간다. 예전에는 무척 많았다”고 대답했다. 예전이 언제냐는 질문에는 “대략 20~30년 전”이라고 대답해 오래 전부터 송유량이 줄어든 사실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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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시 마스촌에 위치한 북·중 송유관 가압시설. 압록강과 접한 이곳에서 강 아래로 국경을 건넌다.


14일 바싼에서 남동쪽으로 13㎞ 떨어진 마스(馬市)촌 압록강 변에 자리잡은 송유관 가압시설. 대형 국유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 자회사인 ‘중국석유관도공사 단둥배훈(培訓)기지라는 간판을 단 이곳은 원유가 압록강을 통과하기 전에 마지막 점검이 이뤄지는 장소다.

“우방인데 어떻게 안주나.” 인근 상점에서 만난 칠순 노인은 “제재와 원조는 별개”라며 인도주의적인 원조까지 끊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북한이 3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2014년 1월부터 해관(세관) 통계에서 대북 원유 수출량을 제로로 집계했다.

북중 관계에 밝은 대북 소식통은 “중국이 껄끄러워 해관 기록을 감춘 것일 뿐”이라며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집권 후반기부터 파이프가 막히지 않을 정도의 최소량만 간헐적으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 “열차 왕래 많아야 하루에 두번”
송유능력 연 300만t, 지금은 52만t
중국 세관은 3년째 “수출량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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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싼 기지 의 중국석유관공사 긴급유지보수대 간판.


CNPC는 홈페이지에서 중국 최초의 수출용 송유관인 ‘중조우의송유관’은 연간 300만t으로 설계됐지만 최근에는 52만t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경 377㎜, 길이 30.3㎞ 송유관을 통해 북으로 전달된다. 특히 다칭 원유는 쉽게 응고되는 팔라핀 성분이 많이 포함돼 고온 열처리가 필수다.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미국은 중국의 대북 원유 수출 전면 중단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제재가 일반 주민 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대신 유엔결의안 2270호는 민간용을 제외한 항공유의 대북 수출을 금지시켰다. 북한 봉화화학공장은 정유 기술 부족으로 항공유 생산을 못하기 때문에 타격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이 대북 원유 공급을 중단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경제적 이유와 함께 기술적 요인도 꼽힌다. 지난달 6일 중국 상무부가 제재 시행안을 발표한 직후 전문저널에 따르면 “중·조(중·북) 원유송유관은 장기간 매우 적은 양을 간헐적으로 수송하고 있어 안전성 저하가 우려된다”며 “연간 최저한도의 안전 송유량은 60만t으로 그 이하로 줄일 경우 고가의 응고방지제를 주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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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싼 기지 전경. 원유 탱크 10개가 세워져있다.


자료는 “기술과 경제성 측면에서 송유량을 더 줄일 여지가 없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수송을 중단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중국이 송유관 벨브를 장기간 잠글 경우 대북 지렛대를 영원히 잃게 된다는 의미다. 중국은 이미 북한의 3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2013년 2개월, 2014년 5개월간 원유 공급을 중단한 바 있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러시아산 석유가 중국산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단둥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우크라이나 관련 제재로 유럽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산 석유가 북한으로 대량 공급되고 있다”며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에서는 돈(외화)만 있으면 기름 넣는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 기름의 질에 대한 불만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유엔 2270호 결의안 표결 직전이던 2월 말 러시아를 방문한 이유도 석유 확보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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